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무용 공연이 열린 마드리드 '마따데로'(좌)와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지난 일요일 (16일) 마드리드 복합문화예술 공간 마타데로(Matadero)에서 한국 전통 공연이 펼쳐졌다. 이 공연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12월 한 달간 열리는 라 나비데냐 국제문화축제 (La Navideña Feria)의 프로그램의 일부로 무료로 주말을 맞아 마타데로를 찾은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크리스마스 조명들로 꾸며진 마타데로에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문화 공연들과 전시회들을 보러 온 현지인들이 차분한 주말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인 관계로 비교적 한산했는데, 한국 전통 공연이 열리는 마테데로 시네테까(cineteca:시네라이브러리) 플라토(Cineteta plantó)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마타데로에는 전 세계의 좋은 영화들을 소개하는 두 개의 “시네테까”가 있는 데 그 중 플라토는 129석 규모의 작은 영화관이다.
이번 공연은 주스페인 한국문화원이 한국의 양길순 무용단을 초청하여 이루어졌다. 양길순 무용단은 도살풀이 전수 조교인 양길순을 주축으로 무용가 채상묵, 황순임 등 무형문화재 전수조교들로 구성된 무용단이다. 첫 번째 무대는 국가지정무형문화제의 승무의 무대였다. 고 이매방의 살풀이춤 이수자인 한국 전통춤협회 이사장 채상묵이 풀어내는 격조 높은 춤사위는 단숨에 관객들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어두운 무대에서 빛나는 흰 승무의 춤에 몇몇 관객은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승무의 감동을 이어간 무대는 전래 의왕거리 당굿의 특이한 무속 장단을 바탕으로 구성된 태평무는 특이한 발짓과 손놀림이 섬세하고 절도 있었다. 다만, 관객들이 무대 구조로 그 섬세한 발짓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후 경기소리 이수자 최수정의 정선아리랑, 강원 아리랑, 뱃놀이로 이루어진 경기 민요 제창 무대와 장고춤이 이어졌다. 장구를 둘러메고 경쾌하게 움직이며 다양한 장구가락을 구사하는 무용수들에 스페인 관객들은 감탄했다.
<수준 높은 공연을 보여준 공연단과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현지 관중들>
애절하기도 하고 섬세한 진주교방굿거리춤과 역동적인 진도북춤이 이어졌고, 관객들이 열렬한 박수가 채 가시기도 전에 궁중의 위엄과 평민의 자유로움이 조화를 이룬 교방입춤이 이어졌다. 살풀이의 원형인 도살풀이춤은 신비롭기까지 했는데, 인생의 멋과 슬픔, 사랑 모든 아픔과 기쁨을 희고 긴 수건으로 표현한 춤에 관객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가야금 신조 예능보유자 이영희와 이수자 한예슬의 가야금 연주 무대가 이어졌다. 아리랑과 한오백년, 도라지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익숙한 가락이 가야금의 현을 만나 공연장에 울려 펴지며 다른 문화의 관객들에게 한국의 감정을 전했다. 박수가 터져 나왔고, 사람들을 브라보를 외쳤다. 마지막 무대는 한국의 판소리였다. 판소리 전주조교 김수연 명창의 단가가 이어졌다. 춘향가 중 이별대목을 읊는 소리에 취임새가 절로 나는 무대였다. 그 해학적이고 명쾌한 가사들이 전달되지 않아 안타까웠지만, 그 깊은 소리만으로도 스페인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모든 무대가 끝나고, 전 출연자들이 인사를 이해 무대에 오르자 관객들을 큰 박수를 보냈다. 무대는 이제껏 마드리드에서 열린 전통 공연 중에서도 가장 전문적이고 수준 높은 공연이었다. 스페인 관객들도 그 무대를 충분히 즐기고 느낄 수 있었다.
플라토 영화관은 높은 무대가 마련되어 있는 곳이 아니라 영상을 보기 이해 적합한 구조로 무용 공연에 적절한 공간은 아니었다. 무대보다 관객 좌석이 높아 뒤에 않은 관객들은 무대를 자세히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공연 시작 바로 직전 관객 좌석 중간에서 핸드폰을 들고 공연을 찍는 무대 연출 감독에게 뒷좌석의 관객들이 큰 소리로 항의하는 등의 소란이 있었다. 적합하지 않는 무대와 언어가 통하지 않아 일어난 소동이었다. 결국 무대 중간에 뒷좌석의 관객 중 하나가 나서 무대 앞으로 보내고서야 상황이 진정이 되었다. 공연 연출 감독을 무대 앞 좌석으로 처음부터 안내하여 촬영하게 하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라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또 판소리 무대에 ‘얼씨구’, ’좋다’ 등과 같은 취임새를 넣는 것을 무대를 방해한다고 오해한 관객들이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에서 일어난 헤프닝이었다.
하지만 한국 전통 예술에 대한 큰 이해가 없는 스페인 관객들에게 수준 높은 한국 전통 예술 무대를 소개할 수 있었던 것 자체로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격조 높은 한국 문화 예술 공연들이 현지인들에게 많이 소개되기를 바란다.
※ 사진 출처 :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