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있기 전에는 오로지 TV 앞에 앉아 방영 시간까지 기다려야 원하는 드라마를 1분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외화 시리즈 역시 방영 채널에서 방송되기를 기다려야만 보고 싶은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인터넷뿐만 아니라 다양한 OTT 서비스가 생겨나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 등 휴대용 기기를 통해 언제 어디에서나 동영상을 소비하는 시대가 됐다. 덕분에 좋아하는 드라마를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반복해서 볼 수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는 단연 < 꽃보다 남자 >다. 지금 카자흐스탄의 30대 청년들은 어렸을 때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 꽃보다 남자 >를 보게 됐다고 한다. 당시 그들의 10대 무렵이었던 그들은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전이니 TV 앞에서 방영 시간을 기다려 그 드라마를 봤단다. 이후에는 어릴 적 최애 드라마였던 < 꽃보다 남자 >를 인터넷에서 보고 또 보고, 다시 보기를 몇 번이나 했다고 한다. 지금 이곳의 1020세대는 한국의 여느 청소년, 청년들과 다를 바 없다. 마음에 드는 드라마를 주말에 몰아보기도 하며, 몇 번씩 정주행하기도 한다. 여운이 남는 드라마의 장면과 감동받은 대사를 자주 꺼내보고 싶을 때 책으로 한 장 한 장 넘겨가는 것이야말로 그 감동과 여운을 오래도록 충분히 음미하는 방법 중 하나다. 카자흐스탄의 출판 시장도 젊은 세대의 이러한 마음을 읽었는지 서점 가운데 한국 드라마 관련 도서를 비치했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 태양의 후예 >와 < 도깨비 >는 이곳에서도 뜨거운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선남선녀 주인공들의 모습도 좋았고, 대사도 좋았다며 해당 드라마를 인생 드라마로 꼽는 이들도 있다. 카자흐스탄 서점에서 발견한 도서의 표지를 넘겨 보니 한국처럼 드라마 대본집은 아니다. 마치 소설처럼 내용이 구성돼 있었다. 이외에도 < 김비서가 왜 그럴까 >, < 로맨스는 별책부록 >이 함께 진열돼 있는 모습이었다.
< 현지 서점에 자리 잡은 한국 드라마 도서 - 출처: 통신원 촬영 >
어떤 이는 드라마의 내용이 좋았을 것이고, 어떤 이는 드라마 속 장면들이 좋았으리라. 한편에서는 드라마 < 태양의 후예 >와 < 당신이 잠든 사이에 > 포토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소설은 3,500~4,500텡게(약 1만 원~1만 3,000원) 내외에, 포토북은 7,250텡게(약 2만 1,000원), 1만 250텡게(약 3만 1,000원)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처럼 카자흐스탄 출판 시장이 한국 드라마 관련 도서를 선보인 이유는 관련 도서를 하나의 굿즈로 소장하고 싶은 팬심을 저격하기 위함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위 도서들은 모두 러시아어판이다. 한편 옆쪽에서는 한국 장편소설인 이미예 작가의 <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 >도 찾아볼 수 있었다.
< 러시아어로 번역된 한국 소설 - 출처 : 통신원 촬영 >
드라마의 명대사를 책으로 읽으며 명장면을 떠올리는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드라마 속 생략된 서사가 책에 담겨 있기도 하기에 무삭제 대본집을 구매하는 드라마 애청자도 증가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장르의 도서 출간으로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출판업계의 전략이기도 하겠지만 결국 콘텐츠 질의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높은 영상미와 탄탄한 줄거리를 갖춘 드라마가 인기를 얻을 테고, 그 인기가 관련 도서 판매로도 이어지며 출판 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한국 도서가 러시아어로 번역돼 카자흐스탄 서점에 유통되는 것을 보며 콘텐츠산업뿐만 아니라 출판산업에도 한류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으로 여행을 떠났던 카자흐스탄 젊은 세대가 책이 예뻐 한 권쯤 갖고 싶다며 한국 도서를 구입해오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하지만 한국어로 적힌 글을 이해하지 못해 애써 구매한 책이 그저 소장용에 그치기 일쑤였다. 그런데 현지 서점에서 러시아어로 번역된 한국 관련 도서를 찾아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은 한국 콘텐츠 및 한국 작가에 대한 현지의 관심이 더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다만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도서처럼 고품질의 양장본이 아니라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래도 뉴미디어 홍수 시대에 한국 관련 종이책을 현지 서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은 카자흐스탄 대중이 한국 도서 콘텐츠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라 생각된다.
성명 : 배현숙[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카자흐스탄/아스타나 통신원] 약력 : 카자흐스탄 정부 초청 장학생 석사과정 아스타나 한인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