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언론인 협회(TDGF)에서 주최·주관하는 ‘Turks' World Documentary Film Festival(Turk Dunyası Belgesel Film Festivali)’이 올해로 3회째를 맞으며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본 영화제는 과거 오스만 제국으로 묶여있던 국가들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과 확산을 지원하고, ‘터키 문화’라는 큰 틀 안에서 다양하고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관객들과 만남으로써 터키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는데 이바지한다는 목표와 함께 2016년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매년 영화제에서는 이와 같은 목표에 부합하는 ‘터키 문화와 터키인들의 세계관’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공모전을 실시하고 있으며, 공모전 규정상 참여자와 영화의 배경은 터키를 포함하여 과거 터키인들이 뿌리를 내리거나 거주하는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북 사이프러스, 우즈베키스탄, 마케도니아 등이어야 하나 사실상 터키인 공동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능하다. 과거 오스만 제국의 통치지역들은 현재 각각 독립된 국가를 이루고 있지만, 정부와 민간인들은 여전히 정치·경제·문화면에서 그 누구보다 터키라는 나라를 가깝게 여기며, 터키를 중심으로 언제든 다시 뭉칠 준비가 되어있다.
올해 제3회 영화제에는 총 8개 국가와 28개 지역에서 140개의 영화가 출품되었다. 본 영화제는 등장하는 단어들만 보면 왠지 민족을 강조하는 듯하지만, 영화제 시상식을 위해 참석한 멘데레스 데미르(Menderes Demir) 터키 언론인 협회 회장의 축사는 영화제가 궁극적으로 터키와 외부의 교류와 상호 이해를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의 발언은 터키 사회에서 공동체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모든 것을 공유할 필요는 없으며, 다르면 다른 대로, 또 변화하면 변화하는 대로 서로를 인정하고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터키인 공동체는 매우 풍부한 문화를 가진 구성원들로 이뤄진 대가족이라 할 수 있다. 이 대가족의 특징과 뿌리를 훌륭하게 포착해낸 출품작들은 터키인들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익숙하고도 새롭게 만날 수 있게 하고, 또 우리 자신을 세계에 알릴 수 있게도 한다. 그것이 본 축제의 취지이다. |
<주최측과 Turks' World Documentary Film Festival의 수상자들 - 출처 : Turkbelgesel.com>
한국정부는 1997년 ‘재외동포들의 민족적 유대감을 유지하고, 글로벌한 한민족 공동체 구현을 지원한다’는 미션과 비전으로 재외동포재단을 발족시켰다. 터키 정부도 이와 유사하게 2000년 4월 해외 터키인들과 혈통적 또는 역사적으로 터키와 연관성을 지닌 외국인들을 지원하고, 유대감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외 터키인 및 관련 공동체 지원국(Presidency for Turks Abroad and Related Communities, 이하 YTB)을 설립하였다. YTB에 따르면, 1960년대 터키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독일, 오스트리아, 호주 등지로 이주하여 정착한 터키인의 숫자는 650만 명에 달하며, 그 후손이 4세대에 이르렀다. 여기에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던 발칸 일대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터키인들까지 포함하면 위 숫자는 엄청난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다.
YTB는 해외 터키인 이주자 자녀들을 위한 터키어와 문화 교육, 터키 내 대학교육과 인턴십, 정부 초청 외국인 장학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터키 정부와 YTB에서 말하는 ‘관련 공동체(related communities)’란 단순하게는 오스만 제국의 통치지역들을 포함하여 과거와 현재 터키와 교역을 하는 국가들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 사실상 모든 국가가 포함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YTB에서 제공하는 외국인 초청 장학금 또한 국가별로 학생 수의 차이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장학금을 신청하는 지원자의 국적에는 제한이 없다. 장학금을 수여한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1년간 터키어 연수과정을 이수해야 하며, 터키 사회의 특성상 영어 사용 비중이 매우 낮아 거의 모든 외국인 학생들은 터키인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들과도 터키어로 대화를 하고, 교육도 터키어로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터키 정부는 이 ‘터키어’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터키인들과 관련 공동체를 유대하게 하고, 터키인 정체성을 강화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해외 터키인과 역사적으로 터키와 연관성을 지닌 국가 출신의 외국인들은 터키 안팎에서 터키인들로부터 크게 환영받고, 그들 또한 터키 문화에 동화되는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터키인들이 민족 정체성에 있어 혈통의 순수성보다는 ‘문화적, 정서적으로 얼마나 터키인이냐’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터키인은 형질적인 다양성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즉 혼혈률이 가장 높은 민족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러니 터키인들이 애초에 혈통적 순수성은 보존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문화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가령, 해외에 거주하는 터키인들이 터키인과의 결혼을 선호하고, 발칸과 중앙아시아에서 신부를 데려오는 일이 흔한 까닭은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와 언어가 유사하여 결혼생활이 수월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터키 정부가 혈통주의를 버리고, 터키어, 민속춤, 음식, 드라마와 영화 등의 문화적 요소들을 가지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터키인과 외국인들이 터키에 대해 느끼는 유대감을 강화하려는 전략은 현실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외동포들을 위해 설립된 YTB와 유누스 엠레(Yunus Emre) 연구소가 이러한 전략의 중심축이 되어 해외 터키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을 위한 문화교류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터키 정부의 문화교류 정책에 외국인들도 크게 보면 터키인 공동체의 일부라는 전제가 깔려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유누스 엠레 연구소는 37개국에서 운영 중이며, 터키어 교육자 양성 사업을 중심으로 터키 문화를 소개하고, 학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상시 진행된다(참고로 해외 한국문화원은 해외 17개국에서 운영 중이다).
<'세계는 5개의 대륙보다 거대하다'는 타이틀로 열린 이 축제에는 43개국 출신의 유학생들과 터키 일반인,
그리고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포함한 터키 유력 정치인들이 함께했다. - 출처 : babialem.org>
‘터키인’과 ‘타자’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지 않는 터키 정부의 문화 외교 정책은 터키 국민들과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터키라는 나라에 소속감과 결속력을 느끼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유목민 사회에서 오스만 제국으로 발전하기까지 모두에게 문을 열어두었던 터키인들의 역사와도 닮았다. 반면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굳건한 ‘순혈주의’가 교류와 공존을 한정 짓고,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는 느낌이다. 모두에게 열어둠으로써 터키 문화의 고유성과 민족 정체성을 보존하기를 택한 터키 정부의 태도에서 우리는 무언가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