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의 대화습관』의 인도네시아 번역본 『Bicara Itu Ada Seninya(말하는 게 예술)』는 2016년 9월 현지에 출판된 이후 한국인이 쓴 단일 도서로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그라메디아의 사내 출판그룹 중 하나인 BIP(Bhuana Ilmu Populer - 흥미로운 과학 세계)를 통해 인도네시아에 소개됐다. 한편 인도네시아에서 책이 가장 많이 팔린 작가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에 이어 영문 원작을 곧바로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한 『When Things Don’t Go Your Way(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를 낸 혜민스님이다. 그라메디아의 또 다른 사내 출판그룹 KPG(Kepustakaan Populer Gramedia)가 판권을 사 현지에서 펴냈다. 물론 조남주, 손원평, 신경숙, 백세희, 정보라, 정유정 같은 한국 작가들도 인도네시아에서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책 판매량에 있어 앞서 언급한 오수향 작가와 혜님스님이 단연 압도적이다. 오수향 작가의 경우 몇 년 전까지 그라메디아 매장에 헌정 매대가 마련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혜민스님의 경우엔 헌정 매대까지는 아니지만 지금도 늘 매장 앞쪽 잘 보이는 곳에 저서 세 종류가 나란히 진열되어 이목을 끌고 있다. 오수향 작가의 경우 현재까지 앞서 언급한 『1등의 대화습관』 외에도 『웃으면서 할 말 다하는 사람들의 비밀(Komunikasi Itu Ada Seninya)』(2020), 『모든 대화는 심리다(Seni Berbicara Tanpa Bikin Sakit Hati)』(2022), 『긍정의 말습관(Siapa Bilang Bicara Positif Itu Gampang)』(2025),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은 3마디로 말한다(Berani Omong Kosong)』(2022)까지 모두 다섯 권을 출판했다. 여섯 권째인 『황금말투(인도네시아어 제목 미정)』도 현재 번역 중이어서 곧 출간 예정이다. 이중 그라메디아가 『1등의 대화습관』만 별도의 헌정 매대를 만들 정도로 마케팅을 집중하는 것은 오수향 작가의 다른 책들의 판매가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마찬가지로 혜민스님의 저서들은 모두 베스트셀러에 속할 정도의 판매량을 보여 늘 앞쪽에 진열되지만 헌정 매대를 만들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다.

< 오수향 작가 헌정 매대(좌), 혜민스님 저서 진열 매대(우) - 출처: 통신원 촬영 >
판권 계약과 플랫폼 사용료 오수향 작가의 저서들은 도서 에이전시 EYA가 대부분 중계해 BIP에서 출판되었지만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은 3마디로 말한다』 한 권 만은 한국의 다른 도서 에이전시가 연결해 가가스 미디어(Gagas Media)라는 다른 출판사를 통해 출판되었다. 이게 모두에게 패착이 되었다. 한국 측 계약 당사자인 오수향 작가나 위즈덤하우스 출판사는 계약을 연결한 에이전시가 증발하면서 인세와 계약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는데 인도네시아 측 문제는 이보다 좀 더 복잡하다. 가가스 미디어가 오수향 작가의 저서를 출판 계약한 것은 당시 메가 베스트셀러 『1등의 대화습관』 저자의 작품이란 점이 크게 작용했지만 막상 작가의 이름을 내걸고 마케팅을 하려니 그라메디아의 책들을 홍보해 주는 셈이 되었고 그라메디아 측은 가가스 미디어의 책을 철저히 없는 책 취급을 했다. 결국 절대로 책이 많이 팔릴 수 없는 구도가 된 것이다. 더욱이 한국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나, 인도네시아에 자체 판매 플랫폼이 없는 출판사들이 그라메디아의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책을 팔려면 팔리는 물량에 대한 판매 커미션과 별도로 매월 일정 금액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판매량이 미미하니 가가스 미디어는 해당 비용을 줄여야 했다. 결국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자체 웹사이트에서만 팔아야 했으니 이미 인쇄된 물량을 소진할 길이 요원해지고 말았다. 해당 도서에 대한 가가스 미디어와의 판권 계약은 이미 만료되었으므로 순리대로 해당 저서의 판권 계약은 소정의 절차를 거쳐 BIP가 이어받을 전망이다. 오수향 작가는 올해 10월 30일~11월 2일 기간 자카르타 국제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아이디어페스트 2025(Ideafest 2025)'에 초청됐다. 300명 넘는 청중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성황을 이룬 강연을 마쳤고, 그라메디아 BIP 측이 준비한 팟캐스트와 북토크 등 다양한 행사 일정을 소화했다. 이는 2024년 11월 14일~18일간 일정으로 당시 신간 『When Things Don’t Go Your Way』의 홍보차 그라메디아 KPG 초청으로 입국해 족자, 수라바야, 자카르타에서의 홍보행사를 한 혜민스님의 동선과 비견된다.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한국 작가들로 가장 최근에 정보라, 손원평 작가 등이 있지만 그라메디아의 공식 초청을 받아 일정을 소화한 작가들은 오수향 작가와 혜민스님뿐이란 점은 최소한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들 두 작가가 한국을 대표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오수향 작가는 아이디어페스트에 메인 강사 중 한 명으로 초청받은 최초의 한국 작가이기도 하다.

< 오수향 작가의 아이디어페스트 2025 강연 포스터 및 배너 - 출처: 아이디어페스트 인스타그램 계정(@ideafestid), 통신원 촬영 >
그라메디아 출판사 인도네시아 최대 출판사로 전국 100개 넘는 대형 서점을 주요 몰에 입점시키고 있는 그라메디아는 현지 언론재벌 꼼빠스-그라메디아 그룹(Kompas-Gramedia Group) 소속이다. 최대 발행 부수의 일간지 꼼빠스를 비롯한 다수의 신문사, 여러 라디오 방송국, 호텔, 지상파 꼼빠스 TV도 여기 포함된다. 인도네시아 출판협회(IKAI)에 등록된 회원사들은 2021년 기준 1,900개로 알려져 있으나 이중 내로라할 만한 규모를 갖춘 곳은 100군데도 되지 않는다. 개중 대기업으로 통하며 계열사나 내부 출판 그룹을 거느린 곳들은 그라메디아, 미잔그룹(Mizan Group), 아그로메디아(Agromedia), 에를랑가(Erlangga)를 꼽는다. 이중 그라메디아는 업계 1위 출판사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가가스 미디어는 아그로메디아 계열이다. 그라메디아는 사내 출판 그룹들을 서로 경쟁시키는 구도로 사업을 키웠다. 사내 출판 그룹은 앞서 언급한 BIP와 KPG 외에도 제일 먼저 설립되어 소설, 자기 계발서 등 가장 많은 타이틀을 출판하고 있는 GPU(Gramedia Pustaka Utama), 라이트 노벨이 강한 그라신도(Grasindo), 과거 IT 등 운영 시스템을 만들다가 현재는 교육 만화 위주로 출판하는 엘렉스 메디아 콤퓨틴도(Elex Media Komputindo), 그리고 일본 만화를 주로 찍어내는 m&c! 등 여섯 개가 있다. 이들 출판 그룹들은 처음엔 각각 전문 분야가 뚜렷했지만 독립채산제로 경쟁이 붙으면서 각각 돈이 되는 다른 장르에 함께 손을 뻗쳐 각 그룹 간 구분이 모호해졌다. 그래서 만화를 주로 출판하는 엘렉스나 m&c!에서도 소설, 에세이, 육아 등의 책을 내기 시작했고 최근 가장 핫한 아동 도서에 모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극단적인 비효율을 초래했는데 2024년 7월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주최로 자카르타 시내 르메르디앙 호텔(Hotel Le Merdian)에서 열린 아동 도서 테마의 ’찾아가는 도서전’에 이들 여섯 개 출판 그룹 모두가 찾아온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인사와 회계는 전 부문이 통합된 가운데 2024년 말부터 그라메디아는 사내 출판 부문 재구성에 들어가 GPU, KPG, 그라신도와 BIP, 엘렉스, m&c!를 각각 별도의 매니지먼트 밑에 넣어 그라메디아 사옥 2층과 5층에 각각 통합 배치했다. 즉 6개의 출판 부문이 2개의 매니지먼트 밑에 모인 것이다. 출판 그룹들 사이의 중복 업무들을 조정해 비효율을 최소화하려는 조치다. 과거엔 그라메디아 전체 도서의 IP 판매를 담당하는 직원 두 명을 KPG에 두고 전 세계 국제 도서전을 따라다니며 IP 마케팅을 하게 했는데 이번 조직 변경과 함께 각각의 매니지먼트 밑에 IP 담당팀을 하니씩 따로 두었다. 한국처럼 활발히 활동하는 도서 에이전시 기업이 없어 대형 출판사들은 그라메디아처럼 자체 IP 마케팅팀을 운영한다. BIP를 비롯한 대부분의 출판 그룹들은 약 30명 정도의 편집인들로 구성되어 있고 GPU만 조직이 더 큰 편인데 한 명의 편집인이 일반 소설이나 자기 계발서의 경우 1년에 12~14개 타이틀, 페이지가 적은 아동 도서의 경우 60개 타이틀 전후를 출판한다. 따라서 그라메디아 전체 편집인들을 200명으로 보고 평균 15개 타이틀을 출판한다면 전체적으로 연간 3,000개 타이틀 이상을 출판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2025년 10월 31일(금) BIP 사무실에서 만난 2년 경력의 편집인 크리스나(Krisna)에 따르면 그라메디아의 연간 출판물이 5,000개 타이틀 정도라 말했다. 따라서 그 정도의 물량을 쳐내는 그라메디아에서 2년 연속 11월에 혜민스님과 오수향 작가 등 한국작가들을 초청해 홍보 행사를 진행한 것은, 비록 최근 일본과 중국의 강세에 약간 밀리는 느낌이 있지만 여전히 한국 도서들이 인도네시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 2024년 인도네시아 국제도서전(IIBF 2024) 당시 그라메디아 부츠에 표시된 출판 그룹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현지 진출을 위한 선택지 그라메디아 외의 대형 출판사들 중 에를랑가 출판사는 교과서와 참고서 출판 전문이어서 일단 논외로 한다. 교과서 출판사로 선정되면 교육부가 일감을 몰아주니 일단 땅 짚고 헤엄치기가 되지만, 학습 관련 도서에는 책 가격이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고 'HET'라 불리는 가격 캡이 씌워져 크게 이익을 내기엔 제약이 따른다. 수라바야에 본사를 둔 미잔 그룹도 노우라 북스(Noura Books), 븐땅 뿌스타카(Bentang Pustaka) 같은 사내 출판 그룹을 운영하며 나름 그라메디아와 쌍벽을 이루려 노력하고 심지어 상당히 성공적이다. 한편 아그로메디아는 26개의 계열 출판사들로 나뉘어 있어 사실상 가장 큰 조직이지만 그 결속력이 그리 탄탄하지 못하다. 계열사들 중 트랜스메디아 뿌스타카(Transmedia Pustaka)가 독보적으로 한국 원작 번역 도서를 많이 출판했고 그중 김수현 작가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Hidup Apa Adanya)』(2020), 유홍균 작가의 『자존감 수업(How to Respect Myself)』(2020) 등은 베스트셀러로 구분된다. 이들 대형 출판사들 외에 한국 원작 번역 도서를 내는 중견 출판사들이 좀 더 있다. 하루 출판사(Penerbit Haru)는 주로 한국과 일본의 라이트 노벨을 전문적으로 번역·출판해 왔고 최근에는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I want to die but I want to eat tteokpokki)』(2019), 정보라 작가의 단편집 『저주토끼(Cursed Bunny)』(2022) 등 자기 계발서와 정극 소설로도 스팩트럼을 넓혔다. 쉬라 북스(Shira Books)도 최근 서은채 작가의 소설 『내가 죽기 일주일 전(Seminggu Sebelum Aku Mati)』 등 한국 도서 여러 권을 출판했고 바짜 출판사(Penerbit Baca)는 한강 작가의 주요 작품들을 비롯해 주로 중량감 있는 한국 작품들을 번역·출판했다. 인도네시아에 수많은 출판사들이 있지만 그중 한국 도서 IP를 구매해 번역·출판하는 회사들은 한정적인데, 그것은 각 출판사들의 역량에 비추어 어쩔 수 없다 느껴진다. 인도네시아에 도서 IP를 판매하려는 출판사들은 상대방의 의사소통이나 계약, 인세 지불 문제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은 도서 에이전시를 사용하는 경우가 지배적이다. 앞서 언급한 에릭양(EYA)이 동남아 시장에 대한 도서 IP 중계를 주도해 왔고 최근에는 임프리마(Imprima), KL 매니지먼트, BC 에이전시, 샘(Sam), 신원, 더 초이스 메이커(The Choice Maker) 등의 다른 한국 도서 에이전시들이 현지 출판사들과 접촉하고 있다. 도서 IP를 판매할 현지 출판사를 추천하라면 누가 뭐래도 그라메디아가 첫 번째 선택일 수밖에 없다. 출판사라면 웬만해서는 얼마든지 책을 잘 찍어낼 수 있지만 그 책을 팔 100개 이상의 대형 오프라인 서점과 잘 구축된 온라인 서점, 그 책을 대중에게 홍보할 복수의 신문과 라디오, TV,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 그리고 충분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현지의 다른 경쟁사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강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급하지 않은 출판사들은 판매 계약을 할 시 힘들 수도 있다. 가가스 미디어 같은 중견 출판사조차 처음부터 악수를 두며 현지에서 잘 알려진 오수향 작가의 책 판매에 고전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다수의 경험이 있는 대형 출판사들이 판매를 잘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아이디어페스트 인스타그램 계정(@ideafestid), https://www.instagram.com/p/DPTv8vSE33s/ - 오수향 작가 인도네시아 일정(2025. 10. 30. ~ 11. 02.) 동반 취재 - 그라메디아 BIP 직원 Lia, Krisna 인터뷰
성명 : 배동선[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인도네시아/자카르타 통신원] 약력 : PT. WALALINDO 이사, 작가,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