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희곡작가 정한솔씨의 ‘기러기 꿈꾸다’(Wild Goose Dreams) 연극이 뉴요커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고 있다. '기러기 꿈꾸다'는 뉴욕 맨해튼의 유서 깊은 공연장 퍼블릭 시어터(Public Theatre)에서 현재 상연되고 있다. 공연 시간은 1시간 45분이며 다음 달 16일까지 마틴스 홀에서 상영된다. 티켓은 55달러부터다. ‘기러기 꿈꾸다’는 서울을 배경으로 가족을 두고 온 탈북여성 유난희가 가족이 떠난 기러기 아빠(국민성)와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를 통해 만나 사랑에 빠지는 독특한 뮤지컬 형태의 연극이다.
기러기 아버지인 주인공 국민성 역은 한인 2세 피터 김 씨가, 북한 광부의 딸이자 탈북녀인 유난희 역은 대만 배우 미셀 크루섹이 맡았다. 재능 있는 두 배우는 다양한 미디어 속에서 현대인들이 당면하는 외로움을 조명한다. 연극 연출을 맡은 리 실버만은 6인조 다민족 코러스를 합류시키고 전화벨, 이메일, 이모티콘, 송신 등 테크 사인을 의인화해 원작에 뮤지컬적인 요소를 추가했다. 또 정종빈의 '진짜라니깐' '죽고 싶다' 등 한국노래를 추가해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꾸몄다. 무대 곳곳에는 한국적인 요소가 가득한 서울의 노래방과 모텔, 식당, 고시원은 물론 만화책 표지와 훈민정음 판본 등을 추가해 뉴요커들에게 간접적으로 한국의 분위기와 이미지를 전달했다. 또 북한의 김일성, 김정은 부자 사진과 북한 선전 포스터도 소품으로 등장한다. 토니상 후보인 리 실버맨은 가족과 자유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다른 문화의 배경에서 온 두 사람의 관계를 세밀하고 독창적으로 연출해 완성도를 높였다.
<뉴욕 퍼블릭 시어터 '기러기 꿈꾸다' 공연 포스터 사진>
<한국적인 모티브와 한글로 가득한 극장 모습>
<만화방, 고시원과 같은 한국적인 모티브와 한글이 눈에 띄는 공연 무대>
<뉴욕에서 공연되는 '기러기 꿈꾸다' 공연 무대의 한국적인 모습>
‘기러기 꿈꾸다’의 미술감독은 오스카 어스티스(Oskar Eustis)가, 기획 감독은 패트릭 윌링햄(Patrick Willingham)이 각각 맡았다. 이외에 클린트 라모스(Clint Ramos)의 무대장치 디자인, 린다 조(Linda Cho)의 의상 디자인, 키스 파럼(Keith Parham)의 조명 디자인, 팔머 헤퍼란(Palmer Hefferan)의 음향 디자인, 폴 캐슬스(Paul Castles)의 작곡, 정종빈(Jongbin Jung)의 한국음악 작곡, 동작 감독 야스민 f(Yasmine Lee), 그리고 음악감독은 채러티 윅스(Charity Wicks)가 참여했다. 의상은 지난 2014년 '신사의 사랑과 살인 가이드' 뮤지컬로 의상디자인 토니상을 수상하고 지난 9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의 의상을 담당한 한인 디자이너 린다 조 씨가 담당해 한국적인 감성을 더했다.
한국적인 애환과 뉴요커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도시 속의 외로움을 표현해낸 정한솔 작가는 예일대 드라마 스쿨에서 극작으로 석사학위(MFA)를 받은 후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원이다. 미국에서는 ‘카드보드 피아노’Cardboard Piano), ‘어몽 더 데드’(Among the Dead) 등의 각본을 써서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한국에서도 '에비타', '드라큘라', '스팸어랏' 등을 작업한바 있다. 또 지난 3월 문화예술계 지원단체인 파이팅 재단(Whiting Foundation)에서 '올해의 젊은 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재능 있는 한국인 작가와 미국 현지전문가, 배우들이 만나 심도 있게 한국 현대인들의 겪는 외로움과 아픔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 작품으로 미국 현지 언론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15일 뉴욕타임스는 “분단된 나라 출신의 주인공들의 사랑을 당황스럽지만 사랑스럽게 표현했다. (주인공들의) 대화들이 미국인 관객들의 귀에 진솔하게 들린다”라고 호평했다. 나아가 뉴욕타임스 연극 비평가인 벤 브랜틀리는 정 작가에 대해 “시적인 재능과 함께 성실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가”라고 평했다. 이처럼 ‘기러기 꿈꾸다’는 한국 자체의 모습과 한국적인 모티브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을 넘어 현대 한국사회에서 충분히 볼 수 있는 기러기 아빠, 탈북인이라는 사회적 코드를 중심으로 뉴요커들이 공감 가능한 주제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며 오프 더 브로드웨이에서 가히 센세이션 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인과 한국적인 감성이 한류를 넘어서 뉴욕 시민들에게 일상적으로 관찰하고 배울 수 있는 코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뉴욕에서는 점점 더 뉴요커들에게 대중적인 브로드웨이, 음악 콘서트, 식사, 주류문화 등 의식주와 문화예술 전반에서 한국을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아시아인을 찾아보기 어려운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점점 더 많은 한국인 전문가들의 활약상을 보며, 오는 2019년에는 뮤지컬 한류가 불어오길 기대해본다.
※ 사진 출처 : 통신원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