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봄도 어김없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여전히 팬데믹 상황에 처해있지만, 코로나가 초래하여 변화된 삶은 이제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 되어 버렸고, 또 그 안에서 살아가며 할 수 있는 것들을 충족하며 생활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봄과 어울리는 로맨스 영화 한 편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바로 2014년 황정민, 한혜진이 주연한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다. 제목도 원작과 같은 <남자가 사랑할 때>로 개봉됐지만,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원작과 사뭇 다르다.
< 한국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 출처 : 蘋果新聞網/사나이픽처스/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또 그 점이 리메이크 영화지만 현지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매력으로 손꼽히고 있다. 원작 <남자가 사랑할 때>는 사랑이라곤 제대로 해보지 않은 건달이 사채빚을 독촉하다가 알게 된 여자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로, 리메이크된 대만판 역시 주인공 설정과 내용은 원작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가 팬데믹 상황 중에 2021년 최고의 국민 영화로 수식될 수 있었던 것은 뻔해 보이는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좀 더 현지 문화에 맞게 표현했다는 점 때문이다.
< 대만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 출처: 蘋果新聞網/金盞花大影業>
이 영화의 예고편이나 수록곡을 보면, 원작에서 느낄 수 없는 상반된 느낌과 분위기를 담고 있다. 똑같은 주인공의 설정과 내용이지만, 그 속에서 좀 더 현지 관객들이 호응할 수 있는 부분을 담기 위해 애쓴 점이 보인다. 한 현지 매체에선 원작이 가지고 있는 매력도 매력이지만, 그 매력을 현지 문화에 가장 알맞게 투영할 수 있었던 두 주연 배우의 연기 투혼을 흥행 요소로 언급하고 있다. 데뷔 20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는 평을 받는 남자 주인공 Roy chiu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하기 위해, 촌스러운 셔츠와 옷매무새, 헤어스타일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나이만 먹었지 서툰 상남자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노력했다. 또 대중적인 배우 Wei-ning, Hsu은 배우 한혜진보다 더 차갑고 삶의 활기가 없이 하루를 버텨내는 은행원을 열연했다. 이 영화의 주된 소재와 스토리, 그리고 타이틀을 제외하곤, 모든 요소가 현지와 가장 밀접한 맥락 속에 걸쳐져 있다. 예를 들면, 두 영화에서 나오는 남자 주인공은 모두 촌스럽고, 막무가내이며, 인정머리 하나 없을 것 같지만 인간적인 모습을 가진 설정으로 유사하지만, 태일이 극 중 입에 달고 있는 소시지는 대만판에선 사탕수수로 표현됐으며, 목사에게 사채 이자를 받는 장면은 현지 문화의 가장 보편적인 사당 '廟'을 배경으로 그렸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언어다. 대만에는 만다린과 여러 언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푸젠성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쓰는 객가어, 민난어, 원래 대만에 상주했던 10여 종족의 원주민이 쓰는 언어 등 여러 가지 언어가 존재한다. 보편적으로 이곳에서 '민난어'는 사람과 사람 간의 친밀감을 더 돈독하게 하는 언어다. 그래서 수도인 북부를 제외한 중부, 남부 쪽 사람들은 만다린이 표준어 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서 '민난어'를 주로 사용한다. '민난어'가 주는 힘은 쉽게 말해 우리나라의 사투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사투리를 구사하는 외국인이 더 친근감 느끼고, 거리감 없게 느껴지는 것처럼, '민난어'는 사람의 경계를 허물게 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민난어'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구수함은 만다린에서 구사할 수 없는 표현이 많다. 그래서 대만판 <남자가 사랑할 때>에 등장하는 민난어는 두 주인공의 캐릭터와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삶을 더 현실성 있게 구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이 '민난어'가 가지고 있는 구수한 매력 때문에, 느와르 장르처럼 축 늘어진다거나 무겁지 않고, 음악 기호의 스타카토처럼 톡톡 튀는 부분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사실 최근 ‘국민 영화’로 떠오른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통신원은 리메이크작이 원작과 비슷해 보이긴 했지만 두 배우의 말투 그리고 영화 수록곡을 보면서 리메이크 영화인지 갸우뚱하게 할 정도로 소재, 스토리, 제목만 빼곤 전혀 다른 영화로 느껴졌다. 감독과 연출과 배우의 연기는 '대만식(台式)'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현실적 매력을 최고조로 극대화해 표현했다. 대만 영화 시장에서 자국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것은 1년에 한번 정도 있을까말까 한 일이다. 현재 박스오피스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남자가 사랑할 때>가 관객의 호평을 받으며, 자국 영화의 신기록을 세우게 될지 관심을 끌고 있다.
<4월 16일 기준 박스오피스 순위순위 – 출처 : Yahoo Taiwan Movie>
한국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하게 표현한 연출력과 연기력으로 국민 영화의 이미지를 더 부각하고 있는 대만판 <남자가 사랑할 때>가 봄기운을 가득 심어주는 영화로 남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성명 : 박동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대만/타이베이 통신원] 약력 : 현) 대만사범교육대학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