K-콘텐츠 원작부터 리메이크 작품까지 튀르키예 대중의 큰 사랑을 받으면서 현지 콘텐츠산업 전반에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일고 있다. 한국에서 최고 시청률 18.5%를 기록했던 JTBC 드라마 < 닥터 차정숙 >이 튀르키예 주요 지상파 채널 ShowTV를 통해 또 다른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한 예다. < 닥터 차정숙 >은 튀르키예에서 리메이크를 통해 드라마 < 바하쉬(Bahar) >로 재탄생해 방영 초기부터 TV 시청률 5주 연속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 (좌)한국 드라마 '닥터 차정숙' 홈페이지, (우)'닥터 차정숙' 튀르키예 리메이크작 '바하쉬(Bahar)' - 출처: (좌)JTBC, (우)ShowTV >
매주 화요일 주 1회 방송되는 < 바하쉬(Bahar) >는 튀르키예에서 시청률 주요 지표인 ABC1 기준 시청률이 단 3화 만에 12.05%로 두 자리 수를 기록했을 정도로 그 인기가 폭발적이다. 5화에서는 14.8%를 달성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지난 1월 개설된 < 바하쉬(Bahar) > 공식 유튜브 계정 구독자수는 3개월 만에 71만 명을 넘어섰고, 1화부터 8화까지 누적조회수는 2억 3,000만 회를 넘겨 < 닥터 최정숙 > 리메이크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바하쉬(Bahar)' 공식 유튜브 계정 - 출처: 유튜브 계정(@Bahardizisi) >
사실 현지 리메이크작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는 원작 대비 낮아지기 마련이다. 동일한 시나리오로 드라마를 제작한다 하더라도 배우의 연기력이나 촬영기법, 마케팅 전략, 제작비와 스케일 등에서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에서 K-드라마 원작은 현지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일단 믿고 볼 정도로 정평이 높다. 그 때문에 글로벌 OTT를 통해 한국 드라마가 한 번 공개되면 장르를 불문하고 곧바로 10위권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일로 간주돼 왔다. 그러나 통신원이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원작 한국 드라마가 아닌 현지 제작자와 배우에 의해 재탄생된 K-드라마(리메이크작)의 인기다. 튀르키예에서 한국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리메이크 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방영된 < 대장금 >의 더빙판이 2008년 현지 국영방송 TRT1을 통해 방영된 이후다.
< '대장금' 더빙판 - 출처: 유튜브 계정(@Saraydaki Mucevher) >
당시에는 현지 성우들의 목소리로 덮어 '궁전의 보석(SARAYDAKI MUCEVHER)'이라는 제목으로 튀르키예 시청자들에게 공개됐다. 한국 드라마를 처음 접한 현지 대중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픽션 사극 드라마 < 대장금 >에서 의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뜻에서 붙여진 '대장금' 역의 배우 이영애의 연기는 남성 권위적인 튀르키예 사회에 큰 반향을 불어일으킬 정도로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그렇게 튀르키예에서 한류를 처음 태동하게 한 K-드라마 < 대장금 >의 인상은 아주 강렬했다. < 대장금 > 더빙판 방영이 끝나자마자 리메이크 제작이 시작됐다. 현지 제작진과 배우가 제작에 참여했고 2011년 1월 TRT1을 통해 이듬해 8월까지 60회 분량으로 방영됐다. 궁전에서 일하는 집사(Yamak)에 '과아흐멧(Ahmet)'이라는 이름을 붙여 < Yamak Ahmet >라는 드라마가 탄생했다. 해당 리메이크작은 오스만 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궁전의 풍경을 소재로 요리, 생활 문화 등을 다뤘다. 튀르키예판 < 대장금 >은 현지 대중들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공감 요소를 크게 부각했다는 점에서 K-드라마에 대한 첫인상을 아주 좋게 남겼다. 원작 한국 드라마가 더빙판을 거쳐 재창조돼 리메이크작으로 공개되는 과정이 튀르키예인들에게 아무런 걸림돌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한 셈이다. 2012년 < 대장금 > 리메이크작이 방영된 이후에는 <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Bir Ask Hikayesi(2013) >, < 불량가족(2006)/Aile isi(2016) >, < 상류사회(2015)/Yukesk Sosyete(2016) >가 리메이크 됐다. 이후 < 꽃보다 남자(2009)/Gunesi Beklerken(2013) >, <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Kocamin Ailesi(2014) >, < 메이퀸(2012)/Mayis kralicesi(2015) >, < 가을동화(2000)/Paramparca(2014) >, < 풀하우스(2004)/Iliski durumu karisik(2015) >, < 사랑도 돈이 되나요(2012)/Kiralik Ask(2015) > 등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총 33편의 한국 드라마가 리메이크돼 이곳에서 방영됐다.
< '대장금' 리메이크작 'Yamak Ahmet' - 출처: 유튜브 계정(@NostaljiTRT) >
그 이후로는 한국 드라마 리메이크 증가 추이가 속도를 더하면서 튀르키예 한류의 한 축으로 부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3년 만에 41편의 한국 드라마가 현지 리메이크 됐다. 미국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 규모의 드라마 수출 강국인 튀르키예에서 이렇게 많은 한국 드라마가 재탄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황금시간대까지 차지하며 안방극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은 인기 그 이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지 학계에서도 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 드라마 리메이크 열풍에 대해 이스탄불 페네르바흐체 대학교 신문방송영화학과에서 최초 연구가 나와 자세히 살펴봤다. 페네르바흐체대학교는 튀르키예 스포츠 명문 클럽 재단에서 2016년 설립한 사립대학교다. '원작 및 리메이크작 영화로 본 한류 영화산업에 대한 튀르키예 현주소'라는 주제로 한국 영화 및 드라마의 인기 요인을 그들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이다. 논문 저자 투르카이(Turkay)는 원작 콘텐츠를 넘어 리메이크작까지도 큰 인기를 얻는 요인을 분석하기에 앞서 한국의 역사 속에서 영화산업이 걸어온 과정을 먼저 소개했다. 해당 논문은 "일제강점기부터 제2차 세계 대전, 광복, 이후에 이어진 한국전쟁과 가난, 경제성장, 군부독재, 민주화, 1997년 IMF 외환위기까지 한국 사회가 걸어온 어두운 그늘의 역사 속에서 영화산업이 극도의 냉전 이데올로기(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단면으로 영화산업에 대한 정부의 검열을 겪어야 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창작의 자유를 표현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어두운 역사를 지나면서 콘텐츠 창작의 깊이는 오히려 더 깊어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기술의 혁신과 탄탄한 스토리까지 뒷받침되면서 지금의 K-콘텐츠가 있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현재 튀르키예에서 일고 있는 한국 콘텐츠 리메이크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 대장금 >으로 한류가 시작되던 시기에는 자본 창출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원작이 아닌 리메이크 작품이 제작됐다. 그러나 지금은 한류 초기와는 다르다. 한국 콘텐츠를 리메이크하는 것은 상업적인 성공이 보장되며, 한류는 세계화된 추세이기 때문이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까지 오르지는 못했지만 튀르키예는 < 7번방의 선물 > 리메이크 작품을 출품하면서 세계화된 한국 영화를 목도할 수 있었다." K-컬처의 국제적인 영향력이 커지면서 튀르키예에서 새로운 콘텐츠 제작 경향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통신원은 튀르키예에서 일고 있는 K-콘텐츠 리메이크 열풍을 조사하면서 K-컬처의 국제적 위상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한국 콘텐츠 리메이크에 대한 현지 연구가 시작됐다는 사실에도 크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흥미와 모방의 개념을 넘어선 한국 콘텐츠와 K-컬처의 안정적인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현지 수용자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JTBC 홈페이지, https://tv.jtbc.co.kr/drcha
성명 : 임병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튀르키예/이스탄불 통신원] 약력 : 현) YTN Wold 리포터 전) 해외문화홍보원 대한민국 바로 알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