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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엘레인 김(김혜령) 큐레이터, 유리 너머의 서사 경계에서 피어난 이야기

2025-09-01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호주 시드니의 한 작업실. 투명하거나, 때로는 뿌연 질감 속에서 빛을 머금은 유리 작품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그 곁에는 호주와 한국, 그리고 예술과 법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를 넘나드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큐레이터 엘레인 김(김혜령)이다. 그는 미술을 전공하고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작가와 관객,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최근 법학을 공부하며 예술과 사회적 가치의 새로운 접점을 탐색하고 있다. "저는 늘 사람과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서사와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이야기가 만나 공명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시 '유리 너머의 서사'를 기획한 큐레이터 엘레인 김(김혜령)

< 전시 '유리 너머의 서사'를 기획한 큐레이터 엘레인 김(김혜령) - 출처: Tiffany Baek(백상아) 사진 작가, 엘리인 김 큐레이터 제공 >

두 문화의 경계에서 싹튼 시선
엘레인 김은 한국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교육을 받았고 그의 삶을 이어왔다. 한국과 호주, 두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오가며 살아온 경험은 그의 작업에 깊숙이 스며있다. "한국에서 자란 문화적 뿌리와 호주에서의 경험이 제 작업 속에서 늘 교차해요. 그 사이에서 느끼는 간극이 '경계에 선 존재', '낯섦과 익숙함', '언어 너머의 감정' 같은 주제를 계속 탐구하게 만들었죠." 호주에서 아시안 이민자 여성으로 살아가며 맞닥뜨린 시선과 정체성의 고민은 때로 외로움과 서러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는 그 감정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시 기획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았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제가 하는 전시의 방향도 달라졌을 거예요. 결국 저는 예술이 사람의 내면을 비추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을 가졌다고 믿어요. 그래서 제 전시가 사회적 대화의 장이 되길 바랍니다." 

도자기에서 큐레이팅으로
그의 예술가로서의 여정은 도자기와 회화 전공에서 시작됐다. "아너스 과정을 하면서 좋은 교수님들을 만나 예술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방법을 배웠어요. 제2외국어인 영어로 학구적인 글을 읽고 쓰는 건 쉽지 않았지만 그 부족함이 오히려 더 배우고 싶다는 동기가 됐죠." 그러던 중 대학원 진학 제안을 받으며 아트 큐레이팅을 접하게 됐다. 처음에는 큐레이터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이전에 일하던 갤러리에서 그의 성실함과 태도를 높게 평가하여 작은 기회를 열어줬다. "이방인으로서 한계도 있었고 상상 못했던 세계와 마주하며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하지만 그 과정을 지나오면서 단단해졌죠. 지금은 그 경험들이 제 시야를 더 넓혀주었다고 생각해요."
전시 '유리 너머의 서사'를 기획한 큐레이터 엘레인 김(김혜령)

< 전시 '유리 너머의 서사'를 기획한 큐레이터 엘레인 김(김혜령) - 출처: Tiffany Baek(백상아) 사진 작가, 엘리인 김 큐레이터 제공 >

'The Glass Narrative', 유리를 통한 이야기
호주 유리공예 협회(Ausglass) 이사회 멤버로도 활동 중인 김 큐레이터는 유리에 대한 깊고 오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유리는 다루기 어려운 재료이지만 그 긴장감과 투명함, 빛을 머금는 방식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유리에 관한 애정과 관심의 결과로 탄생한 전시가 'The Glass Narrative'다. 이 전시는 단순한 재료 중심의 전시가 아니라 유리를 통해 인간의 감정과 기억, 정체성과 같은 보편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시각적 언어로 번역될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시도였다. "작가들이 유리를 통해 풀어낸 이야기가 관객의 내면에 닿아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하길 바랐습니다." 

작가 선정과 전시 구성
참여 작가는 다섯 명. 그들은 단순히 유리를 다루는 기술을 넘어 유리를 통해 자신만의 서사와 감정을 깊이 있게 표현하는 이들이었다. "저는 기술적 완성도보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라는 내면적 동기와 고유한 언어를 더 중요하게 봤어요. 또 서로 다른 배경과 시선이 모였을 때 전시 전체가 하나의 서사를 형성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죠." 그 결과, 다섯 작가는 일상과 상실, 어린 시절의 기억, 정체성과 상상력 등 다양한 인간의 이야기를 투명하고 섬세한 유리 속에 담아낼 수 있었다. 

신뢰와 존중 속에서
작가들과의 협업 과정에서 김 큐레이터가 가장 중시한 것은 '존중'이었다. "틀을 강요하지 않고 각자의 서사가 충분히 드러날 수 있도록 대화를 열어뒀어요. 차이를 억지로 묶기보다,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조화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특히 호주의 대표 유리 작가 마크 엘리엇(Mark Eliott)과의 작업은 특별했다. 그의 대표작 'Mothership'은 인권, 기후 변화와 같은 글로벌 이슈를 유머러스하고 통찰력 있게 담아냈다. "마크의 상상력은 정말 놀라워요. 그의 작품은 늘 유쾌함과 깊이가 공존하죠. 함께 작업하면서도 매 순간이 배움이었습니다."
전시 '유리 너머의 서사'를 기획한 큐레이터 엘레인 김(김혜령)

< 전시 '유리 너머의 서사'를 기획한 큐레이터 엘레인 김(김혜령) - 출처: Tiffany Baek(백상아) 사진 작가, 엘리인 김 큐레이터 제공 >

이중 문화적 감각으로
그는 'The Glass Narrative'에도 한국적인 감수성과 호주에서의 열린 사고방식을 동시에 녹여냈다. "한국적인 감성은 이야기의 결을 섬세하게 읽고 감정을 깊이 있게 다루는 데 도움이 됐고, 호주에서 배운 자유로운 사고방식은 전시 구성과 협업 과정에 큰 영향을 줬죠." 이 전시는 결국 두 문화 사이에 선 엘레인 김,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다층적인 서사의 탐구였다. 

다음 프로젝트와 꿈꾸는 전시
김 큐레이터는 여전히 유리라는 소재에 매력을 느낀다. 향후 한국과 호주 작가가 함께하는 국제 교류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고 전했다. 또한 도자기에 대한 애정도 여전하다. "도자기는 제게 돌아갈 집 같은 재료예요. 언젠가는 꼭 도자기를 주제로 한 전시를 다시 열고 싶습니다." 관객이 전시장을 나서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 작품이 내 감정을 건드렸다."고 느끼는 전시. 예술이 삶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드는 전시가 그가 추구하는 바다. 

예술, 경계를 넘어서
'The Glass Narrative'는 김 큐레이터에게 단순한 전시 이상이었다. 큐레이터로서의 정체성이 더 명확해지고 작업의 방향성이 성숙해진 계기가 됐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 작가와 관객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그의 꾸준한 의지가 있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경계선 위에 있다. 그러나 그 경계는 단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는 접점이다. 그리고 그 접점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    
- Tiffany Baek(백상아) 사진 작가, 엘리인 김 큐레이터 제공

통신원 정보

성명 : 김민하[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호주/시드니 통신원]
약력 : CMRC(Community Migrant Resource Centre) 가족 서비스 프로젝트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