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미생’의 중국판 ‘평범적영요’ – 출처: 더우반 웹사이트>
리메이크 소식이 알려진 지 2년 만에 이달 초 드디어 중국판 <미생>의 방영이 시작됐다. 한국에서 <미생>은 동명의 웹툰을 드라마화해 2014년 tvN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바 있다. 한국 방영 당시 <미생>은 중국에서도 화제였다. 한국 드라마는 일명 막장이나 스타성에 기댄 로맨틱 코미디가 대다수라는 편견을 깨며 중국 드라마 팬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이 때문에 <미생>은 리메이크 소식부터 큰 화제를 모았었다. 한국 방영 후, 2016년 일본에서 리메이크된 데 이어 올해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제작된 중국판 <미생>의 타이틀은 <평범적영요(平凡的荣耀)>이다. 9월 4일부터 상하이 동방위성(东方卫视)과 절강위성(浙江卫视) 2개의 TV채널, 동영상 플랫폼 유쿠를 통해 방영 중이다. 방영 4주 차에 접어든 <평범적영요>는 드라마 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서서히 인기를 끌며 각종 차트에서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 우선 중국 최대 콘텐츠 리뷰사이트 더우반(豆瓣) 평점 10점 만점에 7.7점을 기록하고 있다. 또 바이두 드라마 검색어 1위에 수일째 올라 있다. 중국 엔터테인먼트 데이터 분석기관 브이링크에이지(Vlinkage)가 집계한 ‘드라마 방송지수(电视剧播放指数)’ 1위 자리도 열흘 넘게 유지하고 있다. '드라마 방송지수'는 드라마 시청량, OTT 사이트 및 SNS 상에서의 화제성, 바이두 검색 순위를 평가한 것으로 <평범적영요>의 종합적인 인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각종 차트에서 좋은 성적를 얻고 있는 ‘평범적영요’. 더우반 평점 7.7점, 바이두 드라마 검색어 1위, 브이링크에이지 드라마 종합 인기 순위 1위 기록(각 9월 19일 기준) - 출처: 바이두, 더우반, 브이링크에이지 웹사이트>
호평을 이끈 <평범적영요>의 현지화 전략은? 중국판 <미생>의 타이틀 <평범적영요(平凡的荣耀)>는 ‘평범한 영광’을 뜻한다. 타이틀에서 느껴지듯이 드라마는 한국 원작과 마찬가지로 고군분투하는 직장인들의 보통의 삶을 담고 있다. 스펙 없는 사회 초년생을 중심으로 짜인 직장 내 인물 관계도도 거의 유사하다. 대신 <평범적영요>는 종합무역상사를 배경으로 한 원작과 달리 상하이 금융투자사로 배경을 옮겨 중국 업계 생태를 현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례로 한 에피소드의 소재가 된 특정 사건이 드라마 방송 직후 뉴스 보도에 등장해 드라마의 화제성을 더욱 높여줬다. 원작 <미생>의 캐릭터 및 관계 설정을 그대로 활용하되 에피소드의 소재를 현지화한 것이 <평범적영요>의 주요 성공 전략이 되었다.
<‘평범적영요’의 주인공 중국판 장그래와 오상식 – 출처: 더우반 웹사이트>
또한, <평범적영요>의 호평은 그간 제작된 중국 도시 직장극과의 비교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현대인의 직장생활, 치열한 경쟁을 다룬 드라마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근래 주목받은 작품으로는 소프트웨어 개발 경쟁을 다룬 <창업시대(创业时代)>, 부동산 중개회사를 배경으로 한 <안가(安家)>, 기업 PR전문가가 등장하는 <완벽한 관계(完美关系)>등이 있다. 그러나 각각의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이나 화제성에 비해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특정 직업군을 극중 인물로 내세워 참신하지만, 결국 로맨스물이나 가정 막장극으로 전락한다는 점에서 매번 드라마의 상투성이 지적되어왔다. 그에 반해 <평범적영요>는 ‘로맨스를 뺀 진정한 직장극’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중국 직장극 중 가장 높은 더우반 평점을 기록하고 있다. 대중뿐 아니라 전문가 평도 나쁘지 않다. 중국영화인협회 부주석이자 칭화대 인홍(尹鸿) 교수는 “<평범적영요>가 예술 창작에 있어 대담한 한 발을 내디뎠다”고 평했다. 물론 일부 네티즌들은 드라마를 한국 원작과 비교하거나 중국 정서에 맞지 않아 어색하다는 반응도 보이지만, 대체로 단점을 상쇄할 만한 진일보한 중국 직장극의 등장을 반기는 분위기이다.
한국 드라마 리메이크와 흥행의 상관관계
<2019년 방영된 중국판 ‘시그널’과 ‘너의 목소리가 들려’, 방영 예정인 ‘응답하라1988’의 리메이크작 ‘상약98(相约九八)’ - 출처: 더우반 웹사이트>
한한령의 여파로 한국 작품을 리메이크한 중국 드라마의 방영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중국에서는 한국 원작 드라마가 꾸준히 등장해왔다. 작년만 해도 <시그널>(2016)을 리메이크한 <시공래전(时空来电)>,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의 리메이크작 <비밀없는 너(没有秘密的你)>가 중국 OTT 플랫폼을 통해 방영되었다. 한중 양국의 외교적 분위기에 따라 한국 원작임을 쉬쉬하느냐 대대적으로 홍보하느냐의 차이는 분명 있었다. 별다른 이슈 없이 지나간 작년 리메이크작들과 달리, 확실히 올해 <평범적영요>는 각종 매체에서 한국 원작과 관련된 언급이 비교적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 <시공래전>은 <평범적영요>처럼 더우반에서 높은 대중 평점과 호평을 얻었지만, ‘한국 <시그널>의 리메이크작’으로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고 시청률 면에서도 아쉬움을 남겼다. 이렇게 보면 <평범적영요>는 한한령 이슈로 늦춰진 방영이 결과적으로 흥행에 유리한 작용을 한 셈이다. 물론 각 작품의 완성도에 따라 화제의 지속 정도는 다르겠지만, 중국에서 리메이크 되고 있는 한국 드라마는 중국 드라마 팬들에게 대부분 ‘레전드’로 불리기 때문에 중국 버전의 등장만으로도 초반 시청층과 이슈를 쉽게 모을 수 있다. 또 과거와 달리 중국 네티즌들은 작품성이 뒷받침된다면 한국 원작 드라마의 리메이크를 반기는 분위기다. 가령 이번 <평범적영요>의 더우반 네티즌 평 중 하나를 간략히 살펴보면, “국내 창작자들은 아직 레전드 작품을 쓸 수 없으니 한국에게 배워 실행해나가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좋은 콘텐츠는 존중할 만하다고 생각한다(아이디:莱克尔博德)”라는 의견이 대중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렇게 한국 드라마 리메이크작에 대한 대중의 긍정적 인식과 호전되어가는 한중 관계를 바탕으로 이후 방영을 앞둔 작품들도 한중 콘텐츠 교류의 좋은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
성명 : 박경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중국(북경)/북경 통신원] 약력 : 현) 중국전매대학교 영화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