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예술원 다루(단장 서연운)의 산하단체인 전통창작그룹 ‘해밀’이 추석을 축하하며 소리극 <인당수>를 무대에 올렸다. 지난 9월 23일 오후 7시30분, LA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의 플러튼(Fullerton)시에 위치한 머켄텔러 문화센터(Muckenthaler Cultural Center, 대표 Farrell Hirsch) 야외 극장 무대에 오른 소리극 <인당수>는 현지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판소리(Pansori)’ 라는 장르에 대한 소개와 함께 <심청가> 중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을 짧은 창극으로 만든 작품이다. 공연 장소인 머켄텔러 문화센터는 각종 공연과 전시가 열리는 것은 물론 강연과 워크숍, 클래스에 이르기까지, 오렌지카운티 지역사회를 위한 다각적 문화 사업의 구심점이 되어왔다. 특히 야외 원형 극장은 별빛 아래 와인과 음식을 즐기면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소규모 할리웃 보울이라 할 만한 곳이다. ‘해밀’의 서연운 단장은 공연을 앞두고 “소리극 <인당수>로 미국 땅에서 창극을 선보이게 되어 기쁘다”며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의 효심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공연을 기획하고 심청 역으로 무대에 선 서연운 단장은 한국의 이일주 명창의 제자로 전북 무형문화재 2초 <심청가>의 전수자이다. 서단장은 2004년 미주예술원 다루를 창단하고 미주국악경연대회, 해밀 공연 등으로 한국 전통음악의 독창성을 미국에 알려왔으며 남가주 지역에서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날 공연은 유료 공연으로 티켓은 15달러였다. 물론 주류 사회 오페라 공연의 티켓 가격에는 비할 바 못 되는 금액이지만 수준 높은 전통 문화 공연을 초대권 돌리기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척 고무적인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수용 인원 250명 규모인 극장이 거의 들어찼으니 델타변이가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시국에 매우 성공적인 공연이었다는 평가를 내릴 만 하다. 이날 공연은 <심청가> 전 작품이 아니라, 심청이 인당수에 제물로 바쳐지는 장면을 극화한 것이다. 등장 인물은 심청과 도사공, 4명의 도창(솔로 해설 겸 사공)이 전부이다.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도, 악명 높은 뺑덕 어멈도 나오지 않고 공연 시간도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공연이 시작되자 영어 자막이 더해진 애니메이션으로 <심청가>의 줄거리가 흘러나왔다. 공연이 한국어로 진행된 만큼, 한국어 가사를 이해할 길 없는 현지인 관객을 위한 배려이다. 또한 <심청가>를 들어본 적 없는 한인 2세들에게도, <심청가>의 내용이 가물가물한 한인 동포들에게도 작품 이해를 위한 좋은 인트로였다. 이어 서글프고 느린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지며 무대에는 깊은 바다 물결의 동영상이 펼쳐졌다. 조용하던 피아노는 갑자기 긴장감 넘치는 소리로 바뀌더니 오페라의 레치타티보(Recitativo, 오페라에서 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와 같은 대사가 이어졌다. “그때에 심청이는 아비의 눈을 뜨게하려 인당수 제수로 팔려가게 되었는데. 만경창파 높이 떠서 영원히 돌아가는구나..” 공연 초반부 무대에 오른 도창(솔로 해설 겸 사공) 역의 김성이 씨는 <심청가> 중에서 가장 어렵다는 ‘범피중류(泛彼中流)’를 불렀다. ‘범피중류'는 <심청가>에서, 심청을 태운 남경 선인의 배가 인당수에 이르기까지 강 위를 떠다니며 이런저런 역사의 사연을 만나는 대목을 이른다. 김성이 씨는 약사로 일하면서 꾸준히 소리를 공부했고 해밀 단원으로서 크고 작은 무대에 서 한국의 소리를 미주 지역에 알리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뱃사람들의 “어기여차” 노랫소리가 두둥 울려퍼지는 북소리에 묻힐 무렵, 흰 적삼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심청(서연운 역)이 무대에 등장했다. 슬프고 애잔한 심청의 노래소리를 듣고 있던 한 현지인 관객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든다. 가사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음악은 그녀의 가슴을 열어주는 도구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심청의 아버지를 향한 효심과 꼿꼿한 삶의 자세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커다란 감동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은막에 비춰진 바닷물의 동영상이 더욱 거칠어진다. 심청은 “아버지, 아버지”라고 절규한 후, 한떨기 꽃처럼 바닷물에 몸을 던진다. 동영상 속 바닷물에서는 물방울이 뽀글뽀글 올라와, 심청이 물에 몸을 던져 기포가 만들어지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바닷물 영상은 실제 공연과 결합돼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심연의 바다에 빠져드는 것 같은 생동감을 느끼게 했다. 심청이 빠진 후에는 이영남 씨가 살풀이 공연을 펼쳐 청이의 마음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공연이 모두 끝나자 객석에서는 쉬지 않고 “부라보!” “잘한다!” “지화자!” “얼씨구!” 등의 추임새를 공연자들에게 선사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심청 역을 맡았던 서연운 씨가 <아리랑>을 선창했다. 뒤이어 다른 단원들이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아리랑>과 동시에 부른다. 이 두 곡이 얼마나 완전한 화음을 이루는지는 들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서연운 씨는 공연 후에 이 곡의 제목이 <어메이징 아리랑>이라고 귀뜸해줬다. 나이가 들수록 아리랑 선율에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이 많은 것은 아마도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선율이 시공간을 초월한 감동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아리랑>이 끝난 후에는 <올드랭사인> 곡조에 <애국가> 가사를 붙여 불렀는데 가슴을 후벼 파는 감동이 일었다. 극단 해밀이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판소리를 유료 공연으로 성공시키기까지는 수차례 무료공연과 찬조공연이 있었다. “그렇게 시간과 열정을 투자했기에 마니아층도 형성된 것 같다”는 서연운 단장의 말을 들으며 한류의 세계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해답을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머켄텔러 문화센터 입구>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준 심청가 대략의 줄거리>
<머켄텔러 극장 대표인 페럴 허시가 관객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소리극 인당수의 한 장면. 흰 적삼을 입은 서연운 씨가 주인공 청이 역을 열연했다.>
최근 몇 년간 선풍적인 한국 영상 콘텐츠들의 인기에 힘입어, 넷플릭스는 올해 지난해보다 65% 늘어난 5,500억 원을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인기를 입증하듯 현재 싱가포르에서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흥행에 이어 <오징어 게임>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번 열풍은 싱가포르에서 불었던 이전의 한류 열풍보다는 좀 더 크게 느껴진다. 마치 방탄소년단과 관련한 제품이나 광고를 길을 가다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곳곳에서 <오징어 게임> 드라마를 패러디하거나 관련 제품들을 판매하는 것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싱가포르 최대 쇼핑 중심 거리인 오차드에 위치한 카페, 브라운 버터(Brown Butter)에서는 드라마 속 달고나 뽑기 게임을 응용한 무료 라떼 제공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제한 시간 안에 꽃, 동그라미, 하트모양 중 하나의 달고나를 성공적으로 잘 뽑으면 무료로 라떼를 제공해주는 이벤트이다.
※ 사진 출처: 통신원 촬영 ※ 참고자료 해밀 공연 유튜브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uFug9EGfl7I
성명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약력 : 현)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요가 지도자 전) 라디오코리아 ‘저녁으로의 초대’ 진행자 미주 한국일보 및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