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한국영화제 2018 개막작 '소공녀' 메인 이미지 - 출처 : 런던 한국 영화제 페이스북>
<‘런던한국영화제 2018’(LKFF 2018)>가 지난 11월 1일 목요일 저녁 6시 30분 런던 시내에 있는 픽쳐하우스 센트랄 극장에서 성황리에 개막되었다. 전고운(Jeon Go-woon)감독의 피쳐 영화 '소공녀'(Microhabitat) 상영으로 막을 연 2018년도 ‘런던한국영화제’는 올해로 13회를 맞이하였다. 11월1일부터 14일까지는 런던에서 진행되고, 15일부터 25일까지는 글래스고우, 에딘버러, 벨파스트, 쉐필드, 맨체스터, 노팅햄 등 지방에서도 순회로 진행될 예정이다.
25일 동안 주영 한국문화원 주최로 한국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영화진흥위원회가 후원하고, 아시아나 항공이 협찬하는 제13회 ‘런던한국영화제 2018’은 '일상생활의 단상'(A Slice of Everyday Life)에 스페셜 포커스를 두고 있으며, 한국인의 일상생활 묘사에 초점을 맞추어 1998년부터 2018년 사이에 제작된 55편의 영화들이 Picture House Central, Regent Street Cinema, Close-up, Birkbeck Institute oft he Moving Image, The British Museum등 런던의 곳곳에 있는 극장들에서 상영된다. 대표적인 초대 작품들로는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 장루 감독의 '망종', 김소영 감독의 '나무 없는 산',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등이 해당된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런던한국영화제’의
<'소공녀'로 개막된 런던한국영화제 - 출처 : 런던 한국영화제 페이스북>
<위트 있는 답변들로 청중들을 즐겁게 한 전고운 감독 - 출처 : 런던 한국영화제 페이스북>
2016년에 개봉되었던 전고운 감독의 작품 '소공녀' 상영으로 개막된 이번 영화제 개막식에는 전고운 감독이 직접 참여하였다. 여느 때와 달리 이번 영화제 개막식에는 주로 남성들로 구성되었던 영화제 최고 자문위원이나 영화제의 총감독인 주영 한국문화원의 용호성 원장이 개막사를 하지 않고 주영 한국문화원의 영화 큐레이터인 조현진 씨가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일상생활'이라고 소개하며, 토니 레인즈 및 마크 모리스, 사이먼 워드 등 영화제 자문위원들과 지원, 후원 단체들 및 장소 제공 단체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였다.
영화 상영 시작에 앞서 사회자인 영화 큐레이터 산드라 헤브론(Sandra Hebron, Head of Screen Arts at the NFTS/National Film and Television School)의 소개로 전고운 감독이 개막제 인사말을 하였다. 전 감독은 “런던에 살지 않아서 그런지 런던이 참 좋다”는 인사로 시작하여 “런던 못지않게 서울의 집값도 비싸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집값 문제를 논하자”는 인사말로 좌중을 폭소에 빠뜨렸다.
<개막작 '소공녀' 상영이 끝난 후 열린 Q&A에 참석한 전고운 감독과 산드라 헤브론 - 출처 : 런던 한국 영화제 페이스북>
개막작 '소공녀' 상영이 끝난 뒤 영국 텔레비젼 영화 학교에서 스크린 예술을 담당하고 있는 산드라 헤브론의 사회로 전고운 감독과의 대담, 질의 시간인 Q&A 행사는 여느 때보다 웃음이 넘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헤브론은 '소공녀’의 주인공인 미소(이솜 주연)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성격 묘사에서 '평가를 내리지 않는' 전 감독의 태도를 특히 칭송하였다. 어떻게 미소라는 인물을 다루게 되었으며 평가하지 않는 중립적 자리를 지키게 되었냐는 그녀의 질문에 전고운 감독은 본인이 서울에서 직접 집을 마련하려는 과정에서 겪은 고충들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에서는 꽤 비싼 위스키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여유를 잃지 않는, 자신과는 반대되는 여성 주인공을 그려내고 싶었고,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술 담배를 즐기는 한국의 여성들에게 이 영화를 바치고 싶었다는 답변을 주어 청중들을 또 한 번 웃게 만들었다.
또 쉽게 판단하고 평가를 내리지 않는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은 주변에서 같이 영화를 만드는 가난한 친구들이 많아서 가능했고, 집이 중요하긴 하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집을 사려는 욕망을 포기하면 얼마든지 여유 있고 심플하며 즐거운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를 만드는 본인 또한 미소와 같은 가난한 이방인으로 동질성을 느꼈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친했던 가난했던 다섯 명의 젊은 감독들과 협업을 하면서 데뷔작으로 독립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는 전 감독의 영화는 청중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 한 질문자는 집시와 재즈 음악을 동원한 사운드 트랙을 칭찬하였고, 전 감독은 본래 프렌치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장르를 규정하기 힘들었던 까닭에 음악 감독이 재량껏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주었다고 공을 돌렸다. 또 다른 청중이 던진 제목과 관련해서 본래 의도를 제대로 살리는 영어 원제목 (Microhabitat)과는 다른 한국어 제목 '소공녀'는 한국 관중들에게 어필하기위한 장치였다고 밝혔다.
런던에서처럼 집값이 너무 비싼 서울에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전 감독은 시골에서 살다가 동경하던 서울에 와서 처음에는 충격도 많이 받았지만 수많은 시련을 겪기도 했던 청춘을 보낸 곳인 만큼 서울과는 애증 관계에 있다고 했다. 어떤 남성 관람자 한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전고운씨 영화 진짜 잘 만든다. 대박!”이라고 크게 외쳐 영화관은 또다시 웃음바다가 되었다. '새', 미소의 '흰 머리' 등 영화에서 쓰인 상징들과 관련해서는 새는 모델이자 배우 이솜 씨가 그렸고, 흰 머리의 미소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지만 사라져가는 변두리에 있는 이방인으로서의 미소를 특징짓기 위한 시각적 장치였다고 답했다.
서울과 런던, 한국과 영국을 비교해가며 간단명료하면서도 재치 있고 슬기로운 답을 주어 슬픈 영화를 보고난 청중들을 많이 웃게 만든 전고운 감독. 영화 상영이 끝나고 마련된 리셉션 자리에서 전 감독은 '소공녀'가 데뷔작이지만 이미 3편의 영화들을 제작하였고 단편 영화도 만들었다고 밝혔다. 데뷔작이 이 정도의 호응을 얻었으니 미래가 밝은 여성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외된 이방인으로서의 젊은이들, 특히 여성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내면적 아름다움과 품위를 지닌 미소를 그린 그녀의 섬세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저녁이었다. 이틀 후면 파리에서 한국 영화제에 참석하러 간다는 그녀가 앞으로 한국 영화계를 빛낼 영화인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