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전통적으로 밤이 조용한 나라다. 물론 뉴욕의 맨해튼 지역이나 브로드웨이 거리는 밤 늦은 시각에도 전 세계 여행자들의 물결로 출렁거리지만 대부분 지역은 그렇지 않다. LA도 비버리 힐즈(Beverly Hills), 벨 에어(Bel Air) 등 조용한 주택가의 상점 또는 레스토랑들은 9시면 슬슬 문을 닫기 시작한다. 보수적인 이웃이 아닐지라도 아주 늦은 시각까지 문을 여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요즘, LA 한인타운 인근의 식당가는 주중일지라도 밤 늦게까지 불야성을 이루며 영업 중이다.
건강과 체중 유지를 생각한다면 도저히 그 시각에 식사를 할 것 같지 않지만 코리아타운의 식당에 오는 이들은 건강관리 또는 체중관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순두부 전문점, 설렁탕 전문점 등 모든 업종이 잘 되지만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은 아무래도 코리안 바비큐 전문점이다. 10시가 넘도록 지글지글 고기를 굽는 젊은이들을 보면 ‘젊음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주말이면 한국 식당과 술집이 밀집해있는 6가(6th St.)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Ave.) 인근은 자동차들까지도 거북이 걸음이다. 다른 지역이라면 대충 저녁 식사 손님이 빠져나갈 법한 저녁 9시이지만 한국 식당가는 그때까지도 긴 줄이 늘어서 있기 일쑤이다.
하지만 미국 땅에서 한국 음식이, 그리고 한국 식당이 처음부터 그렇게 인기였던 것은 아니다. 중국 음식점과 일본 음식점들은 1970년대 80년대부터 제법 주류 사회 고객들의 인기를 끌었지만 한국 음식점은 201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인기란 것이 모든 세대를 아우른다기 보다는 20-30대에 집중된 경향이 있다. 상기 현상에 대해 음식 전문 잡지, 《푸드 리퍼블릭(Food Republic)》의 오랜 기고가이자 요리책, <코리아타운(Koreatown USA)>을 펴낸 맷 도르바르드(Matt Rodbard)는 “초기, LA의 한국 음식점들은 주류사회의 고객들을 끌어 모은다기보다, 한국 음식의 맛을 그리워하는 한국인들을 주요 고객으로 했기 때문에 미국화된 한국 음식을 내놓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주류사회에 알려지고 주류사회의 입맛을 끌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 빠른 속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언급한다. 하기야 미국 내 한국 음식은 미국화하지 않고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경우가 많다. 반찬도 푸짐하고 맛도 전통적이다(최근 통신원이 한국에 가서 먹어본 한국 음식들은 지나치게 짜고 달고 매운 경향이 있었다).
지난 주 토요일, 통신원은 순전히 한국 음식점들이 얼마나 밤 늦게까지 문을 열고 또 얼마나 현지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밤 늦게 한국 식당가를 배회했다. 한국 식당들은 9시 넘어서도 짐작보다 훨씬 더 많은 손님들로 인해 붐비고 있었다. 특히나 코리안 바비큐 레스토랑들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표현이 꼭 맞았다. ‘위 코리안 바비큐(Wi Korean BBQ, 1101 Vermont Ave, Los Angeles)’에 들어섰더니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가 연기와 함께 확 다가온다. 만석인 테이블을 둘러보니 반 이상이 비 한인 고객들이다. 그 가운데 친구의 생일 파티를 위해 모인 13명의 친구들 그룹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이곳의 메뉴. 비한인 미국인들이 많이 찾아 메뉴를 영어로 표기했다>
첫번째 테이블에는 잭슨 스크로여(Jackson Schroyer), 딜란 하퍼(Dylan Haper), 조지아 디커슨(Georgia Dickerson), 매디슨 울릭(Madison Ulrich), 와이어트 부게이(Wyatt Bruggay), 안젤로 가을 매칭고(Angelo Garl Mechinko), 데인 패리스(Dane Faris) 등 7명이 앉아 있었고 그 뒷 테이블에는 에이든 밴브링크(Aidan Vanbrink), 칼럼 리드(Calum Reid), 리사 리(Lisa Lee), 베일리 마이어(Bailey Meyer), 제이크 탐슨(Jake Thomson), 쌤 매크네미(Sam Mcnamee) 등 6명이 자리했다. 이 13명의 그룹 가운데 11명은 워싱턴(Washington) 주의 샤훔(Sehome)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다는 인연에다가 모두 LA로 대학진학을 해, 자주 만난다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오하이오(Ohio) 출신인데 그 그룹의 친구들과 친해 자주 어울린다고 한다. 오늘 이 친구들이 위 코리안 바비큐 식당을 찾은 것은 조지아(Georgia)의 20세 생일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13명이 모두 함께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테이블이 없어 두 그룹으로 나눠 앉아야 했다. 하지만 덕분에 레스토랑 측으로부터 소주와 맥주를 섞은, 25달러 상당의 소맥타워(So-Mak Tower)를 테이블마다 한 개씩 무료로 제공받았으니, 그들로서는 “이게 웬 떡이야”였다.
<소맥 타워를 안내하는 메뉴. 소주와 맥주의 칵테일이라는 설명도 보인다>
어떻게 여길 알고 왔느냐는 질문에 쌤(Sam)은 자신이 골라 친구들에게 권했다고 답한다. 20대의 그들은 맛도 맛이지만 양이 많은 음식점을 찾고 있다가 무제한(All You Can Eat) 한국 바비큐 구이 집을 찾아낸 것이다. 위 코리안 바비큐에는 11.99달러부터 30달러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무제한 바비큐 메뉴가 있었지만 이 친구들은 가장 가격이 저렴한 것을 주문했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고기는 차돌박이, 삼겹살, 닭고기, 불고기 등이었다.
“너무 좋아요. 맛도 좋고, 양은 무제한이고. 우리 모두 코리안 바비큐의 빅 팬이에요. 앞으로 이곳에 자주 올 것 같아요.” |
13명이 배가 터지도록 먹고난 식사비는 세금 포함해서 겨우 180달러, 1인당 15달러꼴이었다. 미국 식당에서는 샐러드밖에 못 먹는 가격으로 무제한 바비큐를 먹었으니 만족도가 낮다면 이상하다. 과연 비 한인들은 어떤 고기를 가장 좋아할까, 물었더니 각자의 입맛이 달라 제각각의 답이 나왔다. 하지만 불고기는 공통적으로 맛있었다는 응답이었다. 13명의 친구들 가운데 리사 리(Lisa Lee)씨는 한국인이었다. 혹시 그녀가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 홍보 대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물었더니 “아뇨.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 장소를 고른 건 쌤이었어요. 물론 코리안 바비큐 식당에 와서는 제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말하죠. 하지만 결국 모든 고기를 거의 다 맛봤답니다”라고 응답했다.
<식당을 찾은 고객들의 폴라로이드 사진들>
그때 갑자기 식당의 조명이 꺼진다. 정전인가 싶었던 것도 잠깐. 요란한 반주와 함께 촛불을 밝힌 무언가를 든 종업원들이 조지아가 앉아 있는 테이블 앞으로 오고 있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조지아의 생일 축하합니다.” 직원들은 초코 파이 3개를 올려 놓고 촛불 하나를 밝힌 생일 케이크를 조지아의 테이블에 놓고 갔다. 기대치 않은 케이크를 받은 조지아는 눈을 반짝이며 행복한 모습이었다. 촛불을 불어 끄는 그녀의 볼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기분 좋죠. 정말 좋은 음식을 싼 가격에 먹고났는데 생일 케이크까지 받았으니까요. 초코 파이도 달콤하니 맛있었어요.” |
<친구 조지아의 생일을 맞아 한국식 바비큐 식당을 찾은 친구들. 좌로부터 잭슨, 딜란, 조지아, 매디슨, 와이엇, 안젤로, 데인>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나눠 앉았다. 좌로부터 에이든, 칼럼, 리사, 베일리, 제이크, 쌤>
이곳의 종업원인 이예리 씨에 따르면 손님들은 한국인과 비 한인이 거의 반반 정도라고 한다.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고기는 차돌박이와 불고기. 가장 저렴한 세트를 시켜서 엄청난 양을 먹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팀 중에는 양이 작은 사람들이 꼭 끼어 있어서 어차피 그게 그거라나. 현장에서 확인한 토요일 밤, 한국 바비큐의 열풍은 뜨거움, 그 이상이었다.
<차돌박이와 불고기가 지글지글>
<생일을 맞은 조지아 (가운데)가 초코파이로 만든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있다>
<초코파이 3개를 겹쳐 만든 생일 케이크. 식당을 찾은 고객들에 대한 감사로 무료 제공하고 있다>
※ 사진 출처 :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