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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와 풍자예술

2020-11-18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최근 강남의 한 피자집이 말레이시아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 연예인들의 뮤직비디오와 예능 촬영지로 소개된 피자집에 말레이시아 예술가 파흐미 레자(Fahmi Reza)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케이팝그룹 'NCT'가 촬영한 장소에 파흐미 레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 - 출처 : 파흐미 레자 트위터(@kuasasiswa)/NCT 트워터(NCTsmtown)>

파흐미 레자는 2016년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전 총리를 광대로 묘사한 캐리커처 이미지를 트위터에 올렸다가 통신멀티미디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캐리커처 이미지와 함께 “2015년 선동법(Sedition Act) 위반 혐의로 체포된 횟수만 91회다. 우리는 모두 선동자다”라는 글을 올렸다. 선동법은 선동적인 연설을 할 경우 최대 징역 3년형을 부과할 수 있는 법으로, 정부에 대항하는 인권운동가와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유로 지탄받았다. 나집 전 총리는 총선을 앞둔 2012년에 선동법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13년 총리로 임명된 이후에 이를 지키지 않았다. 6대 총리를 지낸 2015년에는 선동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 건수만 91번에 달해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파흐미 레자는 2016년 광대 캐리커처 이미지를 올린 이유로 2018년 유죄를 선고받아 징역 1개월과 벌금 3만 링깃(한화 약 8,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타인을 조롱하고 위협적인 게시물을 올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파흐미 레자는 2013년 나집 전 총리를 광대로 풍자한 캐리커처를 처음 선보인 이래, 오늘날까지도 부패한 정치인을 향해 일침을 가하고 있다. 오늘날 그가 풍자한 광대 이미지는 집회와 시위에 등장하며 부패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광대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말레이시아인들 - 출처: 'cartoonistsrights.org'>

이처럼 한때는 유포만으로 처벌받은 광대 이미지가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팝 뮤직비디오와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자 말레이시아인들 사이에서는 큰 화제가 됐다. 파흐미 레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전 세계에서 시청되는 한류 콘텐츠를 통해 말레이시아의 일부 부패한 정치 이슈와 파흐미 레자의 작품은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됐다. 이에 최근 통신원은 파흐미 레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7일 파흐미 레자는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 언론이 케이팝과 TV 쇼에 등장한 #KitaSemuaPenghasut(#우리는 모두 선동자다) 광대 이미지에 대해 인터뷰하고 싶다는 연락을 취했다. 나는 대부분의 주류 미디어의 인터뷰 요청은 거절한다. 하지만 흥미가 생겨 인터뷰에 응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글과 함께 통신원의 이메일을 캡처해 공유했다. 이에 누리꾼들은 “왜 못해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요”, “한국은 소프트파워에 관심이 많은 국가에요”, “우리가 응원할게요” 등 격려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파흐미 레자 작가가 공유한 통신원의 이메일과 이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 – 출처 : 파흐미 레자 트위터(@kuasasiswa)>

통신원이 인터뷰를 요청한 사실은 말레이시아 언론사에도 보도가 됐다.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영어 언론사 중 하나인 《말레이메일》은 “한국인이 나집 광대 캐리커처에 관심을 보이다. 한국 미디어, 그래픽 디자이너 파흐미 레자에게 연락 취하다”는 제목의 기사가 공개됐다. 파흐미 레자의 작품이 케이팝 뮤직비디오와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했다는 내용과 함께 파흐미 레자의 트위터 내용이 보도됐다. 이밖에도 《헤드토픽스 말레이시아》, 《야후말레이시아》 등 현지 언론에서도 이 사실을 기사화했다.

<말레이메일 보도 기사 – 출처 : '말레이메일'/Choo Choy May/NCTsmtown 트위터>

파흐미 레자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의 정치계에서는 서커스보다 웃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부패한 말레이시아 정치인들에 한해, 광대들보다 웃기다고 말한다. 광대의 모습은 이제 서커스보다 코미디 같은 말레이시아 부패 정치인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광대의 이미지는 과거 혁명가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상품화되면서 저항의 상징으로 남게된 것을 떠올리게 한다. 혁명가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차용한 티셔츠, 열쇠고리 등이 복제되면서 그의 이미지는 소비품으로 격하됐지만, 그와 동시에 오랜 시간 혁명과 저항의 상징으로 남았다. 과거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상품화로 확산됐다면, 오늘날은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가 매개가 되어 이미지가 공유되고 대중화된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한류’는 말레이시아 문화를 확산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한국은 쌍방향 문화교류를 통해 해외 현지 콘텐츠 산업과의 동방성장을 도모하는 신한류를 지향하고 있다. 파흐미 레자의 작품이 한류 콘텐츠를 통해 전 세계에 확산된 이번 경우는 한류의 막강한 파급력이 순기능으로 발휘한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참고자료
《Malaymail》 (20. 11. 9.) , https://www.malaymail.com/news/life/2020/11/09/south-korean-interest-in-najib-clown-protest-art-graphic-designer-fahmi-rez/1920815
《Deutsche Welle》 (18. 2. 28.) , https://www.dw.com/en/artist-fahmi-reza-malaysian-politics-is-a-circus-full-of-clowns/a-42774967

통신원 정보

성명 : 홍성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말레이시아/쿠알라룸푸르 통신원]
약력 : 현) Universiti Sains Malaysia 박사과정(Strategic Human Resource Manag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