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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이슈] 터키에서 부활 중인 '만화'

2018-09-18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지난 97, 이스탄불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핫한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아시아 지구 카드쿄이(Kadikoy)에서 제3이스탄불 만화 & 예술 축제(Istanbul Comics and Art Festival, 이하 ICAF)”가 개최되었다. 축제를 주관한 ‘Dream Sales Machine’정체성을 테마로 터키 내 유명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피티 예술가들 그리고 인디 뮤지션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정체성이라는 테마를 자신의 작품들에 적극적으로 표현해 온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스트릿 아티스트 샴시아 핫사니(Shamsia Hassani) 또한 초청되어 축제를 빛내주었다. 3일간 열린 ICAF에는 작가들의 그래피티 시연과 일반인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 워크숍, 만화 및 러스트레이션 전시 프로그램이 자리했다. 특별히 앨범 커버(Album Kapaklari)’라는 타이틀로 열린 전시회에서는 일러스트 작품들로 디자인된 80개의 로컬 뮤직 그룹의 앨범들이 해당 뮤지션들의 공연과 함께 관객들에게 선보여져 카드쿄이 일대의 분위기를 달궜다. 올해 열린 ICAF가 특별한 이유는 이 축제가 개최 이래 처음으로 사전 허가를 받아 공공장소에서 시민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만큼 터키에서 만화,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피티 장르에 관한 호감이 증가했다는 의미다. 터키에서 만화는 오랫동안 건전하지 못하고, 폭력적이며, 체제에 반대하는 저급 예술로 금기시돼왔다.



<3회 이스탄불 만화 & 예술 축제의 포스터()와 현장 모습(아래) - 출처 : ICAF>

 

사실 터키에서도 만화가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던 때가 있었다. 바로 터키 문화 전반에 저항의 물결이 일던 1960-70년대였다. 심지어 1950년대에도 제법 큰 만화 시장이 존재했으며, 출간되는 만화들의 수준도 서구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았다. 부르사(Bursa) 주에서 15년째 유일한 만화 전문 서점을 운영 중인 에르투룰(Ertugrul) 씨에 따르면 그와 같은 많은 중년층들이 만화와 함께 성장하였고, 여전히 만화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병역의 의무가 있는 터키에서 군인 남성들에게 만화는 지루하고 혹독한 군 생활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달콤한 휴식처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서점을 찾는 고객 중에는 중·고등학생도 있지만 65-70세 사이의 노인들도 포함된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이슬람주의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 간의 정권 다툼으로 인해, 장기간 표현의 자유가 제한됨에 따라 만화는 거의 역사적으로 사라져 버렸다.

 

다행인 것은 2010년 이후, 영웅을 소재로 한 TV 시리즈와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그것이 만화화되어 보급되면서 터키의 대중들 또한 다시 만화에 욕구를 느끼기 시작했다. 만화 시장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최근 2년 동안에는 몇 가지 고무적인 변화들이 나타났다. 먼저 올해 초 터키에서 가장 많은 만화 서적을 출판하는 네 출판사(Yapı Kredi, JBC, Çizgi Düşler, Arkabahçe)가 세계 최대 규모의 만화책 출판사인 미국의 DC Comics와 계약하여 ‘Rebirth’ 시리즈를 터키에 출간하기 시작하였다. 계약이 체결된 이후 JBC에서는 'DC Rebirth 스페셜 에디션을 우선적으로 출간하였고, 현재는 네 출판사가 배분받은 캐릭터들의 시리즈를 차례대로 출판하고 있다.

 

지난 해 4월에는 외즈규르 나이르(Ozgur Nair)와 야신 아이든(Yasin Aydin) 두 사람에 의해 터키 최초의 웹툰 플랫폼 '오쿠비(Okubi)'가 출시되었다. 서점들이 대게 해외에서 수입된 영문판 만화책들을 판매하는 한계적인 상황에서, 이 플랫폼은 로컬 웹툰 작가들이 그리고, 터키어로 대사가 입혀진 만화들을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터키인들이 일상적으로 만화를 접할 수 있게 한다. 현재 오쿠비 앱의 다운로드 수는 안드로이드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30만 회를 넘었다. 오쿠비에서는 평균 20편의 작품이 연재되고 있고, 여기에는 정치풍자에서부터 추리, 공포, 판타지까지 다양한 장르가 포함되어 있다. 로맨스물이 없다는 것은 한국과의 큰 차이점이다. 이전의 원고에서 다뤘듯, 터키의 젊은 층에서 한국의 로맨스 일러스트 작품들이 큰 관심을 받는 것을 고려할 때, 한국 웹툰이 공략해야 할 지점을 시사한다. 한국의 웹툰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오쿠비의 독자들은 크레딧을 충전하거나 편별로 만화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만화를 구독할 수 있다. 편당 가격은 1.5~4리라(한화 약 270~730) 사이로 차 한 잔의 가격인 셈인데,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니다.

 


<터키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웹툰 플랫폼 오쿠비(Okubi) - 출처 : 안드로이드 구글 플레이 앱>

 

올해 터키 유력 일간지 후리옛(Huriyet)은 터키 내 만화의 재부상 현상에 대해 논평한 바 있다. 해당 논평은 만화는 오랫동안 표현의 도구로 사용돼왔고, 최근 해외 만화들이 빠르게 번역되어 터키에 출간되고 있다. 그런데 가장 주목되는 현상은 만화가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저항, 혁명, 우상, 역사적인 사건들을 표현한 사회적 예술로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이라 전했다. 최근 5년 내 출판된 만화 서적 중 Guy Delisle평양’, Benjamin Stora & Sebastien Vassant알제리 전쟁에서(Cezayir Savasinin)’, Soner Tuna‘Rosa’, Polack 6명의 작가가 참여한 여성 저항가들(Kadin Direnisciler)’이 있으며, Miguel Angel Scenna & Sergio Sinay새로 시작하는 이들을 위한 체 게바라(Yeni Baslayanlar Icin Che Guevara)’, 그리고 Jacques De Pierpot & Herve Bourhis헤비메탈은 대표 사례다. 상기 작품들은 모두 한 시대, 역사, 저항을 담고 있다.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번역 만화 출판물들 - 출처 : D&R>

 

지난해 이스탄불 국제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초청된 한국은 웹툰 전시관을 별도로 마련해 출판산업 관계자들과 터키 시민들에게 한국 웹툰을 선보였고, 비즈니스 미팅과 현지 시장 조사 등을 시행한 바 있다. 당시 터키 출판 협회 회장 케난 코자튀르크(Kenan Kocaturk) 씨는 웹툰은 저자본으로 시작하여 장기적으로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템이라며 웹툰 시장에서의 한국과 터키의 협력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한국이 만화 출판과 웹툰 시장 모두에서 매우 오랜 시간 동안 발전을 보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터키 시장에 진출하지 못한 점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터키에서 만화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함께 부상하고 있는 만큼 가까운 시일 내에 양 국가 사이에 협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성명 : 엄민아[터키/앙카라]
  • 약력 : 현) 터키 Hacet tepe 대학원 재학, 여행에세이 작가, 주앙카라 한국문화원 번역스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