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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내 한류: ‘오락’으로 시작해 ‘문화 동반자’로 거듭나다

2026-02-19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2019년 1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방영된 <사랑의 불시착>은 필리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해당 작품은 현지 시청자들 사이에서 높은 관심을 모으며 한국 드라마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극 중 윤세리와 리정혁 역을 각각 맡은 손예진과 현빈은 드라마 종영 이후인 2022년 3월 실제로 결혼하며 국내외 대중의 주목을 다시 한 번 받았다. 작품 속 인연이 현실로 이어지면서 두 배우에 대한 글로벌 관심도 함께 확대됐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두 배우는 필리핀 통신사 스마트 커뮤니케이션즈(Smart Communications)의 광고 모델로 발탁됐다. 스마트 커뮤니케이션즈는 필리핀 최대 통신사 PLDT의 자회사로, 글로브 텔레콤(Globe Telecom)과 함께 필리핀 이동통신 시장을 이끄는 주요 사업자다. 가입자 수 기준 2위의 무선 통신 및 디지털 서비스 제공업체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한국 드라마가 현지 대중문화는 물론 광고·통신 산업 영역까지 영향력을 확장하는 현상은, 필리핀 내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단순한 오락 소비를 넘어 양국 간 문화 교류의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분석된다.

한국 드라마 가운데 필리핀에서 인기를 누린 작품은 <사랑의 불시착>에 국한되지 않는다. 1980년대 후반 서울에 거주하는 다섯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응답하라 1988> 역시 현지에서 큰 사랑을 받으며 한국형 가족 드라마의 매력을 알렸다. 또한 송혜교가 주연을 맡아 학교 폭력과 복수를 소재로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더 글로리>도 필리핀 시청자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기록했다. 사회적 메시지와 서사적 긴장감을 결합한 작품성은 현지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이보다 앞선 2016년 방영된 태양의 후예는 파병지라는 특수한 공간을 배경으로 군인과 의사의 사랑을 그린 독특한 설정으로 필리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이 작품은 2020년 필리핀 최대 지상파 방송사인 지엠에이 네트워크(GMA Network)를 통해 현지 실정에 맞게 리메이크됐으며, 필리핀 톱스타 딩동 단테스(Dingdong Dantes)가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이 같은 사례들은 한국 드라마가 단기간의 흥행을 넘어, 필리핀 방송·콘텐츠 산업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며 현지 문화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장면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장면

<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장면 - 출처: '필스타(Philstar)' >

필리핀 내 한국 드라마의 본격적인 유입은 2003년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지 방송사를 통해 <가을 동화>, <천국의 계단>, <풀 하우스>, <내 이름은 김삼순>, <커피프린스 1호점> 등이 잇따라 방영되면서 한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이후 필리핀 내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왔다. 20세기 말과 21세기 들어 아시아 각국을 대상으로 비교해 보더라도, 특정 국가의 드라마가 20년 이상 안정적인 인기를 유지한 사례는 드문 편에 속한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장기 흥행의 배경으로 공감 가능한 서사 구조와 체계적인 해외 마케팅, 그리고 보편적 인간 감정을 섬세하고 진정성 있게 담아내는 한국 드라마 특유의 연출 방식을 꼽고 있다. 그 결과 필리핀 사회 전반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크게 확대됐으며, 드라마 촬영지와 배경지를 방문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필리핀 관광객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처럼 대중문화 소비가 관광 수요로 이어지는 흐름이 뚜렷해지면서, 관련 분야에 대한 학술·교육적 관심 또한 점차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마닐라지사가 발표한 2025년 한국관광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한국을 찾은 필리핀 관광객은 총 61만 5,141명으로, 전년 대비 19% 증가했다. 필리핀은 중국, 일본, 대만, 미국, 홍콩에 이어 여섯 번째 방한 시장이자, 아세안 국가 가운데 가장 많은 방문객을 기록한 국가로 집계됐다. 양국 간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관광을 매개로 한국어 학습과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고등교육 기관으로도 확산되는 양상이다. 필리핀 대학교(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Diliman) 방송통신학부는 2020년 여름 학기부터 한국 드라마 분석 과목을 개설했다. 해당 수업에서는 사랑의 불시착, 시카고 타자기, 미생 등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다뤘다. 정원 20명 모집에 173명이 지원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이며, 한국 드라마가 단순한 시청 콘텐츠를 넘어 학문적 탐구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방증했다. 나아가 필리핀 대학교는 유피 딜리만(UP Diliman, 필리핀 대학교 딜리만) 한국연구센터(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Korean Research Center)를 중심으로 매년 필리핀-한국 연구 심포지엄이 개최되고 있으며,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학술 연구와 제도적 기반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도 형성되고 있다.
제10회 필리핀-한국 연구 심포지엄

< 제10회 필리핀-한국 연구 심포지엄 - 출처: '필리핀 대학교 UP 한국연구센터(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Korean Research Center)' >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25년 4월 28일부터 29일까지 UP 한국연구센터(KRC) 주최로 제10회 필리핀-한국 연구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필리핀 대학교 딜리만 언어학과 및 국제학센터(CIS) 공동 주관, 한국국제교류재단(KF) 후원으로 마련됐다. “필리핀 한국학 10년: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주시하며, 미래를 내다보다(A Decade of Korean Studies in the Philippines: A Glance at the Past, A Gaze at the Present, A Glimpse of the Future)”를 주제로 열린 이번 심포지엄은 필리핀 내 한국학 연구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로 기획됐다. 행사에서는 먼저 ‘과거’ 세션을 통해 지난 10년간 필리핀 내 한국학의 제도화 과정과 주요 성과를 정리했다. 이어 ‘현재’ 세션에서는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 등 대중문화의 인기가 학술 연구와 교육 커리큘럼으로 확장되는 흐름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마지막 ‘미래’ 세션에서는 인공지능(AI) 기반 한국어 교육의 가능성과 함께 양국 간 경제·외교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한국학의 외연을 문화 연구를 넘어 보다 폭넓은 대외 협력과 인적 교류의 장으로 확장할 방향을 모색했다. 특히 학자와 학생, 교육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한 이번 행사는 필리핀 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관심이 보다 심층적인 이해와 실질적 교류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2026년 현재 필리핀은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은 국가 중 하나로 평가된다. 현지에서 한국 드라마는 단순한 시청 콘텐츠를 넘어, 문화·경제·교육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어 학습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대학 내 한국학 연구가 활성화되는 등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심층적 이해와 학문적 탐구가 확산되는 추세다. 이는 대중문화 소비가 일회성 유행에 그치지 않고 제도권 교육과 연구 영역으로까지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된 관광·교육·학술 교류의 확대는 양국 간 인적 교류 기반을 한층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콘텐츠 중심의 관심을 넘어, 장기적 관점에서 상호 이해와 실질적 협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제 중요한 과제는 지금까지의 성과를 발판 삼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일이다. 그동안 필리핀에서의 한국 문화 수용은 드라마와 일부 대중음악에 편중되는 경향을 보여 왔으나, 대학 내 한국학 개설, 정기 심포지엄 개최, AI 기반 한국어 교육 논의 등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점차 ‘깊이’와 ‘다양성’을 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는 이러한 흐름을 한층 확장해 영화, 문학, 예술, 철학, 역사 연구 등 한국 문화 전반으로 외연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유념해야 할 점은 이 과정이 단순한 ‘일방향적 전파’가 아니라 ‘쌍방향적 교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리핀 문화를 존중하고 문화 다양성을 보존하려는 성찰적 접근이 함께 이루어질 때, 한류는 현지에서 반감을 사지 않고 보다 건강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 앞으로 10년은 양국이 서로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문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 가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UP News》(2019. 12. 8), UP Korea Research Center and UP Department of Linguistics hold the 6th Philippine Korean Studies Symposium, 
https://up.edu.ph/up-korea-research-center-and-up-department-of-linguistics-hold-the-6th-philippine-korean-studies-symposium 
- 《Philstar》(2020. 3. 3), How I ‘crash-landed’ ahead of the rest, 
https://www.philstar.com/entertainment/2020/03/03/1997531/how-i-crash-landed-ahead-rest 
- 《Philstar》(2020. 8. 15). Korean Wave UP Diliman offers class on K-dramas, 
https://www.philstar.com/lifestyle/on-the-radar/2020/08/15/2035520/diliman-offers-class-k-dramas  
- 《allkpop》(2022. 10. 20), "Our fellow countrymen idolize Korean actors, while our artists are losing their jobs," Filipino senator Jinggoy Estrada under fire for wanting to ban 
K-dramas in the Philippines, https://buly.kr/8en0vxY
- 《Inquirer》(2022. 11. 8), Jinggoy Estrada bemoans ‘antagonist’ tag after floating idea on K-drama ban, 
https://newsinfo.inquirer.net/1690742/jinggoy-estrada-bemoans-antagonist-tag-after-floating-idea-on-k-drama-ban 
- 《Philstar》(2023. 1. 6), Song Hye Kyo, Lee Do Hyun’s The Glory is most-watched show on Netflix Philippines, 
https://www.philstar.com/entertainment/2023/01/06/2235768/song-hye-kyo-lee-do-hyunsthe-glory-most-watched-show-netflix-philippines 
- 《Seasia Stats》(2024. 2. 13), 15 Countries with the Highest K-Drama Viewers, ttps://seasia.co/infographic/15-countries-with-the-highest-k-drama-viewers 
-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Korean Research Center》(2025. 5. 8), Academicians and Scholars of Korean Studies gathering at the 10th Philippine Korean 
Studies Symposium, 
https://upkrc.wordpress.com/2025/05/08/academicians-and-scholars-of-korean-studies-gathering-at-the-10th-philippine-korean-studies-symposium/ 
- 한국관광데이터랩, https://datalab.visitkorea.or.kr/site/portal/ex/bbs/View.do?cbIdx=1132&bcIdx=31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