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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분석] 캐나다 불어권 매체에 실린 가수 양준일의 매력

2020-03-24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캐나다에서 케이팝에 대한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고,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10대 20대 아이들의 장난처럼 느껴지던 케이팝은 캐나다 공연 사업이 주목하고 있고, 학문 영역에서도 관심을 보여 분석의 대상이자 사회적 주제가 되고 있다. 한국 정부 주도의 다양한 한국 알리기 문화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50년이 넘어가는 한국 동포의 이민 역사와 함께 한국 커뮤니티를 만들며 캐나다 사회 속에 흡수되어 가고 있기도 하고, 이는 문학과 예술 영역에서 한인 2세 즉 한인이자 캐나다인인 이들의 열정과 활동으로점차 캐나다 사회에 그들의 언어로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캐나다 내 다양한 자체 모임의 형성으로 이어졌고, 한국 문화를 즐기는 캐나다인들의 모임도 증가하고 있다. 캐나다는 영어와 불어를 공식 언어로 인정하고 있는데, 영어권뿐 아니라 불어권에서의 한국 문화 사랑 또한 여전히 그 인기를 더해 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계와 나라가 우울한 가운데, AFP(Agence France Press) 통신이 가수 양준일 씨 와의 인터뷰 기사를 캐나다 불어권 매체인 《La Presse》를 통해 게재했다. 기사는 이제 50대가 된 양준일 씨가 20년 전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이유와 과정, 그리고 현재 재조명받게 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기사는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 존리(John Lie) 교수와 빌보드 메거진의 K-Pop 전문가인 타말 허먼(Tamar Herman)의 말을 빌려서 한국 사회를 분석하기도 하고, 현재 한국의 세대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양준일 씨의 등장을 꼽기도 하였다. 아래는 기사 전문을 통신원이 번역, 정리한 것이다.
	

<캐나다 불어권 매체 ‘La Presse’에 실린 양준일 가수에 관한 기사 - 출처 : La Presse>

케이팝의 선구자였으나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가수, 양준일은 30년 전 무대 위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재조명받게 되면서,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남자 아이돌 그룹의 놀라운 성공을 경험하고 있는 현재, 1990년대 초반 가수 양준일 씨가 경험했다는 일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가 무대 위에서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로서 무대를 꾸미기 시작하자 수많은 돌이 날아왔다고 했다. 그가 경험한 수많은 비난의 이유는 현재 한국 아이돌 그룹이 성공한 바로 같은 이유였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여자같은 모습에 화장을 하고 긴 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그는 분위기를 맞춰가는 것과 다르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50대가 된 예술가인 가수 양준일 씨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에 나는 시대를 앞서간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회는 1980년대와 권위주의 통치의 수십 년을 지나고 있었고 곧 세기말이 되면 도래할 한국 문화의 부흥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다. 이후 2019년이 되어서야 가수 양준일 씨는 소셜미디어에서 회자되기 시작했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면서 재발견되었다. 그는 현재 인기 있는 빅뱅(Bigbang)의 리더인 지드래곤(G-Dragon)에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팽배하고 다문화주의가 용인되지 않았던 1980년대 후반에는 현재와 완전히 다른 문화적 환경이었다. 베트남에서 태어난 양준일은 한국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하눅에서 가수 활동을 하면서는 영어를 쓴다는 이유로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관련자는 그에게 “한국인에게 돌아가야 할 일을 훔쳐갔다고”고 그를 비난하기도 했다.

양준일 씨는 “제 자신과 한국은 양립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대중들도 멀리했어요. 관객 중 한명은 악수하고 싶어하는 척을 하더니, 폭력적으로 무대에서 밀어내며 “당신은 달라져야 한다”고 외치기도 했다”고 데뷔 초기 당시를 회상했다. 양준일 씨의 오랜 팬이라는 이덕진 씨는 “노래방에서 사람들은 양준일 씨의 노래가 기계에서 흘러나오기만 하면 껐다”고 회상했다. 당시 대중은 양준일 씨가 영어를 말하고, 귀걸이를 하고, 긴 머리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비판하곤 했다. 1990년대 초반, 양준일 씨는 그렇게 사라졌다. 오랜 공백 이후 2001년, 앨범을 발매했지만 실패하게 된다. 그렇게 양준일 씨는 영어 교사로서, 14년 동안 지내다가 2015년에는 미국 플로리다로 가서 아내와 아기와 함께 살면서 웨이터의 삶을 살게 된다.

2018년, 한국은 오래된 아티스트를 재발굴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예전 가수들을 전혀 모르는 밀레니얼 세대들도 현대 케이팝 가수와 유사한 30년 전 아티스트를 찾기 시작하면서 양준일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양 씨는 지난 12월, 20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텔레비전에 출연해 2,000명의 팬들 앞에서 짧은 공연을 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를 몰랐고, 그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인 순간이고,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다.”라고 표현하였다.

미국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 존 리(John Lie) 교수는 “마초니즘에 반대하는 그의 태도와 남녀의 구분이 없었다는 것에서 그는 선구자였다.”라고 언급했다. 그가 활동한 지 1, 2년 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음악적 혁명을 일으키며 현재의 BTS와 같은 메가 스타들이었다.

K-Pop은 여러 장르에서 활동하는 남자 아이돌 그룹은 전 세계의 팬들을 확보하며 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 빌보드 K-Pop 전문가인 타말 허먼(Tamar Herman)은 “양준일의 외모와 스타일은 현재 케이팝 문화의 표준이라고 할 수있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양준일은 한국 사회 전반에 문제로 떠오르는 세대 간의 분열을 메우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호황기에 열심히 일하고 충분한 혜택을 받은 50대와 60대는 노력과 순종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다. 반면 20대와 30대 학교와 취업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에 환멸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이른바 결혼, 연애, 자녀를 포기했다는 의미의 ‘삼포세대’라 불리기도 한다. 이영진 (35세) 씨는 “50대가 멋있게 볼일 수 있다는 생각을 양준일 씨를 만나기 전에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양준일 씨처럼 멋있는 50대가 되고 싶다. 양준일 씨는 다르거나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이 들 수 있다고 보여준다”고 언급한다. 타말 허먼은 양준일 씨가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고 분석한다. 양준일 씨처럼 숨겨진 보물을 재발견하는 것은 현재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통신원 정보

성명 : 고한나[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캐나다/토론토 통신원]
약력 : 전) 캐나다한국학교 연합회 학술분과위원장 온타리오 한국학교 협회 학술분과위원장 현) Travel-lite Magazine Senior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