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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가 인도네시아에 남긴 것

2024-05-23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2024년 2월 28일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한 영화 < 파묘 >가 그로부터 한 달 반가량 지난 4월 중순에 접어들어서도 아직 여러 상영관에 걸려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가장 많은 현지 관객을 기록한 한국 영화였던 < 기생충 > 조차 이렇게 장기간 상영되지는 않았다.

< 파묘 >의 동남아 배급사 퍼플 플랜(Purple Plan)으로부터 인도네시아 배급권을 받은 현지 상영관 산업 3위 업체 시네폴리스(Cinepolis)의 부속 수입 영화 배급사 피트(FEAT)가 지난 4월 3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현지에서 230만 명이 영화 < 파묘 >를 관람했다. 이것은 한국에서 < 파묘 >가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과 비등한 대형 이슈다.

< '파묘' 인도네시아 포스터 - TMDB >

CGV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후 많은 한국 영화가 극장에서 현지 관객들을 만났지만 관객 만 명에도 미치지 못한 영화들이 부지기수였다.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유명 흥행작도 현지에서는 대부분 20만 관객 고지를 넘지 못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영화가 올린 최대 흥행은 2019년 60만 명을 기록한 < 기생충 > 이전까지는 20만 명을 살짝 넘긴 < 부산행 >(2016)과 < 군함도 >(2017)였다.

한국 영화가 인도네시아에서 맥을 못 추는 이유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사이의 정서적 간극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인도네시아 전체 428개 상영관 및 2,150개 스크린의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상영관 산업 1위 업체 시네플러스21(이하 시네마 21)이 그간 한국 영화를 단 한 편도 걸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네마 21의 빗장이 처음 풀린 것은 바로 지난해인 2023년의 일이다. 지금까지 < 귀공자 >, < 더 문 >, < 콘크리트 유토피아 >에 이어 < 파묘 >가 네 번째로 시네마 21 스크린에 올랐다. < 귀공자 >는 24만 명, < 더 문 >은 37만 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시네마 21이 한국 영화 상영을 개시한 것만으로 이전 기록(< 부산행 >, < 군함도 >)을 단번에 넘어섰다.

그런데 < 파묘 >는 시네마 21에서의 상영으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흥행이 폭발적이다. 개봉 12일 만에 100만, 다시 12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지난 수십 년간 < 기생충 >을 포함해 한국 영화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을 향해 짓쳐 달려갔다. 이젠 그 누구도 한국 영화가 인도네시아 정서와 맞지 않아 흥행하기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됐다. 

한때 전국 360개 상영관에서 상영했던 < 파묘 >는 개봉 6주차인 4월 초 CGV 13개 극장을 포함한 몇 십 개 수준으로 상영관수가 줄었지만 금식월이 끝나고 이둘피트리(Idul-Fitri) 축제 기간이 끝나는 4월 중순까지 계속 상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 파묘 >를 N차 관람한 현지 관객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인도네시아에도 제법 이름을 알린 < 명량 >의 최민식, < 공조 >의 류해진, < 도깨비 >의 김고은, < 스위트홈 >의 이도현까지 막강한 라인업으로 상당한 티켓 파워가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현지 개봉이 다른 영화들에 비해 매우 일렀다는 점이다.

영화

한국 개봉일

인도네시아 개봉일

개봉일 차이*

<더문>

2023. 8. 2.

2023. 8. 9.

7

<콘크리트 유토피아>

2023. 8. 9.

2023. 8. 24.

15

<파묘>

2023. 2. 22.

2024. 2. 28.

6

* 퍼플 플랜(Purple Plan) 배급 영화의 한국-인도네시아 개봉일 차이

< 파묘 >는 한국 개봉 6일차, 관객 200만을 돌파하던 시점에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했다.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기까지 관객 증가 소식이 인도네시아 각종 매체를 통해 현지에 보도된 것은 영화의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로 작용했다. 종전에는 천만 관객 영화라 해도 한국 상영 끝물 또는 상영 종료 후 현지에서 개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영화가 한국에서 누린 열기나 인기가 현지에 실시간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나 < 파묘 >의 경우 한국 흥행이 인도네시아 흥행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른바 한국과의 '동시성'이 주효했다.

< 파묘 >는 그 개봉 시점도 절묘했다. 인도네시아인들의 최애 장르가 호러 영화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공포 영화라면 뭐든 앞뒤 안 가리고 달려가 보는 것은 아니다. 지난 몇 해 동안 걸출한 호러 영화가 여러 편 나오면서 영화 팬들의 안목과 취향도 높아졌다. 한국 영화 < 옥수역 귀신 >, < 마루이 비디오 > 등은 현지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고, 한국 원작을 현지에서 리메이크한 < 적막(Sunyi) >(2019,여고괴담 리메이크), < 헬로우 고스트 >(2023)도 각각 40만, 60만 관객에 그쳤다.

천만 관객으로 2022년 인도네시아 최대 관객을 달성한 < 무용수 마을의 대학생 봉사활동(KKN di Desa Penari) >의 후속편인 < 무용수 마을의 바라다우히(Baradawuhi di Desa Penari) >, < 사탄의 숭배자(Satan's Slaves) > 시리즈를 연속 히트시킨 조코 안와르 감독의 영화 < 무덤 속의 고통(Siksa Kubur) >가 개봉을 예고하다 4월 둘째 주 비로소 개봉했다.

관객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시킬 내로라할 만한 호러 영화가 변변치 않던 시점에 세련된 연출, 흥미로운 테마와 반전을 가진 고급스러운 스토리의 호러 영화 < 파묘 >가 적시 개봉해 인도네시아 호러 팬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해당 시기에 좋은 호러 영화를 관람하고자 하는 관객들에게 < 파묘 > 외 더 나은 선택지가 없었고 그 결과 달성한 230만 관객은 올해 인도네시아 로컬 영화 흥행 2위, 2023년 전체와 비교하면 7위와 8위 사이에 해당한다(4월 기준). 탄탄한 시나리오가 주효한 점은 두말할 나위 없다.

현지 영화계에서는 < 파묘 >의 흥행을 단발성이자 이례적인 경우로 보며 이후 한국 영화의 현지 상영이 괄목할 정도로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그렇지만 일단 현지 영화 시장에서 한국 영화의 가능성이 한차례 분명히 증명된 이상 시네마 21을 비롯한 현지 영화산업 주요 플레이어가 한국 영화에 대해 갖는 시각과 태도에는 분명한 긍정적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 기대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TMDB(The Movie Data Base), https://www.themoviedb.org/movie/838209/images/posters?language=id

	

통신원 정보

성명 : 배동선[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인도네시아/자카르타 통신원]
약력 : 작가, 번역가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막스 하벨라르』 공동번역,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