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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감독의 인도네시아 로컬 영화 <판결(Keadilan)>

2025-12-17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인도네시아에서 지금까지 관측된 가장 일반적인 합작 영화 제작 방식은 해외 기업이나 파트너로부터 영화 제작비를 유치하는 것이었다. 2016년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정권이 해외투자를 허용하지 않던 블랙리스트 상당 부분의 규제를 해제하면서 대부분의 영화 산업을 해외 자본에 개방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더욱 본격화되었다. 아마 한국 씨제이 이엔엠(CJ ENM)이 인도네시아 합작 영화에 가장 많이 투자한 해외 기업으로 예상된다. 이후에 에스케이 글로벌(SK 글로벌)에 이어 최근 바른손 이앤에이 등이 추가되었다. 대형 스크린 개봉 영화로는 2018년 작 <위로 사블렝(Wiro Sableng: Pendekar Kapak Maut Naga Geni 212)>이 폭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스의 제작비 지원을 받아 첫 할리우드 자본이 들어간 로컬 영화로 이름을 올렸다. 같은 해 프리미어 스트리밍 된 <밤이 온다(The Night Comes For Us)>는 넷플릭스 자본으로 제작된 첫 넷플릭스 인도네시아 오리지널 영화다.
 

또 다른 형태의 합작 영화 제작 방식은 해외 파트너 제작사와 배우, 감독의 교류다. 주로 인도네시아 배우와 감독들을 해외로 수출한다. 한국에도 <밤이 온다>의 주연 조 타슬림(Joe taslim)이 장혁 주연의 <검객>(2020)에 출연했고, <레이드: 첫 번째 습격>(2012)의 이코 우와이스(Iko Uwais)는 할리우드 영화 <익스펜더블 4(Expend4bles)>(2023), <애쉬(ASH)>(2025)에 출연했다. 또 다른 유명 액션배우인 야얀 루히얀(Yayan Luhian), 아리프 A. 라흐만은 <존윅 3>(2019) 등에 출연했다. 최근엔 인도네시아 감독들도 할리우드 러브콜을 받아 모울리 수리야(Mouly Surya) 감독이 제시카 알바 주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트리거 워닝>(2024)를 촬영했다. 띠모 쨔햔토(Timo Tjahjanto) 감독은 <노바디 2>(2025)를 감독했다. 반면 외국 배우를 기용해 로컬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2009~2011년 사이 일본 성인 영화배우들을 기용해 여러 편의 호러 영화를 제작했다. 한국 소설, 영화, 드라마의 리메이크도 합작 영화 제작 방식을 일부 취하고 있다. 물론 해외 로케이션과 관련한 협력도 합작 방식 중 하나로 간주된다. 

또 다른 합작 방식은 인도네시아 감독 혹은 팀이 한국에서 한국 영화를 촬영하거나 한국 팀이 인도네시아에 회사를 설립하고 인도네시아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이다. 전자의 경우는 아직 선례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소나무 시네 하우스의 오리지널 <포에버 홀리데이 인 발리(Forever Holiday in Bali)>(2018), 믹스 엔터테인먼트의 <적막(Sunyi)>(2019)이 있다. 대체로 현지에 세운 한국 영화 제작사가 현지 감독과 배우들을 기용해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이다. 한국 제작사가 인도네시아에 회사를 설립한 것, 제작비 전액을 전적으로 한국 제작사가 부담했다는 것 정도가 특이 사항으로 기재될 수 있을 정도로 종래의 자본 투자 방식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된다. 
현지에 설립된 한국 영화 제작사의 작품들

< 현지에 설립된 한국 영화 제작사의 작품들 - 출처: 'IMDb' >

<포에버 홀리데이 인 발리(Forever Holiday in Bali)>는 우수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오디 C 하라합(Ody C. Harahap) 감독이 제작했지만 1만 9,471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실패했고, <적막(Sunyi)>은 MD 엔터테인먼트가 이른바 '다누르(Danur) 호러 세계관'을 만들었다. 몇 년 후엔 첫 천만 관객 영화로 등극한<무용수 마을의 대학생 봉사활동(KKN di Desa Penari)>의 호러 거장 아위 수리야디 감독 작품으로 나름 선전했지만 41만 3,256명 관객 동원에 머물렀다. 

2025년 11월 12일(수) 자카르타 시내 에피센트룸 몰에 입점한 시네마 21(Cinema XXI)에서 갈라 프리미어 시사회를 한 <판결(Keadilan)>은 앞서 말한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라수나 사이드 거리 에피센트룸 몰의 시네마 21 상영관은 갈라 프리미어 행사에 자주 쓰이는 곳이다.
판결(Keadilan) 포스터

< 판결(Keadilan) - 출처: 시네마 21(Cinema XXI) 홈페이지 >

시네마 21 홈페이지에 게재된 영화 프로필을 살펴보면 제작, 감독, 각본 부분에 한국인 이름 등장 빈도수가 높다. 제작자는 송현주, 배재연 그리고 <타인은 지옥이다>, <사라진 밤>등의 이창희 감독과 <해골귀신(Tengkorak)>의 유스론 푸아디(Yusron Fuadi) 감독 공동 연출을 볼 수 있다. 제작사는 인니꼬르 픽처스다. 인도네시아와 꼬레아를 합친 이름의 현지 한국 회사다. 한국에서 제작비를 지원하고 한국인 감독을 투입해 MD 픽처스 및 제이앤씨 미디어(JNC Media) 배급을 통해 현지 배우, 스태프들과 촬영한 뒤 배급한 인도네시아 영화라는 뜻이다. 한국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한국-인도네시아 합작영화 제작 방식의 변곡점을 찍었다. 

<판결(Keadilan)>은 인도네시아에서는 매우 드문 법정 스릴러물이다. 11월 20일(목) 정식 개봉을 앞두고 현재 자카르타와 데뽁의 3개 상영관에서 하루 한 타임씩 상영을 진행하며 관객 반응을 살피는 가운데, 딱 일주일 전인 11월 13일(목) 시내 디스트릭트 들라빤(District 8) 아스타몰(Astha Mall)의 퍼글렌(FUGLEN) 카페에서 인니꼬르 픽처스(Inni Kor Pictures)의 송현주 대표, 잉크 픽처스의 김정호 대표를 만났다.
자카르타에서 만난 인니꼬르 픽처스(Inni Kor Pictures)의 송현주 대표, 잉크 픽처스의 김정호 대표

< 자카르타에서 만난 인니꼬르 픽처스(Inni Kor Pictures)의 송현주 대표, 잉크 픽처스의 김정호 대표 – 출처: 통신원 촬영 >

2주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오간다는 송 대표는 이미 3년째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판결(Keadilan)>은 첫 번째 영화로 작년 하반기에 촬영했지만 거의 1년간 개봉 순서를 기다렸다 이제야 스크린에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현재 두 번째 영화를 촬영 중이라고 전했다. 일단 11월 12일(수) 갈라 프리미어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공통된 반응은 인도네시아 배우들이 출연한 로컬 영화인데 모든 것이 한국 영화 같다는 의견이었다. 한국의 이창희 감독이 연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스론 푸아디 감독은 한국풍의 연출에 오리지널 인도네시아 감성을 녹여냈다. 

사실 한국 천만 관객 영화가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해 5만 관객을 동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인도네시아와 감성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파묘>나 <검은 수녀들>이 각각 260만, 100만 명 현지 관객을 들이며 선전한 것은, 영화가 잘 만들어진 이유도 있지만 어느 한 부분에서 인도네시아인들의 취향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7번방의 선물> 같은 경우는 2013년 작품일지라도 인도네시아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585만 명 관객을 동원해 2022년 현지 리메이크를 진행했다. 거의 같은 스토리 구도를 사용했지만 배우는 인도네시아 배우로 기용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배경과 감성으로 변화를 줬다. 이를 토대로 한국 영화 기법 전문가가 현지 감성을 가진 현지 감독과 함께 메가폰을 잡은 <판결(Keadilan)>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올릴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2025년 11월 12일(수) 에피센트룸 몰 시네마 21에서 열린 갈라 프리미어 시사회

< 2025년 11월 12일(수) 에피센트룸 몰 시네마 21에서 열린 갈라 프리미어 시사회 - 출처: 잉크 픽쳐스 김정호 대표 제공 >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수익구조에 대한 사항이다. 지금까지 외국자본이 인도네시아에 들어와 직접 영화를 만들지 않고 현지 영화제작사에 제작비를 투자하는 방식을 선호했던 것은 아마도 그런 형식으로 얻는 극장 수입 이윤을 크게 기대할 수 없어서였을지 모른다. 현지 영화표 가격을 4만 루피아(약 3천원)로 상정했을 때 백만 관객을 동원하면 총 수입이 30억 원쯤 된다. 하지만 대개 극장과 수입을 반반 나누는 식이니 실제로 제작사가 손에 쥐는 수입은 15억원이다. 

한국에서는 15억 원이면 인디 영화 제작비로 볼 수 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100만 관객을 동원했을 경우 중간 이상 수익을 낸 분위기이니 제작비는 그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처음 영화 시장을 조사하던 당시 로컬 영화의 일반적인 손익분기점은 30만 명 정도였다. 그렇다면 제작비가 대략 5억 원이 채 안 되었을 것이다. 아이엔케이코리아 송대표는 지금 최소 그 두 배(대략 10억 원)의 제작비가 지출된다고 말한다. 그러니 관객이 최소 60만 명은 되어야 제작비 회수가 가능하다. 이 계산에 따르면 2023년 로컬에서 만든 <헬로 고스트> 리메이크에 61만 3,212명이 관람했기에 딱 손익분기점을 돌파해 손해를 피한 셈으로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1년에 대략 120편 정도 영화가 나오고 그중 20편 정도가 1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다. 그러니 충실히 제작하고 구설수에 오르지만 않으면 최소한 손익 분기점을 넘기는 것은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익이 난다 해도 비교적 인건비가 높은 한국 영화 제작 관련자와 한국 영화 제작사로서는 합리적이지 않은 수치일 수 있다. 그래서 2016년 인도네시아 영화 시장에 해외 자본이 개방된 이후에도 한국인이 직접 각본을 쓰고 메가폰까지 잡으면서까지 로컬 영화를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판결(Keadilan)>을 제작한 한국 제작팀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을 것으로 예상된다. 흥행 요소를 갖춘 영화들을 다작하거나, 해외 수출(한국 수출을 포함)에 큰 비중을 두거나, 언젠가는 한국 제작사들이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영화를 만들 교두보가 될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 영화 시장에 대한 한국 영화업계의 관심이 점점 높아가는 이때 우선은 새로운 시도를 한 <판결(Keadilan)>이 어떤 성적을 내느냐에 따라 앞으로 한국-인도네시아 합작영화제작의 패러다임 표준이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개봉 일주일 차인 2025년 11월 26일 기준,  <판결(Keadilan)>의 전국 유료 관객 집계는 9만 5,900명이다. 법정 스릴러물은 인도네시아 관객들에게 생소했던 것일까?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시네마 21(Cinema XXI), https://21cineplex.com/
- IMDb, https://www.imdb.com/title/tt15134108/
- IMDb, https://www.imdb.com/title/tt10015812/?ref_=fn_t_2
- 인니꼬르 픽처스 송현주 대표, 잉크 픽처스 김정호 대표 인터뷰
- cinepoint, https://cinepoint.com/#/pages/directory/detail/3231

통신원 정보

성명 : 배동선[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인도네시아/자카르타 통신원]
약력 : PT. WALALINDO 이사, 작가,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