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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가성비·그리고 K-감성, 필리핀 버거 시장에서 살아남기

등록일
2026-06-19
수집기관
  • 해당 국가

    Philipp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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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내용

필리핀 요식업계에서 햄버거는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메뉴 중 하나다. 현지에서 '막도(McDo)'라는 친근한 별칭으로 불리는 맥도날드(McDonald's)를 비롯해 버거킹(Burger King), 웬디스(Wendy's) 등 글로벌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계 회사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는 주인공은 바로 필리핀 ‘국민 패스트푸드’ 졸리비(Jollibee)다. 졸리비는 바나나 케첩을 사용해 필리핀인이 가장 선호하는 특유의 달콤한 맛을 더한 스파게티와 치킨(치킨조이)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이에 더해 달콤하고 짭조름한 양념이 들어간 '얌버거(Yum Burger)'와 거대한 패티가 특징인 '챔프 버거(Champ)'를 앞세워 필리핀 소비자들 입맛을 장악하고 있다. 그 외에도 트로피컬 헛(Tropical Hut), 작스 버거(Zark's Burgers), 아미네이비(ArmyNavy), 불리 버거(Bully Burger), 브라더스 버거(Brothers Burger) 등이 각자 소비자층을 아우르며, 시장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대형 쇼핑몰을 중심으로 하는 요식업 시장 이면에는 서민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독자적인 '길거리 버거' 시장이 존재한다. 밥을 무조건 주식으로 삼는 필리핀인들에게 버거는 한 끼 식사라기보다 식사 사이 출출함을 달래는 간식인 '메리엔다(Merienda)'나 야식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길거리 버거 브랜드들은 바로 이 틈새시장을 가성비와 철저한 현지화로 공략했다.

세 업체 중 가장 먼저 1981년에 설립된 '버거 머신(Burger Machine)'은 "잠들지 않는 버거(The burger that never sleeps)"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업체다. 미국 푸드 트럭에서 영감을 얻어 낡은 미니버스를 개조해 주유소 근처에서 판매를 시작한 것이 필리핀 최초의 24시간 버거 가판대이다. '버거 머신'은 필리핀 국민총생산(GDP) 중 약 8%를 차지하고 있는 BPO(콜센터 외주 중심) 산업 야간 근로자들과 운전기사들의 심야 식사를 책임지며 성장했다. 실제로 깊은 밤 주유소 옆이나 대로변을 걷다 보면, 화려한 조명 사이로 지글지글 패티 굽는 냄새를 풍기는 버거 머신의 주황색 가판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매연과 열기 속에서도 야간 근무를 마친 직원들과 지프니 운전기사들이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가판대 앞 플라스틱 의자에 기대어 버거를 베어 물어 먹는 풍경은 흔한 필리핀 밤거리 풍경이다.
    
미니트 버거에서 구매 중인 소비자들 조리 중인 미니트 버거들
< 미니트 버거에서 구매 중인 소비자들(좌), 조리 중인 미니트 버거들(우) - 출처: 통신원 촬영 >
1982년에 설립된 '미니트 버거(MINUTE BURGER)'는 'Buy 1 Take 1(한국의 1+1의 개념)'을 내세우면서 시장에 진입했다. 미니트 버거는 최근 '밈 장인(Meme Lord)'이라고 불릴 정도로,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한 마케팅을 창의적으로 진행하면서 젊은 세대와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1997년 설립된 '엔젤스 버거(Angel's Burger)'는 초기에는 큰 실패를 겪었으나, 창업주 부부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딴 1만 달러로 사업 재기에 성공했다는 영화 같은 실화로도 유명한 업체다. '대중적인 버거(Burger ng Bayan)'라 불리는 '엔젤스 버거'는 현재 필리핀에서 가장 압도적인 매장 수를 자랑하는 서민형 버거 매장이다. 단돈 몇십 페소로 버거 두 개를 살 수 있다 보니, 하교 시간만 되면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들이 가판대 앞에 길게 줄을 서서 동전 가득한 손으로 버거를 받아 든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미니트 버거'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과 서민 맞춤형 가격 책정을 통해 필리핀 소비자들 사이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필리핀 빰방가(Pampanga) 지역의 전통 돼지고기 요리를 접목한 '포크 시식 버거(Pork Sisig Burger)'를 2개에 단돈 98페소(한화 약 2,400원)에 선보이며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새콤하고 짭짤하게 볶아낸 다진 돼지고기 요리인 '시식(Sisig)'을 넣어, 한입 베어 물면 굳이 밥이 없어도 필리핀인들이 좋아하는 맛이 입안 가득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중동풍 비프 샤와르마 버거, 남미풍 크리스피 치킨 치미추리 버거 등 이국적인 맛을 필리핀 대중에 입맛에 맞게 변형하여 제공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태어난 통신원 아들 역시 집 근처 길거리 버거 가판대로 발걸음을 자주 옮기곤 한다. 처음에는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들이 즐겨 찾는 가성비 좋은 'Buy 1 Take 1' 재미에 이끌리는 듯하더니, 필리핀에서 태어나서인지 현지 양념이 가미된 버거 맛에 흠뻑 빠진 모습이다. 주변 필리핀 지인들 역시 대형 프랜차이즈 버거들 못지않게 필리핀식 양념 및 먹거리를 사용하는 길거리 버거들을 좋아한다. 필리핀 양념이 가득한 버거를 야무지게 베어 물고는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면, 묘한 대견함과 함께 철저한 현지화와 가성비를 무기로 삼은 필리핀 길거리 버거가 현지 사람들 입맛을 얼마나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여기에 현지 소비 시장을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한류 소비 방식'이다. '미니트 버거'는 2021년 현지 한류 열풍에 발맞춰 한국 감성을 접목한 'K-Razy(크레이지)' 캠페인을 전개했다. 버거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출시한 'K-Razy 밀크티'는 달콤한 동과와 쫄깃한 나타 젤리를 조합해 젊은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았다. 특히 '우울한 겨울(This K-Razy! winter melancholy)'을 콘셉트로, 고객이 직접 한국 드라마 엔딩 크레딧 장면을 연출하고 공유하는 사용자 제작 콘텐츠 이벤트를 진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 손가락 하트 등 한국식 감성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홍보 활동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전파되면서, 고객 유대감 형성은 물론 매출 증대로도 이어졌다.
미니트 버거가 차용한 한류 활용한 홍보 방식 미니트 버거가 차용한 한류 활용한 홍보 방식
< 미니트 버거가 차용한 한류 활용한 홍보 방식 - 출처: 미니트 버거 페이스북 계정(@MinuteBurger) >
이는 필리핀 소비자들에게 한국 문화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세련되고 즐거운 일상 속 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는 향후 한국 버거 브랜드가 필리핀 시장에 진출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라는 뜻도 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 버거 프랜차이즈들의 필리핀 시장 재도전 및 진출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2019년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으로 진출했던 '맘스터치'는 코로나19 대유행과 현지 시장 분석 부족으로 한차례 철수 고배를 마셨으나, 이후 일본과 몽골, 라오스 등에서 성공을 거두며 필리핀 시장에 다시 진입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한국 대표 브랜드인 '롯데리아' 역시 필리핀 진출을 공식화하고 5년 내 30개 매장을 세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닭고기 소비량이 압도적인 필리핀에서, 한국식 치킨버거와 프리미엄 버거는 충분히 승산이 있는 카드다. 다만 현지 가성비 길거리 버거와 가격 경쟁을 벌이거나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는 졸리비와 정면 승부를 펼치는 것은 무모하다. 한국 업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세련된 중고가 외식 시장' 공략에 있다.

필리핀에서 한국 음식(무한 리필 삼겹살, 한국식 치킨 등)은 '세련된 외식 경험'으로 인지되고 있다. 거기에 필리핀인들이 열광하는 단맛과 양념 문화를 고려한다면 두툼한 통닭넓적다리살 패티로 차별화를 둔 맘스터치 '싸이버거'와 롯데리아 불고기 양념을 앞세운 '리아버거' 등은 현지 소비자들 입맛을 공략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필리핀인들 식사 관념을 반영해 '버거 패티+밥+그레이비소스' 조합 등을 판매에 반영하는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필리핀에서 자리를 잡는 데에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처럼 한국 식문화에 대한 높은 호감도와 문화적 친숙함을 활용하고 현지 식습관을 반영한 제품을 출시한다면, 한국 버거 브랜드들은 필리핀 중고가 외식 시장에서 확고하고 독자적인 위치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미니트 버거(Minute Burger) 페이스북 계정(@MinuteBurger), https://www.facebook.com/MinuteBur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