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연주회 'Korean Art Song' 발표 현장 – 출처 : 살리는 tv Live/변은정 반주자 제공>
2021년은 한·호 수교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양국의 관계는 경제, 외교,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긴밀해지고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민자를 포함한 한국계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문화부문에 있어서 주류사회의 클래식 음악 분야, 미술 분야 등에서 활약 중인 한인 예술가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예술가 중에 시드니대학교의 음악대학인 시드니 콘서바토리엄 오브 뮤직(Sydney Conservatorium of Music)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시로 만들어진 한국가곡들을 논문 주제로 연구하고 변은정 씨가 있다. 그녀는 피아노 반주자이며 현재 음악교육에 종사하고 있다. 지난 17일 변은정 반주자를 만나 그녀의 연구와 음악 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시드니 대학 소속 음악대학인 시드니 콘서바토리엄의 스탭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주로 성악과 학생들 코칭 및 연주 반주를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석사를 졸업한 그다음 해부터 현재까지 16년째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호주에는 어떤 계기로 오셨나요? 94년에 이모 가족이 시드니에 살고 계셔서 자연스럽게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현재 ‘Collaborative Pianist(피아노 반주자)’로 활동 중이라 들었습니다. 피아노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관해 말씀해 주세요.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선화예술중학교 졸업 후 시드니에 와서도 계속 피아노를 쳤습니다. 제가 다닌 Ravenswood Girls High School에서 음악부장 선생님을 통해 피아노 반주과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시드니 콘서바토리엄 음대에 피아노 연주학으로 입학 후, 학부 3학년 때 피아노 반주과를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고, 피아노 반주로 학사, 석사를 거쳐 지금까지 계속 연주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시드니 성악과 학생들과 연주 후에 찍은 단체 사진 – 출처 : 변은정 반주자 제공>
현재 시드니음악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 어떤 공부를 하고 계시나요? 박사과정은 연주와 논문을 함께 통과해야 하는데 2018년부터 박사과정을 시작했고 저의 논문의 주제는 “일제강점기에 쓰인 시를 사용한 한국 가곡의 변천사”입니다. 2016년 한국에서 지내는 1년 동안 예울음악무대(박수길 한양대 음대 명예교수께서 설립한 한국 성악교수님들의 모임)에 소속되어 있는 한국성악계의 중진 교수님들과 함께 연주하면서 한국 가곡을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2017년에 시드니로 돌아와서 현재 지도교수님이신 Dr. Jeanell Carrigan 교수님과 의논 후, 박사과정에서 한국 가곡을 집중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필수과목은 박사과정 1학년 때 이수했고 그 이후에는 발표할 논문의 방향에 맞춰서 두 분의 지도교수님들의 조언을 받아 심층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Korean Art Song' 발표회 홍보 포스터 – 출처 : 변은정 반주자 제공>
지난 달 28일, 박사과정 관련 ‘Korean Art Song’이란 제목으로 발표하셨는데, 어떤 내용이었나요? 앞 질문과 연결되는데, 지난달 28일은 연주학 박사학위의 마지막 연주 발표였습니다. 일제강점기 문학가들 중에서 특히 정지용, 김소월,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사용한 가곡 중,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한국 가곡 15곡을 세분의 성악가와 함께 연주를 했습니다. 당일 녹화영상은 논문심사 때 함께 제출될 예정입니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시인들의 시를 사용한 한국 가곡의 역사를 박사논문의 주제로 선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호주에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국적의 가곡을 많이 연주했지만 정작 한국 가곡을 연주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1년간 한국에서 연주활동을 하면서 한국 작곡가들의 가곡을 연주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 가곡 장르를 좀 더 깊이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료들을 조사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한국가곡에 대한 영어 논문이 많이 발표되지 않았고 또 다른 관점에서 한국가곡의 역사와 변천사를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시인들의 시를 사용한 한국 가곡을 택하게 된 이유는 한국가곡이 일제강점기에 시작되기도 했고 한국인들에게 역사적으로 암울한 시기에 쓰인 시를 한국 작곡가들이 얼마나 선택했으며 어떻게 서양음악의 그릇을 통해서 시를 표현했는지 알아보고 싶었고 또 그만큼 학문적 가치가 있다는 판단에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연구대상으로 선택한 가곡 중, 가장 눈길이 가고 관심이 가던 시가 있으신가요? 그러한 시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지용, 김소월, 윤동주의 시를 사용한 가곡을 위주로 한국가곡의 변천사를 연구하면서 세분의 시인이 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시지만 호주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윤동주 시인의 시가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북간도에서 태어나 강한 민족의식을 갖고 성장했고 한국에서 거주기간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후에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논문에서 다뤄질 각 시들의 영어 번역을 거의 제가 다 했기 때문에 모든 시가 애착이 갑니다만 특히 윤동주 시인의 ‘바람이 불어’가 가장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1941년 한국어 교육이 폐지된 후에 쓰인 시인데 연희전문학교의 문과학생이었던 시인에게는 한국어로 시를 쓴다는 것이 큰 어려운 현실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추측이 됩니다. ‘바람이 불어’는 시대의 흐름에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던 시인의 안타까운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에 곡을 붙인 젊은 작곡가 신승민 선생의 작곡 노트에 의하면 2016년 한국사회의 시대적 흐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본인의 모습을 생각하며 작곡을 하셨다고 합니다. 세대와 시대를 뛰어넘는 두 예술가가 시와 음악을 통해 만나고 교류하고 위로가 된 것 같습니다.
<지도교수인 Dr. Jeanell Carrigan AM, David Miller AM 두분과 함께 찍은 사진 – 출처 : 변은정 반주가 제공>
롤모델로 생각하는 반주자 또는 음악가가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롤모델은 대학교 1학년부터 지금까지 영원한 스승님이신 David Miller AM 교수님이십니다. 20년 넘게 교류하면서 이제는 연세가 많이 드셨지만 항상 일찍 나오셔서 개인 연습하시고 늦게까지 연구하시는 모습과 열정적으로 연주 활동을 하시던 부분이 제 기억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저 자신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항상 돌아보게 하시는 분입니다. 또 다른 한 분도 반주자이신데 영국 런던 길드홀 음악연극학교의 Dr. Graham Johnson 교수님이십니다. 가곡 페스티벌을 통해서 지난 몇 년간 멜버른에서 뵈었고 올해는 온라인 화상프로그램으로 뵙긴 했는데 가곡 반주의 대가로써 닮아가고 싶은 연주자, 피아니스트이십니다. 곡의 특색에 맞는 음악적 색깔을 입히시고 성악가들이 안정감 있고 상상력이 풍부한 연주를 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피아니스트로서의 고유의 색깔을 잃지 않는 분이십니다. 호주의 음악가와 연주자들 사이에서 한국 출신 음악가나 연주자는 어떻게 비춰지는지요? 대학에서 오랜 기간 함께 연주 활동을 해온 음악가들이 많지만 출신지보다는 주로 연주자의 음악 자체를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호주 음악계 곳곳에 한국 출신 음악가들이 계시고 한국에서 인정받으신 분들이 오셨기 때문에 당연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호주에서 현재 한류가 뜨거운데,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한류 아티스트가 있으신가요? 저는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봅니다. 2022년이 한국가곡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그때 호주 성악가들이 한국 가곡을 연주하면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여러 가지로 구상 중에 있습니다. 한국가곡 100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에 한국을 넘어 세계인들이 즐겨 부르는 ‘K-가곡’이 되길 바라면서 호주가 그 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남은 2020년의 일정과 오는 2021년의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코로나-19 때문에 현재 외부공연은 불가능하지만 학교 내부 연주회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학기말까지는 학생들 실기시험으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해야 하는 부분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시 학생들과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박사과정의 마지막 연주발표는 지난달에 했지만 논문은 내년 3월에 제출할 계획입니다. 한국가곡에 대한 영어 논문이 현저하게 적은 편이라서 영어권에서 한국가곡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논문이 되도록 완성도를 높일 것이고 내년 초까지는 그 작업을 계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11년 한호 교류 50주년 기념음악회에 제가 한국과 호주에서 연주한 바 있습니다. 내년 2021년이 한호 교류 60주년입니다. 다양한 공연을 마련하고 싶은데 코로나19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가사로 된 한국가곡들, 특히 일제강점기에 쓰인 시를 이용한 한국가곡의 변천사를 연구하고 있는 예술가를 만났다. 약 1세기의 시간이 지난 이 시점에 한 젊은 음악가에 의한 가곡의 역사는 어떠한 결과를 낼 것인지 궁금하다. 특히, 국내가 아닌 호주에서 이러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 또한 특별하다. 그리고 인터뷰 내용에 있듯이 변은정 반주가의 바람대로 한국의 가곡을 호주의 성악가의 연주로 들을 수 있다면, 또 다른 한국과 호주는 마음의 교류를 이룰 것이다. 우리들이 사랑하는 시인들의 아름다운 시가 아름다운 선율을 만나고 나라와 나라를 뛰어넘어 호주성악가의 연주로 공연된다면 이는 시간을 공간을 초월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학문적인 연구와 연주를 함께 병행하고 있는 변은정 반주가의 깊이가 있는 이벤트가 기대된다.
성명 : 김민하[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호주/시드니 통신원] 약력 : 현) Community Relations Commission NSW 리포터 호주 동아일보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