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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네바에서 만난 입양인 작가 융과 레티씨아

2023-12-13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몇 년 전 추천 애니메이션을 검색하던 중 동양 아이의 모습과 함께 <피부색깔=꿀색>이라는 제목을 본 기억이 있다. 감독이 '융(Jung)'으로 적혀 있어 한국 감독이 아니라고 여기고 지나치고 잊고 있었다. 얼마 전 제네바에 위치한 입양, 위탁 양육 및 의료 및 출산을 지원하는 정신건강전문협회의 재단 에스파스A(EspaceA)와 그 옆 소극장 씨네룩스(Cinélux)에서 한국 작품을 소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인 <우리를 연결하는 모든 것(Toutce qui nous relie)>과 그래픽 노블 형식의 도서인 <우리의 입양(NosAdoptions)>을 소개하고 있었다. 두 작품 모두 융(Jung)의 작품이다.

그은 1971년 5살의 나이에 전정식이란 이름으로 한국에서 벨기에로 입양돼 '융 헤넌'으로 40여 년간 정체성에 대한 의문, 버려졌다는 슬픔, 이방인으로서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뒤섞힌 감정 안에 자신을 가둬 놓았다. 그러던 그는 43살 무렵 한국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옮기려 한국을 처음으로 찾았다.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피부색깔=꿀색>은 그래픽 노블 형식으로 출간되고 그에 맞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진솔한 그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은 프랑스 안시 애니메이션, 캐나다, 이탈리아, 일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각종 영화제에서 빛을 발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80여 개의 영화제 초청, 20여 번의 수상 기록을 남기며 한국의 봉준호 감독까지도 극찬한 그의 작품은 2편과 3편의 그래픽 노블이 이어서 출간됐고 여전히 좋은 평판을 받고 있다.
2012년 애니메이션 '피부색깔=꿀색(Couleur de peau: Miel)' - 출처: film documentaire.fr

< 2012년 애니메이션 '피부색깔=꿀색(Couleur de peau: Miel)' - 출처: film documentaire.fr >

이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자신과 같은 이야기를 갖는 이들에게 관심과 응원을 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또 다른 작품에 담아냈다. 2018년 그는 그래픽 노블 <베이비 박스(Baby Box)>를 발표했다. 입양된 아이가 성장해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이야기를 다룬 내용인데 이번에는 프랑스의 한국인 부모에게로 입양된 픽션 형식이다. 표지에서부터 펜과 연필, 물감으로 흑백의 대비를 주고 붉은색으로 특정 포인트를 줘 독자를 사로잡는 특징이 있다. 붉은색으로 표현된 여주인공의 머리색, 붉게 물든 하늘 외에도 김치와 고기, 엄마의 묵주에 달린 십자가, 양귀비꽃, 입양 서류가 담긴 상자, 입술 등 그녀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중요한 소재들이 붉게 표현됐다.
작가와의 만남 - 출처: 통신원 촬영신간 그래픽 노블 '우리의 입양(Nos Adoptions)' - 출처: 작가 제공

< (좌)작가와의 만남, (우)신간 그래픽 노블 '우리의 입양(Nos Adoptions)' - 출처: (좌)통신원 촬영, (우)작가 제공 >

작가는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모든 입양인들이 던지는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버려졌나?", "어떤 과정으로 입양됐나?"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입양과 관계된 국내의 여러 기관들과 미혼모 시설들을 방문하고 자료를 수집해 나갔다. 그리고 또 다른 신작 <우리의 입양(Nos Adoptions)>을 이번 11월에 발표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이 함께 부둥켜안고 뿌리를 내린 모습이 표지에서부터 등장한다. 해당 작품은 융과 그의 아내 레티씨아 마티(Laëtitia Marty) 씨가 함께 완성한 작품이다. 한국 이름이 김혜경이라는 레티씨아 씨 역시 18개월 무렵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됐다. 136 페이지에 달하는 이번 작품은 여러 명의 목소리가 작품 속에 등장한다. 입양 가정 부모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아이들이 친가족을 찾으려 할 때 발생하는 두려움에 대한 질문과 이해를 돕기도 한다. 두 저자는 입양인 대부분이 오랜 시간 자신의 뿌리에 대해 궁금해하고 고민하며 수시로 질문한다고 했다. 특히 그들이 성인이 돼 가정을 꾸리게 되면 이를 더 갈망하는데, 이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면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확신이 서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두 작가는 작품 속 여러 삽화에 '뿌리(Racine)'를 그려가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를 연결하는 모든 것(Toutce qui nous relie)' 포스터 - 출처: 작가 제공

<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를 연결하는 모든 것(Toutce qui nous relie)' 포스터 - 출처: 작가 제공 >

그래픽 노블 작품에 이어 두 작가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우리를 연결하는 모든 것(Toutce qui nous relie)>을 선보였다. 2020년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당시 딸 릴루(Lilou)가 16세가 되면서 어머니의 나라 한국을 보여줘야 한다는 결심이 섰다. 그들은 함께 한국을 방문해 레티씨아가 입양 과정에서 거쳐간 장소들을 따라가 보기도 하고, 한국의 많은 부분을 경험하며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영화에 담았다. 영화 제작에는 한국의 미루 픽쳐스 김영 대표님이 함께 참여했다. 평소 영화의 상업성보다 소통을 강조하시기로 유명한 김영 대표는 이미 2013년 융의 <피부색깔=꿀색>의 한국 수입 배급사로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이번 신작 <우리를 연결하는 모든 것>은 현재 소규모의 단체 초청으로 영화를 상영하고 있지만, 공식 오프닝은 월드 프리미어가 될 것이라고 융과 레티씨야는 설명했다. 통신원은 제네바 에스파스A 주최로 씨네룩스에서 소규모의 관객들과 함께한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짧게 취재해 보았다.

"저는 20년 전 북아프리카에서 한 아이를 입양한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호기심과 부드러움으로 보았습니다. 다양한 삶의 이야기, 기원에 대한 탐색, 의구심, 연결고리, 뿌리에 대한 개념이 매우 와닿으면서 공감과 함께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우리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 Anick

"영화를 보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많은 입양인들이 겪는 어려움인 신빙성 있는 자료를 확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힘들게 하고 한국의 입양인들을 응원합니다." - Laure

"입양인으로서 영화를 보는 내내 저만 혼자 느끼는 감정은 아니구나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희는 이곳에서는 생김새가 다르기에 이방인으로 또 한국에 가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한국어를 잘 못하기 때문인데 이방인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래도 모국인 한국을 사랑하고 늘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자주 방문하고 있습니다." - Sophie
이번 신간과 함께 발매한 양귀비꽃이 만발한 2024년 달력 표지 - 출처: 작가 제공

< 이번 신간과 함께 발매한 양귀비꽃이 만발한 2024년 달력 표지 - 출처: 작가 제공 >

마지막으로 통신원은 융과 레티씨아를 짧게 인터뷰할 수 있었다.

이번 신간 사인회에서 붉은 양귀비꽃을 직접 그려 주시던데 이유가 있나요?
양귀비꽃은 연약하지만 생명의 탄력성이 어마어마합니다. 꽃씨를 뿌리지 않아도 바람에 흘러 어디선가 홀로 꽃을 피우고, 강한 바람에도 꿋꿋이 살아남는 강인한 탄력성을 상징합니다.

이번 11월 영화와 그래픽 노블을 함께 선보이고 계시는데 동시에 작업을 하셨나요?
사실 <피부색깔= 꿀색>을 준비하면서 저의 입양 과정과 한국의 당시 상황, 혈연을 강조하는 관습, 혼외자에 대한 불편한 시선 등 많은 내용들을 확보했습니다. 미혼모 시설도 방문해 보고 입양기관,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는 센터들과도 많은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18년 <베이비 박스>를 출간하고 한국에서도 올해 번역본을 출간했습니다. 그 이후 약 4년에 걸쳐 <우리의 입양(Nos Adoptions)>을 작업했습니다. 이번에 함께 선보이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는 2년 정도 준비했는데 두 작품은 전혀 연관은 없습니다. 몇 년 전 저희 딸 릴루가 사춘기가 되면서 한국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꼭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고 저희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사춘기 소녀 릴루가 한국을 방문한 후 변화가 있나요?
전에는 사실 한국을 잘 몰라서 누군가 동양인이라고 하면 언짢아하고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10대 아이들처럼 케이팝을 듣는 정도였는데, 한국 여행 후 자신이 한국과 연결됨을 아주 자랑스러워하고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음식과 역사, 문화 등에 아주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 확립에 좋은 영향을 주었어요.
늘 든든한 지원군인 '브누아'와 '융' - 출처: 작가 제공1971년 벨기에 입양 당시 함께했던 친구들 - 출처: 작가 제공

< (좌)늘 든든한 지원군인 '브누아'와 '융', (우)1971년 벨기에 입양 당시 함께했던 친구들 - 출처: 작가 제공 >

매번 '입양'이라는 주제가 작품 속에 들어있는데 작품을 하시면서 답을 찾아가시는지 궁금합니다.
입양인 대부분은 인생에서 한 구멍이 비어있는 걸 느낍니다. 마치 퍼즐의 한 조각이 비어있는 것 같은데, "나의 오리진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꼬리를 물고 질문을 하게 합니다. 작업을 하면서 "우리는 입양됐으나 한국이란 나라에 뿌리를 두고 있고 연결돼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로서는 끝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가 있는 행운인 셈이죠.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사실 저희가 한국 정부에 무언가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있다는 존재의 의미를 부각하고 싶습니다. 통계적으로 20여만 명의 입양인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 흔적이 잊히지 않길 바랍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여전히 미혼모들을 좋지 않게 보는 사회적 시선과 함께 생활에도 많은 제약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오래된 관습과 문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이런 불편한 제약들이 조금씩이나마 개선되기를 바라며, 한국의 미혼모들에게도 많은 응원을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현재 프랑스에는 1만 5,000여 명의 입양인들이 있습니다. 반갑게도 주프랑스대한민국대사관에서는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저희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고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입양인들 중에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지 못해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한국에 다가가기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아주 좋은 취지로 입양인들과 한국과의 많은 교류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 작가 제공
- https://www.film-documentaire.fr

통신원 정보

성명 : 박소영[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위스/프리부르 통신원]
약력 : 현) EBS 스위스 글로벌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