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뮤직비디오를 보다 보면, 아무 생각 나지 않고 온전히 몰입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일단 뮤직비디오의 주인공들인 아티스트들이 너무 젊고 아름답고 잘생긴 데다가, 메이크업과 헤어, 패션이 너무 완벽하고 현란해서이다. 그들의 헤어는 레몬색이었다가 새로운 뮤직비디오가 나올 때쯤이면 새빨간 색으로 바뀌는 것 같다. 그리고 메이크업에 따라 그들의 얼굴은 팔색조처럼 다른 이미지를 보인다. 옷은 또 어떤가. 여성 남성의 고정적 이미지를 벗어난, 기발하고 참신한 패션은 패션쇼를 보는 것보다 더한 즐거움을 준다. 유튜브에서 맹활약을 떨치는 인플루언서(Influencer)들은 하루가 다르게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메이크업이며 패션 따라잡기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유행에 민감한 10대들에게 케이팝 아티스트들은 패션 구루이자 메이크업 구루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듯, 《복스(Vox)》라는 매체에서는 ‘케이팝의 인기가 전 세계 패션계를 재형성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12월 4일에 업로드된 이 기사는 나드라 니틀(Nadra Nittle) 기자가 작성했다. 2014년, 복스 미디어(Vox Media)에 의해 런칭된 사이트, 《복스》는 소음 같은 정보가 난무하는 세대에서 진정한 문맥이 있고 영감을 줄 수 있는 뉴스를 들려주기 위해 시작됐다. 《복스》의 기고가들은 정치, 경제, 대중문화, 사이언스 등 모든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다음은 기사의 전문이다.
<복스라는 사이트의 성격에 대한 그래픽적 설명 - 출처 : Josh Ariza>
<복스에 나온 케이팝과 패션과의 상관관계를 다룬 기사 스크린샷 - 출처 : VOX>
케이팝이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가를 알려면 소셜미디어를 보면 된다. 방탄소년단 멤버인 진의 26번째 생일날의 트윗은 100만이 넘어가며 당일의 트위터 최고 기록을 세웠다. 멜론 음악상 시상식이 있었던 지난 토요일에는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마마무(Mamamoo), 아이콘(iKon) 등의 팬들이 이 행사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케이팝 밴드에 대해 쏟아놓은 뉴스들로 트위터를 거의 점령해버렸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케이팝은 소셜미디어의 트렌드뿐만 아니라 빌보드 음악 차트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세계적인 패션 서치 엔진인 ‘리스트(Lyst)’에 따르면 케이팝 팬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이끄는 자선기금 모금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주 입는 디자이너의 옷을 그대로 따라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한 해 동안 지구상 8천만 구매객들이 해온 1억 회 이상의 검색을 트랙해 온 <패션으로 본 한 해> 보도에서 ‘리스트’는 전 세계 패션계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은 케이팝 스타들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케이팝 스타들이 크롬하츠(Chrome Hearts), 모스키노(Moschino)와 같은 디자이너 브랜드들을 입고 나온 직후에 네티즌들이 이 제품들을 검색하는 열풍을 분석한 결과이다.
소셜미디어에의 참여로 거의 불가능이 없는 전 세계의 케이팝 팬들은 케이팝 장르에 있어서 비주얼의 중요성을 부추기고 있으며 패션 트렌드에 불을 지피고 있다. 케이팝 스타들의 패션 트렌드를 살펴보자면 밝은 색상과 대담한 프린트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패션을 가장 일상적인 것으로 유행시키고 있다. 제시 잭슨 목사가 1988년 대통령 경선 때 입었던 선거 캠페인 티셔츠는 올해 마마무의 래퍼, 문별이 입고 나온 이후, 패셔니스타들 사이에서 꼭 있어야 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한국은 전 세계 남성 화장품 시장의 20퍼센트를 차지하는 나라이다. 보이 밴드의 멤버들 중 다수가 립틴트인 가이라이너(Guyliner)와 눈썹 필러(Brow Fillers)를 사용하고 있다. 케이팝 덕에 남성 메이크업 라인이 소개되고 소비가 늘어난 것이 단지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미국에서 힙합 음악이 탄생하고 인기를 얻어가는 가운데, 음악 팬들 사이에서는 아디다스(Adidas), 캥골(Kangol), 조르단(Jordans) 등이 꼭 하나 가져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 되었었다. 이런 현상과 마찬가지로 케이팝의 영향력이 늘어감에 따라 이들 역시 그들만의 패션 트렌드를 형성해가고 있다. 리스트(Lyst)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비즈니스에 성공하려면 패션에 있어서 케이팝의 영향력을 수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케이팝 패션의 부상을 이끌어온 혁신적인 뮤직비디오와 열성 팬들
케이팝 스타들의 패션 감각은 《보그(Vogue)》와 같은 미국 패션 잡지에서도 자주 보도된다. 《보그》 지는 지난 5월에 있었던 2019년 루이뷔통 리조트 쇼에 참가한 엑소(EXO)의 세훈을 가리켜 가장 옷 잘 입은 남성이라고 보도했었다. 세훈은 지난해에 이어 연속해서 2년째, 《보그》지로부터 이런 영예의 표현을 얻었다. 《보그》지는 “대담한 무늬의 모직 스웨터, 빨강과 하양이 디테일하게 잘 짜여졌다.”며 그의 옷에 대해 칭찬했었다. 세훈의 옷에서 볼 수 있는 텍스처의 혼합, 대담한 칼라는 케이팝 패션을 대표하는 요소들이다. 케이팝 아티스트들은 살아 있는 색감, 감각적인 옷감, 화려한 패턴의 옷을 주로 입는다.
리스트(Lyst) 역시 <패션으로 본 한 해> 보고서에서 세훈의 루이뷔통 쇼 참가에 대해 언급한다. 리스트의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인 카밀라 클락슨(Camilla Clarkson)은 “케이팝 스타들이 무엇을 입느냐에 대해, 대중들이 그렇게도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바로 팬들의 소셜미디어 활동이 차지하는 역할 때문이다. 케이팝이 패션에 미치는 영향은 최근 수년 사이, 소셜미디어의 붐과 함께 엄청나게 커졌다. 케이팝 스타들의 라이프는 아무리 사소한 것들일지라도 팬들이 트위터에, 블로그에,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기에 충분하다. 올 한 해 동안은 지난해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케이팝에 대해 검색하고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입었던 옷을 구매하는 것을 목격해왔다. 케이팝 팬들은 스타들에게 가능한 한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9월, 투나잇쇼에 출연해 아이돌을 공연 중인 방탄소년단 - 출처 : Andrew Lipovsky/NBCU Photo Bank via Getty Images>
<아이디, 몽솔레이태(mon soleil Tae)의 트윗에 나온 뷔의 모습 - 출처 : 트위터 @soleil_tae>
<아이디, 아미블링크스(@ARMY_BLINKS)의 트윗에 나온 블랙핑크의 모습 - 출처 : @ARMY_BLINKS>
팬들은 자신들이 우상화하는 케이팝 스타들에 대해 직접적이고 실제적으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케이팝 스타들이 구입하는 아이템들을 사는 것으로 그 스타들과 연결된 듯한 느낌을 갖는다. 케이팝 패션의 데이터베이스인 ‘케이스타일파일즈(K-Style Files)’의 셸리 리(Shelly Li)는 “케이팝 팬들 중 다수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케이팝 아이돌들처럼 옷을 입음으로써 그들을 닮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돌들이 입고 있는 바로 그 아이템들로부터 영감을 얻기 위해 패션 검색 엔진을 사용해 패션 아이템들을 검색하고 구입하는 것이죠.”라고 말한다.
<케이팝 스타 세훈이 2017년 파리 패션 주간의 루이비통 쇼에 참가한 모습 - 출처 : Marc Piasecki/WireImage>
‘리스트’는 지난 한 해 동안 여성 패션과 남성 패션 양쪽 모두에 케이팝의 영향력이 증가했음을 발견했다. 방탄소년단, 엑소와 같은 보이 밴드는 남성 패션에 큰 영향을 미쳤고 씨엘, 박봄 등 여성 아티스트들은 여성 패션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방탄소년단과 같은 그룹은 남성 여성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팬들로 하여금 멤버들처럼 옷을 입게 만드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래퍼인 슈가가 버질 아블로(Virgil Abloh)가 디자인한 체크무늬 셔츠를 입었을 때, (리스트에 따르면) 이 아이템에 대한 검색은 120퍼센트 증가했다고 한다. 똑같은 일이 방탄소년단의 다른 래퍼인 알엠(RM)이 핑크색 아이다스 번호 티셔츠를 입었을 때도 나타났다. 당시 분홍색 티셔츠에 대한 검색은 97퍼센트나 증가했었던 것이다.
셸리 리는 케이팝이 패션계에 점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유는 케이팝의 세계화 덕이라고 분석한다. 케이팝 팬이 남아프리카, 필리핀, 미국으로 점점 늘어가면서 케이팝 스타들이 입는 패션은 더 많은 이들에게 노출되고 더 많은 이들이 따라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셸리 리와 카밀라 클락슨은 케이팝 뮤직비디오가 만들어낸 특별한 이미지 또한 케이팝이 패션에 영향력을 미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케이팝은 시각적으로 매우 자극적인 포장을 하고 있습니다. 매우 완성도 높은 뮤직비디오, 강렬한 세트와 조명, 패션이 함께 한 퍼포먼스가 바로 그것이죠.”라고 셸리 리는 말한다.
카밀라 클락슨은 “케이팝 뮤직비디오는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경계를 밀어냅니다. 그리고 케이팝 팬들은 각각의 아티스트들이 다른 멤버들이나 가수들과는 구별되는, 나름의 패션 센스를 가져야 한다.고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케이팝 뮤직비디오는 볼거리가 많고 환상적이에요. 그들은 경계를 밀어내는 데다가, 밝고 칼라풀한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에서부터 트렌드에 역행하는 패션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많은 것도 충분하지 않음을 강조하죠. 각각의 스타 또는 아이돌은 각각의 유니크한 정체성과 스타일을 갖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패션 관련 논쟁에 휘말린 방탄소년단
케이팝 스타들이 그들의 스타일에 대해 뜨거운 반응을 받는 반면, 가끔씩 옷 한 번 잘못 골라 입었다가 엄청난 논쟁에 휩싸이기도 한다. 지난 11월, 방탄소년단은 사진 촬영 때 나치 문양이 들어간 모자를 썼다는 것 때문에 비판을 받았었다. 3년 전, 이 그룹은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의 사진 촬영 때 유사한 논쟁을 마주쳐야 했다. 사이먼 위젠탈 센터(The Simon Wiesenthal Center)는 방탄소년단이 무대 위에서 나치 깃발과 비슷하게 생긴 깃발을 흔든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달, 일본 TV 방송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던 스케줄이 무산된 것은 방탄소년단의 멤버 지민이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는 이미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사이먼 위젠탈 센터는 이에 대해 방탄소년단이 일본인과 나치 희생자 모두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사이먼 위젠탈 센터의 글로벌 소셜 액션 디렉터인 랍비, 아브라함 쿠퍼(Abraham Cooper)는 성명서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방탄소년단은 아무런 생각 없이 (우리들의) 아픈 과거 기억을 조롱하는 디자인으로 이 그룹의 커리어를 홍보했다. 그 결과로 한국과 전 세계의 젊은 세대들이 편견과 포용부 족을 멋진 것으로 여기고 역사의 교훈을 지워버리게 될까, 두렵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그들의 옷에 있던 이미지가 상징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지난 11월, 이 그룹의 옷에 대한 열띤 논쟁 끝에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와 방탄소년단은 나치를 포함한 모든 전체주의, 극단적 정치적 성향을 띤 모든 단체 및 조직을 지지하지 않고, 이에 반대하며, 이러한 단체들과의 연계를 통해 과거 역사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분들께 상처를 드릴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빅히트는 화보 촬영 시 과거 나치의 문양이 들어있는 모자 착용과 관련하여,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일체의 의도성이 없었고, 당일 촬영과 관련된 모든 복장과 액세서리들은 해당 언론사에서 제공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사가 사전에 충분한 검수를 못하여 당사의 아티스트가 착용하게 됨으로 인해 과거 나치로 인해 피해를 입으셨던 분들께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드릴 수 있었던 점은 물론, 당사 아티스트가 나치 이미지와 연계되어 있는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셨을 수 있었던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라는 것이었다.
방탄소년단과 같은 슈퍼 그룹에게 국제적인 명성은 명백히 보다 큰 책임과 함께 다가온다. 멤버 한 명이 입었던 티셔츠의 이미지가 여러 계층의 대중들에게 얼마나 각기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지, 이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12월 첫주의 며칠 동안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창을 통해 전 세계 트렌드를 지배한 것은 확실히 옷에 관계된 논쟁도 방탄소년단을 둘러싼 팬들의 열성을 막는데는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패션 업계, 케이팝 아티스트와 협업해야
카밀라 클락슨(Camilla Clarkson)은 케이팝과 케이팝 스타들이 패션 트렌드를 지배하는 경향은 내년에도 계속되리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 말은 남성 화장품이 더 잘 팔릴 것이며, 밝은색으로 한 모발 염색, 기발한 티셔츠, 그리고 줄무늬와 지그재그 무늬 또는 땡땡이, 만화나 비디오게임의 캐릭터 프린트 등 대담한 프린트가 계속 인기 있을 것임을 의미한다. 카밀라 클락슨은 서구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이런 경향을 이용해 상업화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래퍼들이 코치(Coach), 구찌(Gucci), 카티에르(Cartier)와 같은 브랜드를 떠나고 난 후, 중간가와 고가의 브랜드들이 힙합 문화를 다시 수용하기까지는 수년이 걸렸었다.
구찌는 구체적으로 릴펌프(Lil Pump), 방탄소년단 같은 랩 아티스트들의 팬을 보유하고 있다. 예상했던 것처럼, 이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받은 Z세대의 붐과 젊은 밀레니얼 쇼핑객들 덕에 구찌는 올해 더 높은 영업 실적을 올렸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은 그들이 힙합 분야에서 (특별히 경제적으로) 저질렀던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않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자신들의 브랜드에 케이팝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서구의 디자이너들은 케이팝이 자신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물론, 엄청난 판매를 도와주는 영역으로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라고 클락슨은 말한다.
<2017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 선 방탄소년단, 그들은 패션 유행을 선도한다. - 출처 : Jason LaVeris/FilmMagic>
전 세계 패션계에 불고 있는 케이팝의 영향과 바람을 아주 잘 분석한 기사이다. 몇 년 전, 샤넬과 구찌 등 명품 브랜드들이 가장 선호하는 모델이 빅뱅의 지드래건과 씨엘이라는 기사를 대한 적이 있다. 이유? 명품 소비가 가장 높은 국가인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들이 모두 케이팝 스타들이기 때문이란다. 이제 고가의 디자이너 브랜드뿐만 아니라 트렌드마저도 케이팝 스타들이 장악하는 시대가 왔다. 이러한 사회적 파워를 고가의 디자이너 제품 홍보에 낭비해서야 되겠는가. 그동안 차곡차곡 내공을 키워온 한국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은 이 기회를 포착해 케이 패션의 세계화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https://www.vox.com/the-goods/2018/12/4/18124626/k-pop-bts-fashion-melon-music-awards-jin-birth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