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국면에 접어듦에 따라 산업별 현장 업무 복귀와 생산 재개가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산업 분야도 지난달부터 영화 및 방송 촬영현장이 다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간 촬영중단, 극장폐쇄 조치 등으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중국의 문화산업계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새로운 창작 소재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의료, 방역, 재난’ 소재 콘텐츠 개발에 관한 관심이다. 중국에서 ‘의료, 방역, 재난’ 관련 소재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확산세가 극심했던 지난 1분기부터다. 당시 중국 정부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전 국민에게 대대적인 ‘외출금지령’을 내린 바 있다. 이 시기 중국인들에게 각종 영상콘텐츠가 유일한 엔터테인먼트이자 심리적 위안이 되었다. 중국 국가광전총국(国家广播电视总局)의 중국시청빅데이터(中国视听大数据)는 2020년 1분기 케이블TV와 IPTV 시청률이 2019년 4분기 대비 22.7% 증가하여, 한 가구당 TV 시청 시간이 하루 평균 30분씩 늘었다고 발표했다.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도 가입자 규모가 17.4% 증가했으며, 1인당 하루 이용시간이 1.5시간 이상 늘었다. 중국 정부는 장기간 외출금지령에 지친 자국민들을 위해 우수 드라마를 선정해 후베이방송국, 우한방송국 등에 무료 방송판권을 지원해주었다. 선정된 드라마 중에는 의학 드라마 <급진과의생(急诊科医生)>(2017), <외과풍운(外科风云)>(2017)이 포함되어있었고, 극 중 의사 캐릭터가 실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우는 의료진들의 상황을 연상시켜 재방영 기간 동안 대중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의료진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도 인기를 끌었다. 특히 <중국의사(中国医生)>(2019)는 아이치이를 통해 재방영되면서 중국 최대 콘텐츠 리뷰 사이트 도우반(豆瓣)에서 9.3점의 높은 평점을 기록했다. 9부작으로 구성된 <중국의사>는 병마와 싸우는 환자 곁을 지키는 중국 의사들의 실제 생활을 과장 없이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다큐멘터리의 높은 인기와 함께 두 번째 에피소드에 출연한 한 젊은 의사는 네티즌들에게 남신(男神)으로 불리며 왕홍(网红) 못지않은 스타로 부상했다.
<코로나19로 재조명된 중국 의학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 출처 : 도우반>
덩달아 2020년 방영 대기 중인 의학 소재 드라마도 주목받고 있다. 양미, 백우 주연의 <사사니의생(谢谢你医生)>, 양쯔, 샤오잔 주연의 <여생, 청다지교(余生, 请多指教)>, 그리고 네티즌들 사이에서 중국판 <태양의 후예>로 불리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황징위, 리친 주연의 <친애적융장(亲爱的戎装)>이 방영 전부터 화제다. 하지만 의학 드라마에 대한 높은 관심만큼 중국 문화산업계의 부담감도 크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중국 대중들이 의학 드라마에 기대하는 전문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기존 중국 의료극은 주로 환자와 의사 간의 갈등과 휴머니즘, 의사들의 직업 정신, 긍정적인 에너지를 표현하는 데 초점 맞춰져 있었다. 이 때문에 중국 의학 드라마는 중국 대중들이 즐겨보는 미국, 영국, 일본, 그리고 한국 드라마만큼 의학적 전문성을 갖춰야 성공할 수 있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 방영 예정인 의학 드라마 ‘친애적융장’. 중국판 ‘태양의 후예’로 불리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 출처 : 도우반>
중국 문화산업계가 ‘의료, 방역, 재난’ 소재 콘텐츠 개발에 주목하는 이유는 비단 대중의 호응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화산업계를 위해 여러 지원정책을 발표했다. 관련 정부 기관 발표에는 ‘전염병 방역’을 주제로 한 창작물 제작비 지원 내용이 빠짐없이 언급되고 있다. 화이브라더스연구원은 지난 3월 12일 중국 국가광전총국이 발표한 ‘전염병 방역과 방송업계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정책 조치에 관한 통지’의 중점 사항을 정리하면서, 올해는 특별히 ‘전염병 방역전, 빈곤 퇴치전 승리’를 주제로 한 인터넷 콘텐츠에 정부가 창작 지원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인터넷 방송 콘텐츠뿐 아니라, 영화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30일 중국 국가영화국(国家电影局)이 발표한 ‘2020년 영화 우수작 특별 기금 통지’를 살펴보면, 역시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 저항·반격을 주제로 한 창작물을 지원 대상으로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정부 정책에 발 빠르게 반응하는 중국 문화산업계의 특성을 고려하면 올 하반기는 ‘바이러스’가 초래한 국가 재난, 방역 소재 콘텐츠가 부상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중국에서는 바이러스나 국가적 재난을 소재로 한 한국 영화,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아졌다. 각종 중국 연예매체,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블로그 및 SNS상에서 한국의 재난 소재 콘텐츠를 재조명한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 재난영화 순위’, 혹은 '한국 재난영화 베스트10' 을 주제로 한 많은 포스팅에서 한국콘텐츠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이번 코로나19와 함께 재조명된 대표적인 콘텐츠로는 독감을 소재로 영화에서 ‘팬데믹’ 사태를 언급한 <감기>(2013), 좀비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부산행>(2016), 최근 시즌2 방영으로 화제가 된 넷플리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시즌 1, 2>(2019, 2010), 유독가스 유출을 소재로 한 도시 재난극 <엑시트> 등이 있다. 이중 지난 1월 춘절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도우반 네티즌 댓글이 급증가한 화제의 콘텐츠는 <감기>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코로나19 때문에 특별히 보게 됐다”, “우한과 잘 어울리는 재난영화”, “한국 재난영화는 사실적이고, 특히 인간의 추악함을 들춰내며 진실을 찍어내는데 중국영화는 여전히 아름다움, 양심 독려에 편중되어 심도 있는 비판이 부족하다”, “재난 앞에서 국가란 무엇인가?” 등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를 넘어 사회적 이슈를 던지고, 댓글을 통해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중국에서 재조명된 한국 재난영화 '감기’와 '부산행', 올해 기대작이 된 '반도' – 출처 : 도우반>
더불어 중국에서는 올해 한국 정식개봉을 앞둔 재난영화에도 벌써부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도시에 고립된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유아인, 박신혜 주연의 <얼론>은 주제의 시의성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환구망(环球网)을 비롯한 많은 매체에서 <얼론>의 6월 한국 개봉 ‘검토’ 사실을 기사화했다. 또한, 중국에서 입소문을 통해 높은 인기와 호평을 얻은 바 있는 <부산행> 속편 <반도>의 7월 개봉 일정도 많은 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있다. ‘의료, 방역, 재난’ 소재 콘텐츠 이슈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중국에서 한국 콘텐츠들이 하반기 공개 이후 또다시 주목받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나아가 지속되고 있는 사드 여파로 한국 개봉에 맞춘 중국 내 극장 개봉이나 온라인 정식 유통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배급권 선판매나 리메이크 판권 판매와 같은 우회적 방식을 통해 한국 문화산업계가 실질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콘텐츠 유통 기회를 다각도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성명 : 박경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중국(북경)/북경 통신원] 약력 : 현) 중국전매대학교 영화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