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시나몬 향이 밴 따뜻한 뱅쇼(Forralt bor) 김이 피어오르고, 영롱한 조명 아래 나무 오두막마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수공예품이 가득하다.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이곳은 12월 내내 축제가 계속되는 도시, 부다페스트의 심장인 '뵈뢰슈머르티 클래식 엑스 마스(Vörösmarty Classic Xmas)'다. 헝가리인들에게 12월은 곧 크리스마스다. 한 해 중 이날만을 기다려온 듯, 도시 전체가 축제의 설렘으로 가득 차는 시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뵈뢰슈머르티 광장에서 성 이슈트반 대성당 앞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다. 올해는 특히 유럽 여행 전문 매체 ≪Tollwayr≫ 선정 '유럽 최고 인기 크리스마스 마켓' 1위에 오르며 전 세계 여행자들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하지만 이 환상적인 풍경 이면에는 전통과 상업화, 그리고 현지인과 관광객 사이의 미묘한 줄다리기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이 숨어있다. 장인의 온기가 깃든 오두막,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

< 뵈뢰슈머르티 광장 크리스마스 마켓 전경. 헝가리 장인들이 직접 만든 전통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나무 오두막들이 늘어서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광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화려한 음식 부스가 아닌, 소박하게 자리 잡은 수공예품 오두막들이다. 1998년 시작된 이 마켓의 가장 큰 자부심은 단연 '품질'이다. 주최 측은 '상업화'라는 비판 속에서도 마켓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헝가리 민속 예술 협회(Associationof Hungarian Folk Artists)와 같은 전문 기관의 심사위원들이 모든 입점 상품을 심사하는 엄격한 시스템을 고수하고있다. 이곳에서는 헝가리 장인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물건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들을 위한 오두막에서는 정성껏 깎아 만든 나무 인형과 전통 문양이 새겨진 피리가 눈길을 끌고, 다른 오두막에서는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려 넣은 도자기 그릇과 화려한 전통 자수가 놓인 식탁보가 진열되어 있다. 특히 추운 겨울을 녹여주는 따뜻한 양모 슬리퍼와, 꿀과 향신료를 넣어 구운 뒤 아이싱으로 정교하게 장식한 헝가리 전통 쿠키 '메제슈컬라치(Mézeskalács)' 가게 앞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비슷 비슷한 공장제 기념품이 아닌, 대를 이어온 장인의 온기가 담긴 이 물건들이야말로 이 마켓이 왜 '유럽 최고'로 꼽히는지 증명한다. '1,600포린트'와 '두바이 랑고시'의 기묘한 공존

< 굴라쉬와 랑고쉬 등 전통 먹거리를 즐기려는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푸드 코트의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음식 부스에서 시작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곳의 음식 부스 대부분은 메뉴판을 제대로 게시하지 않았다. 인파에 떠밀려 겨우 주문을 마치고 카드를 내밀었을 때가 되어서야, 예상보다 훨씬 높은 금액에 당황하게 되는 구조였다. 축제 분위기 속에서 가격으로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상술이라는 현지 언론의 거센 비판이 쏟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를 의식한 듯 올해 주최 측은 모든 음식 부스가 의무적으로 '1,600포린트(약 7,040원) 고정 가격 메뉴'를 포함하도록 하는 강수를 두었다. 그러나 이는 교묘한 눈속임에 가까웠다. 현지 식당에서 2,500포린트(약 11,000원) 면 맛볼수 있는 굴라시(Gulyás)는 이곳에서 3배를 훌쩍 넘었고, 시내 길거리에서 1,500포린트(약 6,700원) 면 충분한 랑고시(Lángos)는 치즈와 사워크림을 얹는 순간 3배 이상으로 가격이 치솟았다. 1,600포린트 고정 가격 메뉴를 빼고 다른 메뉴의 가격을 작년보다 더 올린 것이다. 이는 현지 물정을 모르는 관광객들을 겨냥한 전형적인 '바가지 상술'이다. 실제로 작년, 굴뚝빵을 시중 가격의 3배 이상으로 판매하던 한 상인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서유럽이나 미국 같은 부유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이 정도 가격을 내도 괜찮다"라고 말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1,600포린트 메뉴만으로는 이러한 상술을 막기엔 역부족인 듯했다. 올해 SNS를 뜨겁게 달군 '두바이 스타일 랑고시' 앞에서 그 모습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현지인들은 고개를 저으며 발길을 돌리는 반면, 관광객들은 SNS에 올릴 특별한 경험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모습은 마치 두 개의 다른 세상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듯한 기묘한 풍경이었다. 서울 광장시장의 '바가지요금' 논란이 보여주듯, 전통 시장의 명성을 지키려는 노력과 관광객을 상대로 한 상업화의 유혹 사이의 줄다리기는 이제 전 세계적인 관광지가 안고 있는 공통의 과제다. 실제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뵈뢰슈머르티 마켓의 푸드코트에서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해의 마지막을 기념하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러 온 축제 현장에서, 들뜬 분위기와 인파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음식을 구매한 뒤 불쾌한 경험을 하지 않으려면 이제 약간의 현명함이 필요하다. 뵈뢰슈머르티 마켓의 '1,600포린트 고정 가격 메뉴'처럼, 대부분의 관광지에는 현지인들을 위해 숨겨진 합리적인 선택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화려한 '인증샷용' 음식의 유혹을 잠시 내려놓고, 방문 전 잠시 시간을 내어 현지 언론이나 커뮤니티를 통해 이런 '가성비 맛집' 정보를 찾아보는 작은 노력이 당신의 크리스마스를 훨씬 더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Hungary Today≫ (2025. 11. 27). Budapest Christmas market voted Europe’s most popular, https://hungarytoday.hu/budapest-christmas-market-voted-europes-most-popular/ - ≪Telex.hu≫ (2025. 11. 16). Ez itt húszezerforint az asztalon – megnyíltak a belvárosi karácsonyi vásárok, https://telex.hu/belfold/2025/11/15/karacsonyi-vasar-bazilika-vorosmarty-ter-forralt-bor-retes-toltott-kaposzta-langos - ≪Pénzcentrum≫ (2025. 11. 13). Kiadta afigyelmeztetést a Vörösmarty téri vásár: ennyibe fog kerülni a legolcsóbbételük - ettől leesikaz állad, https://buly.kr/FWUGias - ≪HVG≫ (2025. 11. 10). 1600 forintba kerülidén a kedvezményes menü a budapesti karácsonyi vásáron. https://hvg.hu/itthon/20251110_1600-forintba-kerul-iden-a-kedvezmenyes-menu-a-budapesti-karacsonyi-vasaron
성명 : 유희정[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헝가리/부다페스트 통신원] 약력 : 『한국 영화 속 주변부 여성과 미시 권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