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은 올해로 30년째 LA에 거주하고 있지만, LA라는 도시가 다른 도시에 비해 볼 때 남달리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사막 지대인 LA는 여름 내내 비가 오지 않아 유일한 강(Los Angeles River)도 물이 다 말라붙어 있다. 푸르른 가로수 물결도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최근 주거비의 급증으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이들이 거리로 나와 앉는 바람에 노숙자들이 연출하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장면들이 LA의 경관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똑같은 LA의 메마르고 조금은 지저분한 풍경을 보고도 이를 화폭에 담는 아티스트들이 있다. 그들은 결코 자신들이 보는 LA를 비틀거나 미화하지 않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진실함이, 그리고 대상을 바라보는 이의 따뜻한 시각이 감동적인 화폭을 만들어낸다.
LA 한국 문화원(원장 김낙중)이 마련한 5번째 LA 아트 프로젝트(LA Art Project) ‘런치 LA 교차로(LAUNCH LA – Intersection)’ 전시회가 그 대표 사례다. 상기 전시회는 LA 한국 문화원 2층 아트 갤러리에서 현재 진행 중이다. 지난 8월 17일(금) 오프닝 리셉션과 함께 시작된 이 전시는 오는 8월 30일까지 계속된다. LA 아트 프로젝트 공모에 선정돼 이번에 전시회를 갖게 된 ‘런치 LA(LAUNCH LA, 대표, 제임스 빠노쪼 James Panozzo)’는 올해 주제인 ‘교차로(Intersection)’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예술 작품 감상은 삶의 질을 높여줍니다. 그리고 창조적인 표현에 대한 공감을 나누는 가운데 커뮤니티의 결속력은 더욱 강화될 수 있어요. 런치 LA는 이러한 믿음에서 시작된 비영리 기관입니다. 둘 이상의 길이 만나는 곳에는 교차로가 있습니다. 문화, 역사, 꿈, 또는 야망이 모여드는 곳에서, 기회를 잡는 이들도 있고 기회를 박탈당하는 이들도 있죠. 어떤 이에게 교차로는 장애물이 놓여 있는 곳일 수도 있고, 통로가 차단된 곳이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부드러운 탄탄대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순간의 경험이 어떤 이들에게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평생을 따라붙기도 합니다. ‘교차로’의 아티스트들은 이처럼 그들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순간들에 대한 반응을 작품 속으로 녹여냈습니다. 이 전시회가 남가주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컬 작가들이 문화적 다양성을 발표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
LA 한국 문화원 김낙중 원장은 오프닝 행사에서 “우리 커뮤니티 아티스트들의 노력을 홍보하는 문화 사절의 일원으로서, 이 멋진 전시가 남가주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예술적 표현에 고마움을 표현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라 전하면서, “이 전시가 남가주의 문화적 다양성을 제대로 평가하는 기회가 되길 소망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런치 LA 인터섹션 전시장>
이번 전시회에서는 심사위원, 에밀리 곤잘레스 자렛(Emily Gonzalez Jarrett)이 531명의 응모자들 가운데 선정한 23명의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LA 한국문화원 전시 공간에서 선보이고 있다. 크리스토퍼 친(Christopher Chinn) 등 23인의 남가주 아티스트들이 출품한 45점의 작품은 회화, 콜라주, 혼합 매체(Mixed Media), 대형 설치 미술, 비디오 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총망라한다.
<로라 피셔의 작품. 왼쪽부터 ‘가로지름’, ‘동쪽 방향’, ‘접선’>
‘런치 LA 인터섹션(Launch LA Intersection)’이라는 전시회 테마 아래에 걸려 있는 로라 피셔(Laura Fisher)의 작품은 <가로지름(Transverse)>, <동쪽 방향(East Bound)>, <접선(Tangency)> 등 3점의 비슷한 분위기의 회화이다. 파스텔 톤에 기하학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녀의 작품은 LA의 수평선과 지평선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LA를 색다른 시각으로 볼 기회를 주었다.
헐리 버럭(Holly Boruck)의 작품, <새와 꿀벌 아닌가요?(Is This Not The Bird And Bee?”)>는 클래식 시기의 그림처럼 세밀한 기법으로 묘사한 정물화다. 새와 벌꿀 외에도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소재를 그림에 포함해 미추를 대비시키는 것과 함께 미추가 공존하는 LA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바비와 켄 아닌가요?(Is This Not Barbie & Ken?)>라는 작품은 완벽한 상업적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바비(Barbie) 인형의 얼굴을 몸체와 떼어놓음으로써 지나치게 외형적인 것을 추구하는 LA라는 도시와 그 속에서 사는 자신에 대해 다시금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쿠니코 루쉬의 작품, ‘나의 제단을 쌓아라’>
쿠니코 루쉬(Kuniko Ruch)는 <나의 제단을 쌓아라(Thou shalt build an alter onto me)>라는 작품을 통해 히스패닉 커뮤니티 내의 미니 마켓 벽면에 그려진 성모마리아 상을 보여줬다. 히스패닉 커뮤니티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을 포착해 의미를 부여하는 타이틀을 지어 연결한 점이 독특했다.
<쿠니코 루쉬의 또 다른 작품, ‘꿈의 행위’>
그의 또 다른 작품은 <꿈의 행위(Dream Act)> 쇼윈도를 통해 보이는 너무 완벽한 모습의 마네킹, 그 밖에는 한 소녀가 선글라스를 내리며 걷고 있고 그 앞으로는 비만 여성이 구부정하게 걷고 있는 모습을 담아냈다. 마네킹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경제의 미를 닮고자 하는 소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쿠니코 루쉬의 세 번째 작품, 선셋 대로의 시선>
그의 세 번째 작품인 <선셋 대로의 시선(Eyes on Sunset Strip)>은 LA의 대표적 거리인 선셋 대로를 운전하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광경을 고스란히 화폭에 옮겨놓은 그림. 디자이너 브랜드인 ‘케이트 스페이드(Kate Spade)’의 빌보드와 함께 여러 패션 광고의 대형 간판이 보인다. 늘 지나가면서 이게 그림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는데 그려놓은 것을 보니 리얼리즘과 함께 나름대로의 멋을 가진 LA를 볼 수 있었다.
<크리스토퍼 친의 작품, 5가와 알라메다>
크리스토퍼 친(Christopher Chinn) 작가는 <134번 프리웨이 아래의 집(Home Under 134>, <5번가와 글래디스 코너(5th & Gladys)>, <5번가와 알라메다(5th & Alameda)> 등 3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그의 작품의 소재는 모두 그냥 지나친다면 눈쌀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릴 법한 노숙자들의 텐트와 LA시의 삭막한 풍광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한편 마가렛 하이드(Margaret Hyde)는 <아름다운 게임(Beautiful Game)>이라는 작품을 통해 다리가 한쪽인 장애우들이 스포츠 게임을 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인종적 다양성뿐만 아니라, 장애인과 그렇지 않은 자들이 다양하게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 특히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었다.
<한인 작가, 미리암 김의 정물화>
한인 작가인 미리암 김(Miriam Kim)은 정물화(Still Lives) 3점을 출품했는데 병 속에 갇힌 아이들과 어른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현대 사회에서 심리적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각이 더해진 작품이었다. 그녀는 그림의 배경으로 기하학무늬, 꽃무늬 등 여러 패턴을 넣어, 무거운 주제의 그림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어두울 수 있는 단점을 피해갔다.
<마이클 초믹의 미니어처 조형물>
마이클 초믹(Michael Chomick)은 <동양에 의한 서양의 잠식(East eats West)>라는 미니어처 조형물을 출품했다. 공룡이 잭인더박스(Jack In The Box, 햄버거 체인점 가운데 하나)의 마스코트 인형을 위협하는 모습과 함께, 서구 사회 음식의 대표격인 햄버거와 토마토 케첩, 머스터드 등을 한쪽에 두고, 또 한 편에는 스시, 녹차 등 아시안 음식의 미니어처를 설치해, 식생활에 있어 점점 주류사회를 파고드는 아시안 음식의 영향을 표현했다.
<스티븐 햄튼의 작품, 새 모자.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을 그렸다.>
스티븐 햄튼(Steven Hampton)이라는 작가는 <목욕하는 사람(The Bather)>, <야외에 선 사람(Outdoorsman)>, <새 모자(New Hat)> 3점을 냈다. 특히 <새 모자(New Hat)>라는 작품은 모자를 쓰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을 그려 눈길을 끌었다.
런치 LA의 전시 작품들 가운데는 그리 아름답지 않은 LA의 풍경, 메마르고, 지나치게 상업적이며, 곳곳에 노숙자들의 텐트와 쓰레기 더미가 쌓인, 그리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는 LA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관람자들은 오히려 그런 그림들을 통해 다른 완벽한 도시와는 다른 LA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남가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과 현지인 작가들이 하나가 되어 LA 한국문화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LA 한국문화원이 한국문화, 한국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LA와 남가주 전체의 작가들을 끌어안고 그들에게도 전시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현지 문화와 교류, 대화를 시도한 것은 훌륭한 시도라 여겨진다. 역으로 한인 작가들의 작품이 현지인 작가들의 전시회에도 초대되는 초석을 마련한 것 같아 전시장을 나오며 가슴이 뿌듯함을 느꼈다.
※사진 출처 :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