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은 고유한 자연환경과 역사, 문화를 바탕으로 독특한 주류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러시아에 보드카, 프랑스에 와인, 독일에 맥주, 그리고 멕시코에는 테킬라가 대표적인 술로 자리 잡고 있듯 소주 역시 한류와 함께 널리 알려진 한국의 술이다. 그렇다면 필리핀을 대표하는 술은 무엇일까? 필리핀 럼 브랜드 탄두아이(Tanduay Rum)는 세계 최대 럼 생산량을 자랑한다. 히네브라 산 미겔(Ginebra San Miguel)이 만드는 진(Gin) 역시 필리핀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술들은 식민지 시절부터 자리를 잡은 외래 영향이 강한 주류로 필리핀 전통주라고 부르기에는 약간 아쉬움이 있다. 필리핀에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주가 있다. 대표적으로 코코넛 나무 수액을 발효·증류한 람바녹(Lambanog)이 있는데 강한 도수와 맑고 부드러운 맛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사탕수수로 만든 바시(Basi), 찹쌀 발효주 타푸이(Tapuy) 등 지역마다 고유한 재료와 방식으로 빚은 술이 이어져오고 있다. 이 같은 다양한 전통주는 지역사회의 일상이나 축제에서 여전히 사랑받고 있지만 아쉽게도 여전히 지역 내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필리핀은 지역과 종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음주에 관대한 편이다. 2024년 기준 인구는 1억 1,000만 명이 넘고, 만 18세 이상 성인이 약 62%를 차지해 주류 소비 인구가 많다. 2021년 필리핀 보건부 조사에 따르면 필리핀 성인 중 약 40%가 최근 한 달 내에 음주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는 음주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일시적으로 주류 소비가 감소했으나 이후 주류 소비 시장은 빠르게 회복 및 성장 중이며 2020년 이후 연평균 6% 이상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 (좌)필리핀에서 인기인 낭만돼지 삼겹살 뷔페, (우)요구르트와 소주를 섞어서 판매하는 현지 식당 - 출처: 통신원 촬영 >
최근 필리핀에서는 한류 열풍으로 한국 소주를 즐기는 젊은 소비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거주 한인이나 한식당 중심으로 소주가 소비됐으나 이제는 한식당뿐만 아니라 필리핀 식당과 펍에서도 소주를 마시거나 요구르트 등과 섞어 마시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주를 즐기는 필리핀인들도 늘고 있다. 클락에서 한식당에서 만난 대학생 마리아 씨는 "한국 드라마에서 보던 소주를 친구들과 같이 마실 때마다 한국에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매운 삼겹살과 잘 어울려요."라고 말했다. 마트에서 만난 직장인 하이메 씨는 "이젠 진로 소주 같은 제품을 동네 편의점에서도 쉽게 살 수 있어요. 친구들과 모일 때 과일맛 소주를 자주 찾죠."라며 소주의 인기를 전했다. 이처럼 마닐라 및 주요 대도시 식당뿐만 아니라 지역 내 마트 및 편의점에서 한국 희석식 소주를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일부 매장에서는 막걸리와 청주 등도 취급하고 있다. 소주와 관련해 《Premier(프리미어)》는 “진로 소주는 한국 대중문화 확산에 기여했다."라며 "<도깨비>, <오징어 게임>, <사내맞선>, <술꾼도시여자들> 등 드라마 속에서 소주가 사랑 고백, 대화 등 주요 장면의 매개로 자주 등장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진로 모델인 아이유를 좋아하는 팬들 역시 필리핀 내 소주 인기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Philstar(필스타)》는 "필리핀 팬들은 한국 드라마를 통해 '국민 음료' 소주를 처음 접했다."라면서 한국 드라마가 소주 인기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소주를 따르고 받는 전통과 예절을 통해 맛만이 아니라 한국문화를 접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그 결과 2024년 한국 소주 수출량은 12만 4,000톤으로 전년대비 4.2%, 수출액은 3.9% 증가했다. 필리핀으로 수출된 한국 소주는 전체 소주 수출량 중 약 3.5%를 차지하며 수출액은 약 100억 원 규모다. 특히 필리핀 내 소주 시장에서 진로가 약 67% 점유율을 기록하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진로 소주는 필리핀 전국 편의점과 슈퍼마켓 등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유통망이 확대되고 있다.
< (좌)필리핀 식당에서 판매하는 희석식 소주, (우)현지 마트에서 구매 가능한 소주 - 출처: 통신원 촬영 >
하이트진로는 2016년부터 현지 유통사들과 협업하며 필리핀 시장을 적극 공략에 나서왔다. 2019년 현지 법인을 설립한 이후에 딸기에이슬(2020년), 복숭아에이슬(2022년) 등 다양한 맛 소주를 선보이며 현지 소비자층을 공략했다. 또한 필리핀 대학생 대상 오프라인 행사 '진로 나이트', K-콘텐츠 팬 행사, 미식 행사 '메가 볼' 등을 지원하며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2024년 5월에는 필리핀 걸그룹 YGIG와 함께 '진로라이브(Jinro Live)'를 통해 음주 경험과 술자리 게임을 선보이는 등 현지화 마케팅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소주와 어울리는 안주 소개, 소맥(소주+맥주) 제조법, 음주 문화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해 소비자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한국 소주가 필리핀 시장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데에는 단순히 유통망 확보 노력뿐만 아니라 한국 대중문화 확산이 큰 역할을 했다. 필리핀 젊은 소비자들은 한국 드라마, 케이팝, 한식 문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소주를 접하게 됐고 소주를 단순한 술이 아닌 '새롭고 세련된 술'로 인식하고 있다. 소주는 단순한 주류를 넘어 한국과 필리핀을 비롯한 전 세계 젊은 세대가 공유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팬들은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통해 쌓은 친밀감을 소주라는 매개체로 확장하고 있다. 이들이 즐기는 소주 한 잔은 단순한 음주를 넘어 한국 전통과 현대 대중문화, 그리고 필리핀을 연결하는 상징적 다리가 되고 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Esports World Cup Foundation - 유튜브 계정(@ewc), https://www.youtube.com/@ewc - 사우디 케이팝 팬 니스린 제공 - Platinumlist, https://platinumlist.net/ - 《Pollstar》 (2024. 7. 19). Asia News: KCON Saudi Arabia Uncertain; Fuji Rock Streaming; Ticket Surrogates, https://news.pollstar.com/2024/07/19/asia-news-kcon-saudi-arabia-uncertain-fuji-rock-streaming-ticket-surrogates/#:~:text=Photo%20by%20Mariano%20Regidor/Redferns,which%20reportedly%20disappointed%20local%20fans. - 《PR Newswire》 (2025. 7. 15). Esports World Cup Kicks Off 2025 Event with Star-Studded Opening Ceremony in Riyadh, https://www.prnewswire.co.uk/news-releases/esports-world-cup-kicks-off-2025-event-with-star-studded-opening-ceremony-in-riyadh-302505356.html
성명 : 정효정[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사우디아라비아/리야드 통신원] 약력 : 리야드 세종학당 문화교원, 낭만씨어터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