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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주요 언론이 보도한 김기덕 감독의 죽음과 작품세계

2020-12-21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이스탄불 소재 한식당 소풍에서 주문한 한국빵 – 출처 : 통신원 촬영

<가학적인 폭력 장면으로 영국에서 개봉이 지연되었던 영화 '섬'의 한 장면 - 출처 : TCD/Prod.DB/Alamy Stock Photo/'가디언'지 12월 11일 자 기사>

코로나19가 발트해에 있는 라트비아에서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대한민국의 김기덕 감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소식이 전 세계 미디어들을 통해 보도된 가운데, 《가디언》, 《인디펜던트》 지 등 영국의 주요 일간지들도 김기덕 감독의 사망 당일 12월 11일에 실시간 보도했다. 이 일간지들은 코로나19 병세로 라트비아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있던 59세 김기덕 감독의 사망 소식을 리가다큐멘터리영화제(Artdocfest/Riga)의 집행위원장인 비탈리 만스키 감독의 발언과 후에 한국에 있는 미디어를 통해 김 감독의 가족들이 인정한 사실을 인용하여 보도하였다. 이 보도들은 한국에서의 미디어 보도와 동일한 선상에서 김 감독이 병을 앓게 되었을 때 그는 발트 지역에서 다음 영화 프로젝트를 위해 세트를 물색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눈에 띄는 것은 《가디언》지가 12월 11일에 두 편의 기사들을 게재한 점이다. ‘논란의 한국 감독 김기덕, 코로나19로 59세의 나이에 사망(Controversial South Korean director Kim Ki-duk dies of Covid aged 59)'라는 제목을 단 첫 번째 보도는 일단 그의 사망 소식과 더불어 한 편으로는 그가 유럽의 주요한 영화제들에서 수상을 한 사실과 그의 영화 작품 세계를 간략하게 소개한 반면, 다른 한 편으로는 미투 운동의 여파로 그가 성폭행, 성추행 등의 혐의로 여배우들로부터 고소를 당하였고 소송에서 패소했지만 항소를 한 상태였다는 등 객관적으로 알려진 사실들을 별다른 논평없이 게재하였다.

1960년생으로 <섬>(2000), <나쁜 남자>(2001) 등 일련의 폭력적이지만 미학적 측면에서는 도전적인 영화들로 유명해진 김기덕 감독은 <섬>에서 볼 수 있는 동물 학대 장면들로 2000년대 초 영국의 영화 평가 기관 영국영화등급분류위원회(British Board of Film Classification)로부터 제재를 받아 영국에서의 영화 개봉이 지연되기도 했다. 그러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빈집>(2004) 등과 같은 영화들로 국제영화제에서는 빼놓을 수 있는 고정 게스트가 되었다. 2012년에는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는데 《가디언》지는 당시 이 영화를 '김의 트레이드 마크인 분노와 극단적인 고통의 트라우마로 거칠거칠한' 영화라고 평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보도들은 스타덤에 올랐던 김기덕 감독의 명예는 2018년 그가 만든 영화들의 고정 배우격인 조재현과 그를 3명의 여성들이 성폭행과 성추행으로 고발하면서 크게 추락하게 된다고 소개했다. 증거불충분으로 김에 대한 일부 성폭행 혐의가 무혐의 처리되기도 했지만 김 감독은 3,480파운드(약 5백만원)의 벌금을 물었고, 당시 김기덕은 3명 중의 한명과 이 사건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든  수첩> 제작자들을 고발하였지만 패소하였다. 이 스캔들 이후 그는 카자흐스탄을 무대로 한 러시아 영화 <디졸브(Dissolve)> 한 편 만을 더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날 게재된 다른 한 편의 보도는 죽음의 원인과 불명예스런 논란과는 별도로 그의 영화 세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리뷰를 싣고 있어 그의 사생활과는 별도로 영화 예술 세계만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영국의 저명 영화 평론가 피터 브래드쇼(Peter Bradshaw)의 논평은 ‘김기덕: 섬뜩한 불교적 충격, 폭력과 최면적인 아름다움(Kim Ki-duk: punk-Buddhist shock, violence – and hypnotic beauty too)’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보도는 코로나19로 59세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김기덕 감독은 타협하지 않는 영화의 뉴 웨이브의 최전선에 있었다고 김기덕 감독의 죽음을 애도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김기덕 감독을 “21세기의 ‘뉴 아시안 웨이브’라 일컬어지는 영화 흐름을 주도한 모든 영화감독 중에서 아마 가장 도전적이고 신비스러우면서도 유럽 영화제에서 아마도 가장 화환을 많이 받은 감독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충격적이고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거칠하고 폭력적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도저히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슬프고 아름다운, 가끔은 그저 단순히 기묘하기도 한 영화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김기덕의 작품들은 이상하게도 최면을 건 것 같았다는 것이 브래드쇼의 평가다. 2011년 그는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는데, 김기덕 감독은 다큐픽션 작품 <아리랑>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이 이 작품을 선정하게 된 이유를 의심의 여지없이 그의 작품이 지닌 장인의 경지에선 단호한 효과(commanding effect) 때문이었다고 평가한다. 그의 리뷰에서는 실제로 미투 논란에 엮이지 않았더라면 김기덕은 더욱 인상적인 영화들을 만들었고 저명해졌을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워하는 톤도 느껴진다.

브래드쇼는 김기덕 영화의 특징을 ‘진정으로 정신적인 영화(a genuinely spiritual film)’라고 집약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극단적인 잔인함과 예술 영화적 착취로 잘 알려진 그의 대작이자 현대 한국 영화 중 최고 걸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은 고요하면서도 열정적이다. 한 노승의 지도 하에 수행을 하는 젊은 스님이 겪는 삶의 계절들이 고통스런 깨달음의 여정을 따라 영원이란 맥락으로 보이는데 이는 전례 없이 보기 드문 귀한 장면들이라는 평가다.
'자비'를 다루는 김기덕 감독의 대표작 'Pieta' - 출처 : AF archive/Alamy Stock Photo/'가디언'지 12월 11일 자 기사

<'자비'를 다루는 김기덕 감독의 대표작 'Pieta' - 출처 : AF archive/Alamy Stock Photo/'가디언'지 12월 11일 자 기사>

물론 '영적'이라는 것이 그의 모든 작품들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피에타(2012)>는 기독교적인 상상력을 볼 수 있다. 이는 피터 그린웨이적인 요소로 평가되고 있는데 '용서', '자비'의 문제가 이 영화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섬(2000)>, <나쁜 남자(2001)>, <빈집(2004)>과 같이 더더욱 폭력적인 영화들로 인해 김 감독은 유럽에서는 거의 추앙에 가까운 존경을 받는 '컬트'의 대상이 되었다. 역시 폭력을 무대화한 박찬욱, 이창동과 같이 김기덕은 기독교와 정신적인 삶에 관심을 가졌지만 김기덕의 영화들은 그만의 특유한, 독자적인 거친 '펑크 부디즘'(unruly punk Buddhism)을 지녔다는 피터 브래드쇼의 리뷰가 통신원의 주목을 끄는 것은 홀로 고군분투하며 성장한 김기덕 감독이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린 공적, 또 그가 천착한 영화적인 주제들에도 불구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글들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간 대부분의 기사는 전문적인 논평보다는 미투로 인한 그의 인격 또는 도덕성 논란만을 남겼다.

통신원은 김 감독의 사망 소식을 듣고 상당히 무거운 마음으로 주말을 보냈다. 감독의 팬도 아니고 성폭력 관련 그의 행위들이 사실이라면 이를 두둔하고 싶은 마음도 추호도 없다. 몇몇 영화계 인사들이 지적했듯이 한국영화 관련 강의를 할 때 그의 영화들을 다룰 때 곤혹스러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영화들을 보고나면 늘 심기가 불편해서 일부러 그의 영화를 보러가진 않는다. 그의 영화들을 강의 목록에 넣어야만 하는가 하는 질문을 실제로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김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하고 많은 질문을 던진다. 영화사적으로는 중요하다는 것이다. 베를린에 있는 영화 아카이브에서 연구를 할 때 김기덕 이름만을 언급하던 직원들이 생각난다. 그가 마치 한국 영화감독의 대명사라도 되듯이.

마음 한켠에서는 그의 그릇된 여성 착취 관련 태도는 단지 수면으로 떠오른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덕적으로 훌륭한 작가들의 예술 작품들만을 다루기로 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영화사 또는 문화사를 완전히 새로 써야할 지도 모른다. 김기덕 감독은 자신이 늘 한국 영화계에서 아웃사이더라고 강조해왔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그의 문제들이 유독 더 불거졌을 수도 있다. 피터 브래드쇼처럼 영화계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그의 흠은 일단 접어 두고 어처구니없게 사망한 그의 죽음에 애도할 순 없지만 그가 만든 영화들이 세상에 던진 '질문들'에 천착해보는 것이 어떨까. 그러면서 그 자신의 도덕성을 함께 도마에 올린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 참고자료
https://www.theguardian.com/film/2020/dec/11/kim-ki-duk-shock-violence-beauty-south-korea-director
https://www.theguardian.com/film/2020/dec/11/south-korea-director-kim-ki-duk-dies-of-covid
https://www.independent.co.uk/news/awardwinning-skorean-director-kim-kiduk-dies-in-latvia-south-korean-riga-actress-award-allegations-

통신원 정보

성명 : 이현선[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영국/런던 통신원]
약력 : 현)SOAS, University of London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