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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이슈] 코로나19 이후 캄보디아 영화산업의 현재와 미래

2022-09-22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영화계 관계자, '자국 정부지원 부족에도 국제영화제에서 굵직한 상 여러 차례 수상, 사실상 기적에 가까워…'

캄보디아 영화산업은 1960년대 최고의 황금기를 경험한 바 있다. 캄보디아 역사가들마저 이 시대를 '12세기 화려했던 고대앙코르제국 시대 이후 가장 융성했던 최고의 문화 황금시대'라고 일컬을 정도이다.

당시 수도 프놈펜의 주요 영화관들은 평일에도 영화 팬들로 장사진을 이루었고, 암표까지 성행하는 모습이었다. 라디오나 시내 카페에서는 종일 경쾌한 리듬의 서구 음악의 영향을 받은 크메르버전 락이 흘러나왔다. 한마디로 대중문화예술의 최고 전성시대였다.

그리고 90년간의 오랜 프랑스 식민 통치로부터 갓 벗어난 캄보디아를 인도차이나반도 가운데 최고의 대중문화예술국으로 이끈 장본인은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노로돔 시하누크 국왕이다.

수도 프놈펜의 유명 영화관 - 출처: Documentation Center of Cambodia(DC-Cam)

<수도 프놈펜의 유명 영화관 - 출처: Documentation Center of Cambodia(DC-Cam)>

그는 국왕의 신분임에도, 직접 메가폰으로 수십 편의 영화 제작과 더불어 주연까지 맡을 정도로 열렬한 영화광이었으며, 또한 대중문화예술 예찬론자이기도 했다. 당시 캄보디아의 영화산업이 최고의 황금기에 오른 것은 노로돔 시하누크 국왕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덕분에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캄보디아에서 제작된 영화 편수는 300여 편이 넘는다. 지난해 별세한 캄보디아 유명 감독 리분임의 영화 <12자매>와 같은 대작은 태국 등 해외로 수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영화산업은 시하누크 국왕의 정치적 몰락과 운명을 같이했다.

'킬링필드'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캄보디아 영화산업
1975년 4월 17일, 이 날은 캄보디아의 국민들에게 결코 잊지 못할 운명의 날이다. 크메르루즈 게릴라군의 공산 혁명에 의해 수도 프놈펜이 함락된 이 날, 그동안 쌓아놓은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파괴됐다. 영화산업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전대미문의 재앙과 마주쳐야만 했다.
 
급진개혁성향의 공산주의자 폴 포트는 자국 영화인을 지식인 혹은 부패한 권력자들에 빌붙어 살던 기생충 정도로 취급했다. 따라서 당시 영화인은 지식층과 함께 공개 처형 대상 1순위에 포함되고 말았다. 영화산업에 종사하던 수많은 전문 인력과 배우들, 그리고 거대 자본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영화 필름들조차 모두 삽시간에 불타버렸다.

그로부터 3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90년대 초, 유엔의 중재로 마침내 평화시대가 도래했고 길고 칠흑처럼 어두운 터널을 지나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서서히 영화산업에도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당시 끝도 알 수 없는 깊은 나락까지 떨어졌던 캄보디아 영화산업에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이는 캄보디아 난민고아출신인 프랑스국적 감독 리티 판(Rithy Panh)이다. 그가 만든 애니메이션 다큐 영화 <잃어버린 사진(The missing picture, 2013)>은 2013년 제66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상' 부문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었고, 같은 해 열린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영화산업과 문화 발전에 헌신한 아시아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실 이 영화 한 편의 성공은 단순한 영화적 성공을 넘어 캄보디아 영화사에 있어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된다. 이 영화 한 편이 침체된 캄보디아 영화산업에 자극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 영화인에게 자국 영화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더불어 예술적 영감마저 제공했기 때문이다.

킬링필드 고아 출신인 리티 판 감독의 영화 '잃어버린 사진(Missing Picture)' 포스터 - 출처: Bophana Audiovisual Resorce Cente

<킬링필드 고아 출신인 리티 판 감독의 영화 '잃어버린 사진(Missing Picture)' 포스터 - 출처: Bophana Audiovisual Resorce Cente>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 열광하던 현지의 젊은 영화 팬들은 자국 영화에도 차츰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이다. 영화 감독이나 배우를 꿈꾸는 지망생들도 증가하며 영화산업이 서서히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는 불과 십년 전 일이다.

이듬해인 2014년에는 여성 감독 쿨리카르 소토(Kulikar Sotho)가 메가폰을 든 영화 <라스트 릴The Last Reel>이 국제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일본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스피릿 오브 아시아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 역시 리티 판 감독의 작품들처럼 캄보디아 국민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문화적 자긍심마저 일깨워주는 계기를 마련했다.

2021년 제작 발표된 영화 <화이트빌딩>은 제78회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서 큰 상을 받아 국내외 영화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빈민촌 젊은이들의 삶과 가족애를 담은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삐썻 초은(Piseth Chhun)은 놀랍게도 전문 배우 교육도 전혀 받지 않은 아마추어 무명 배우 출신임에도, 뛰어난 감정 연기를 펼쳐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는 기적을 일궈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렇듯 캄보디아 영화는 국제영화계에서의 인정과 주목을 받으며 불과 십수 년 사이에 급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2022년 7월에는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캄보디아 국제영화제(CIFF)가 수도 프놈펜 짜토목 국립극장에서 열렸다. 올해로 11회를 맞이한 캄보디아 국제영화제는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일주일 동안 열렸음에도, 역대 최대 관람객 수를 기록하며 성황리에 종료돼 영화계를 흥분시켰다.

캄보디아 국제영화제를 운영하는 캄보디아 영화위원회(Cambodia Film Commission)는 문화예술부 산하의 비영리 단체로서 2009년 설립됐다. 위원회는 영화제 개최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내 영화 촬영 지원을 위한 원스탑 제작 지원 서비스, 워크샵 및 영화 교육 운영, 촬영 장비 및 설비 임대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파견된 한국인 박성호 프로그래머도 위원회 소속 멤버로 활동 중이다.

코로나19의 본격 확산 전, 2020년 3월 수도 프놈펜 짜토목국립극장에서 개최한 제10회 캄보디아 국제영화제 - 출처 : 통신원 촬영

<코로나19의 본격 확산 전, 2020년 3월 수도 프놈펜 짜토목국립극장에서 개최한 제10회 캄보디아 국제영화제 - 출처 : 통신원 촬영>

캄보디아 영화산업의 성장 가능성
캄보디아는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 추세에 있으며, 전체 인구 중 26세 이하 젊은 층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들이 영화 소비를 주도하기에 향후 영화산업의 시장 잠재성도 매우 큰 편이다. 게다가 최근 코로나19 이후 경제 재개방을 통해 캄보디아 자국 경제가 빠른 속도 회복하고 있으며, 캄보디아 정부 역시 금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5%로 내다보고 있는 만큼, 현지 영화관들도 수개월 내 코로나19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코트라 프놈펜 무역관 역시, <캄보디아 영화산업 동향 보고서>를 통해 빠른 경제 회복 속도와 젊은 인구 구조를 바탕으로 영화 관람 등 문화 관련 여가 소비 지출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화예술부의 공식 통계 자료가 없어 구체적인 수치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통신원이 최근 주말 시내 영화관을 방문해 본 결과, 현지 영화 관람객들로 온종일 북적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만난 프놈펜 소재 멀티플럭스 영화관 관계자 역시 "코로나19 재개방 이후, 영화관이 재개되면서 관객 수가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관객 수가 최소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라고 밝혔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시내의 영화관 입구의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시내의 영화관 입구의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캄보디아 영화산업의 주요 트렌드
캄보디아의 영화 관객층은 주로 10대~30대들이다. 이들 사이에서는 헐리우드 등 해외 영화가 인기 있는 편이며, 자국에서 제작한 조악한 수준의 공포물이나 코미디 장르의 영화도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다. 수년 전 현지에서 상영된 한국 영화 <부산행>도 현지 관객들의 취향을 저격한 덕분인지, 흥행 면에서 나름 성공을 거둔 바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한국 영화의 입지나 인기는 베트남, 태국 등 다른 주변 국가들에 비해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수상작 <기생충>이 캄보디아 영화 팬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대체로 한국 영화의 인기는 케이팝이나 한국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다. 현지 대학생 소니타양(22)도 "케이팝을 좋아하고 오징어 게임도 재미있게 봤지만, 한국 영화 가운데 기억에 남은 영화는 없다."고 말했다.

최근 영화 <범죄도시2>와 <마녀>가 캄보디아에서 개봉된 바 있다. 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흥행 가도를 달린다는 소문에 개봉 초 입소문을 들은 현지 관객들이 잠시 몰렸지만, 개봉한 지 불과 10일 만에 결국 상영을 종료했다. 이처럼 한국 영화는 아직까지 캄보디아 영화 팬들 사이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신 현지에서는 할리우드 영화나 태국 영화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편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문화나 정서적인 측면에서 공감대가 더 크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론도 나름 설득력을 얻는다.

한편 캄보디아 영화계 관계자에 따르면, 캄보디아 자체 제작 영화 수는 연간 20편도 채 되지 않는다. 제작 인력이 부족하고 제작비 역시 감당하기 힘든 열악한 제작 여건과 현실 때문이다.

캄보디아 영화 팬들은 원어보다 크메르어 더빙 영화를 선호
외국 영화는 대부분 크메르어로 더빙해 상영하고 간혹 원어에 크메르어 자막을 입혀 상영한다. 크메르어 자막을 선호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현지 관객들에게 의견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모국어인 크메르어 글자 체계가 어려워 쉽게 글자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아 가독성이 떨어져 영화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다만 원어와 더빙 영화는 입장료에서 큰 차이가 있다. 크메르어 더빙의 경우 3~4불 수준이다. 그런데 한국어에 크메르어 자막을 입힌 영화를 상영하는 일부 영화관에서는 최소 12~18불 입장료를 받고 있으며 VIP관에서 상영하는 경우가 많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큰 영화 배급사는?
코트라 프놈펜 무역관의 최근 영화 관련 자료에 따르면, 해외 영화는 캄보디아에 설립된 배급사를 통해 영화 등급 및 라이선스를 제출할 수 있으며, 크메르어 더빙,원어 및 크메르어 자막 여부에 따라서 상이한 편이다. 현재 캄보디아에는 M.P.I.C, Westec Media Limited 등의 영화 배급사가 있다. Westec Media Limited의 경우 2011년 설립해 유니버셜 스튜디오, 워너브라더스 등 헐리우드 영화사나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한국 영화사와도 제휴를 맺어 캄보디아에 배급하고 있다. 또한 비디오 스트리밍 플랫폼인 Jaikon TV를 운영하며, 온라인 영화 배급 및 유통도 진행하고 있다.

캄보디아 영화산업의 미래는 어떨까?
가속화된 경제 성장과 젊은 인구 구조를 기반으로 캄보디아 영화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온통 장밋빛 청사진으로 가득 찬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다고 지적한다. 특히 영화산업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고, 자본력이 떨어지는 현실은 반드시 풀어야할 큰 과제라고 꼬집는다. 실제로 대부분의 현지 영화 제작사는 영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부의 지원도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턱없이 부족한 편이다. 설상가상으로 영화 관련 전공 학과를 개설한 대학은 단 한 곳도 없다. 주연급 배우들조차 체계적이거나 전문적인 연기 수업을 받지 못한 아마추어 배우들인 경우가 허다하다. 감독 입장에서는 분명 곤혹스러울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연기에 소질을 가진 숨은 보석을 찾아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캄보디아 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인 부산국제영화제 소속 박성호씨는 캄보디아 영화산업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캄보디아 영화산업은 자국 정부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영화인조차 정부의 지원은 거의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그나마 정부가 영화 검열에 대해 베트남이나 태국에 비해 심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위안 삼을 정도이다. 좋은 시나리오를 쓰고도 프랑스와 일본, 한국 등의 영화계나 펀드에 문을 두드리고 의존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 <화이트빌딩>도 사실 프랑스 정부 산하 해외영화진흥단체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 제작했다. 이 영화는 자국 정부의 지원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영화 제작이나 연기를 꿈꾸는 캄보디아 영화인들이 증가해 놀랍게도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인 동시에 정말 아이러니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영화 <화이트빌딩>을 제작한 네앙 카익과 같은 젊고 유능한 신예 감독들이 가진 '헝그리 정신'이 국제영화제에서 인정받는 훌륭한 작품들을 양산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더불어 영화산업 전반에 걸친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면, 영화산업의 미래가 그리 밝다고 할 수는 없다. 강조컨대, 무엇보다 정부의 관심과 관련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 인프라 구축은 마치 복싱에 오르기 전 미리 기초 체력을 쌓는 것과 같다. 당장은 운이 좋아 한 두 경기에서 우승을 거머쥘 수 있을지 몰라도, 기초 체력이 부족하다면 매번 상대 선수를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끝으로 그는 캄보디아의 영화산업이 성장해 여러 국제영화제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영화에 대한 가득한 열정을 지닌 젊은 캄보디아 영화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해외 영화계로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은 덕분이라며, 이 나라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부족한 안타까운 현실을 꼬집었다. 

사진출처
- Documentation Center of Cambodia(DC-Cam)
- Bophana Audiovisual Resorce Center
- 통신원 촬영

통신원 정보

박정연[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캄보디아/프놈펜 통신원]
약력 : 현) 라이프 플라자 캄보디아 뉴스 매거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