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영화제> 김기덕과 아칸 사타아예프 – 출처 : Tengrinews>
카자흐스탄에서 김기덕 한국 감독이 카자흐스탄 감독들과 영화를 찍을 예정이다. 이에 대해서 카자흐스탄의 영화감독인 아칸 사타예프가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감독과 만나서 영화촬영에 대한 협의를 했다”고 공개했다. 그가 한 말을 카자흐스탄의 주요 뉴스포털 《Kazinform》이 보도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국제 알마티 영화제는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세계적인 한국감독인 김기덕이 알마티에 왔다 갔다. 감독님의 주된 목적은 카자흐스탄에서 새로운 멋진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 일에 <아스타나영화재단>(Astana Film Fund)이 참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칸 사타예프의 말에 의하면 한국 감독과 카자흐스탄에서 만나서 영화촬영계획, 상세업무 그리고 장소에 대해 논의를 하였다. 또한 배우들의 선정에 대해서도 협의를 하였다. 앞으로 가을에도 계속 만날 예정이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영화는 알마티시에서 촬영할 계획이다. 영화는 사랑에 대한 드라마이다. 영화의 경제적인 이익을 고려해서 CIS 국가들의 영화시장에 판매하기 위해서 영화를 러시아어로 찍을 예정이다. 작년에 아칸 사타예프가 한국의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때 한번 이 뉴스를 통신원은 언급한 적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9월에 김기덕 감독이 <알마티영화제>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이에 관련하여 카자흐스탄 언론 매체인 《Tengrinews》가 다음과 같은 감독의 영화경험에 대한 이야기 내용을 전했다.
한국의 김기덕 감독의 알마티 영화축제 참여
카자흐스탄 알마티시에서 지난 9월 15일부터 19일 사이에
저에 대해서 말하면, 아쉽게도 저는 인생에서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 특별히 공부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초등학교만 나왔습니다. 15년 동안 공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22세부터 저는 군대에 가야 했습니다. 군대에 갈 때 해군에 징집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군대생활을 시작했었고, 거기서 5년을 보냈습니다. 군대를 갔다 온 후에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교회에서 일했습니다. 그 다음 30세가 되었을 때 갑자기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프랑스에서 안락하게 살지 못하였고, 가난한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 프랑스에서 영화를 만나게 되었으며, 제 인생이 영화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열심히 단숨에 봤던 영화가 2개 있습니다. 한 영화는 줄리에 비노쉬라는 배우가 출연한 영화이며, 다른 하나는 앤서니 홉킨스, 존 포스터라는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입니다. 그들이 출연한 영화를 본 순간부터 왠지 저도 모르게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고, 영화에 빠졌습니다. 그 영화를 관람한 이후 2개 정도의 영화대본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4년 후에 제 첫 번째 영화를 제작하였습니다. 그 후 여러 영화들을 제작하였습니다. 되돌아보면 20년 동안 영화를 제작해왔습니다. 그 20년 동안 영화를 제작했지만 아직도 영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며 답할 수 없습니다. 제 경험과 인생에서 깨달았던 것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영화를 제작하는 것을 가르치면 안 된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제가 이해한 것은 영화가 우리의 인생처럼 흐르는 것이며, 우리의 마음의 부름인 것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원작의 성격과 특징, 대본쓰기 방법 및 주인공들에 대해 오래 설명하였다. 그의 영화의 대부분은 말이 없는 행동이 주로 나오는 영화이다. 현재 그의 영화는 영화계에서 유명해졌고, 널리 상영되었다. 그의 영화 장르도 다양하며, 영화 환경에서 한국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와 일한 남녀 배우들이 글로벌 영화무대에서 데뷔하였다. 행사가 끝난 후 김 감독은 여러 나라의 영화산업, 그 중에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 미국, 유럽 영화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밝혔다. 김 감독은 자신이 현재까지 서른 편정도의 영화를 제작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영화의 제목을 어떻게 지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제자들, 다음 시대의 감독들에 대해서도 카자흐스탄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행사 후에 김 감독의 인기를 반영하듯 그와 사진을 찍고 싶어 한 현지인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