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총선 이후 마하티르 모하마드(Mahathir Mohamad) 말레이시아 총리는 첫 번째 공식 해외 참석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동방정책(Look East Policy)’를 재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올해 93세인 마하티르 총리는 1981년부터 2003년까지 총리로 재임했던 22년간 한국, 일본 등의 경제 성장모델을 본보기로 삼는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을 펼친 바 있다. 당시 총리는 한국과 일본에 유학생을 파견해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1991년에는 말레이시아 대학에 한국학 강좌를 열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한국과 일본의 말레이시아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대기업과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경제협력을 강화했다. 대표적으로 쿠알라룸푸르를 대표하는 페트로나스 트윈타워(Petronas Twin Towers)는 한국의 삼성물산과 일본의 하자마 건설이 주축이 되어 건설했으며 말레이시아 본토와 페낭섬을 연결하는 페낭 대교는 현대건설이 1985년에 완공했다.
<일본과 한국 기업이 건설한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이처럼 ‘동방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마하티르 총리는 총리로 복귀하면서 과거처럼 다시 ‘동방정책’을 재추진해 한국과 일본 기업의 수출과 프로젝트 진출을 확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마하티르 총리가 한국과 일본의 제조업에 관심을 갖고 투자 유치를 우호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관계는 긍정적으로 전망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와 경제가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는 만큼, 한국의 문화 교류 현황을 재검토하고 과제를 모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말레이시아 장기거주비자 발급 순위를 국적별로 살펴보면 중국이 1위, 일본이 2위 그리고 한국이 5위이다. 또한 2017년 기준, 말레이시아는 아세안 국가 가운데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국가 6위로 많은 한국인이 말레이시아에 거주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이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것에 비해 한국인과 말레이시아인 모두 즐길 수 있는 문화 행사는 대부분 콘서트와 같은 케이팝 행사로 한정되어 있다.
반면 말레이시아에서는 일본 축제 중 하나인 ‘본오도리’(盆踊り) 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올해로 42회째를 맞는 본오도리 축제는 공연과 함께 여러 일본의 놀이 등을 즐기고 일본과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도 있다. 본오도리는 일본에서 선조들이 1년에 한 번 후손들을 보러 오는 날로 축제 기간에 전통의상인 유카타를 입고 북소리에 맞춰 함께 춤을 추며 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 많은 말레이시아인과 일본인이 축제를 즐기는 날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일본어 말하기대회도 39년째 열리고 있으며 다양한 일본문화센터가 위치해있기도 하다. 이외에도 매년 3월에는 아일랜드에 가톨릭을 전파한 성 패트릭을 기리는 ‘성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고 독일 맥주축제인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를 기념해 맥주잔 오래 들기 게임 등에 참여해 상대 국가 문화를 체험하기도 한다.
<본오도리 축제에서 민속춤을 추는 말레이시아인들(좌), 쫑링 고등학교 일본문화 동아리 학생들이 직접 만든 물건을 판매하는 모습(우)>
이처럼 다양한 국가의 행사가 말레이시아에서 펼쳐지는 반면, 한국의 전통 행사는 주로 한국인에 한정되거나 열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설날, 단오, 추석 등은 중국과 흡사하기 때문에 중국 이주민이 많은 말레이시아에서는 서로의 문화를 비교하기에도 좋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에서는 단오에 중국의 쫑즈(zongzi)를 변형한 뇨냐 창(Nyonya Chang)을 먹고 추석에는 월병(Moon Cake)을 먹는다. 한국에서도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 지내는 단오와 추석을 지내며 수리취떡과 송편을 먹지만 한국에 비슷한 명절이나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말레이시아인이 많다. 이처럼 말레이시아에 적지 않은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고 한국 문화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전통문화 행사를 마련한다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동방정책의 재시동과 맞물려 한국 기업의 경제협력이 더욱 강화되는 만큼 다양한 한국 문화 행사를 펼칠 수 있는 정책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말레이시아를 단기적인 상품 판매시장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말레이시아인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 수 있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및 가치를 전달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 사진 출처 :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