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나 시내 스나얀 시티 몰의 미니멀리스트 의류 매장 위엔 마르디 메크르디(Mardi Mercredi)라는 간판이 있다. 센트럴 파크 몰에 2024년 문을 연 에이랜드(ALAND), 현재 인도네시아 전국에 매장을 둔 마르헨제이(MARHEN.J), 그리고 2023년 자카르타에 상륙한 MLB 코리아까지. 모두 한국 의류 브랜드다.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 K-푸드, K-뷰티에 이어 이제 인도네시아에는 K-패션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얼마 전 블랙핑크 리사가 라부부(Labubu) 인형과 액세서리를 하고 인스타그램에 등장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라부부의 중국산 괴물 인형이 세계 소녀들의 일상을 점령해 버렸다. 인도네시아도 다르지 않았다.
< 라부부 인형과 블랙핑크 리사 - 출처: 라부부 인스타그램 계정(@labubuofficial) >
블랙핑크 멤버들을 비롯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케이팝 아이돌이 입는 것, 사용하는 물건, 장식품, 가방, 차량, 모자 등이 당장 전 세계에서 유행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미 일상적인 일이다. 로컬 및 글로벌 브랜드를 가릴 것 없이 한국 연예인들 특히 케이팝 아이돌을 홍보대사로 영입하는 것은 그들의 스타파워가 동반하는 충성스러운 열혈 팬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블랙핑크라 해도 동시에 세계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지만 그들의 팬은 거의 무소부재하며 때로는 사뭇 전지전능하기도 하다. 그러니 블랙핑크와 BTS을 기용한 광고 사진들이 자카르타 시내 주요 몰마다 넘쳐나고 얼마 전 인도미(indomie)는 NJZ으로 개명하기 전 뉴진스를 불러와 신제품 '한국라면'의 광고를 찍었다. 당연히 비싼 개런티가 들지만 절대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다. 요즘 인도네시아에서 케이팝 그룹 중 특히 BTS와 세븐틴(SEVENTEEN)이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데 현지 영자 일간지 《The Jakarta Post(자카르타 포스트)》는 이들 팬들을 인터뷰하며 소비패턴을 물었다. 32세의 에이미는 최근 3년간 다섯 개 도시에서 열린 세븐틴의 7개 콘서트에 참석했다. 심지어 그녀는 시상식과 팬미팅에도 티켓을 구매해 찾아갔다. 아이돌에 대한 에이미의 사랑은 그들의 음악에 한정되지 않았다. 세븐틴 멤버 김민규 때문에 옷, 신발, 모자, 화장품 등을 샀고 심지어 서울까지 날아가 민규네 미용실을 찾아가 열혈 팬임을 입증했다. 에이미가 최애 아이돌을 따라 이 같은 구매를 하는 것은 정서적 유대감을 공유한다는 환상 때문이다. "마치 민규와 옷장을 공유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가끔은 민규가 실제로 입었던 오버사이즈 티셔츠를 사 입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32세의 메이타는 BTS 팬덤 아미(ARMY)의 헌신적인 멤버로 그의 인생 목표는 BTS에게 자신의 열렬한 지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BTS 관련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아 BTS가 홍보한 휠라(FILA) 셔츠, 화장품, 심지어 히트곡발매 기념 특별 한정판인 노란색 쌤소나이트 가방까지 구매했다. 최근 자카르타 네오 소호 몰에서 열린 BTS 전시회에서는 멤버 알엠(RM)이 디자인한 캔버스 백을 130만 루피아(약 11만3,500원)에 샀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플라자 스나얀의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매장 디스플레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BTS 정국을 응시하다가 이것저것 구매하게 됐는데 그 결과 메이타의 옷장에는 여러 장의 캘빈 클라인 속옷과 두 개의 셔츠가 들어 있다. 하지만 정작 정국이 광고에서 입고 있는 재킷을 품절돼 구매처를 백방으로 찾는 중이다.
< 자카르타 그랜드 인도네시아 몰 캘빈 클라인 매장 디스플레이, BTS 정국 - 출처: 유튜브 계정(@nonfatnowhipgrande) >
브랜드를 넘어 한국 스타일과 독특한 미적 감각 자체가 케이팝 팬들뿐만 아니라 일반 패션 애호가들에게도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2019년작 <사랑의 불시착>에서 여주인공 손예진의 상징적인 선글라스는 한국의 안경 브랜드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유명인들도 K-패션에서 영감을 받는다. MC 겸 모델이자 배우인 무티아 쁘리타(Mutia Prita)는 10대 시절 케이팝 스타들을 따라 했지만 지금은 한국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우아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예를 들면 <눈물의 여왕> 여주 김지원 배우의 고급스러운 스타일, 한국 배우들의 세련미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2023년 후반부터 2024년 초까지 인도네시아인들이 가장 많이 시청한 넷플릭스 시리즈 <눈물의 여왕> 외에도 <지금 거신 전화는(When the Phone Rings)>, <나의 완벽한 비서(Love Scout)> 같은 한국 드라마 최근작은 세련된 오피스 패션부터 낭만적인 데이트 복장, 편안한 운동복에 이르기까지 현지 시청자에게 다양한 패션 영감을 제공한다. 이 같은 스타일을 따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각종 인스타그램 계정(@kdrama_fashion 등), 틱톡 계정(@kdr.fsh 등)은 정확한 의상 세부 정보와 함께 루피아나 다른 여러 통화로 된 가격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한국 드라마와 패션을 소개하는 소셜미디어 계정 - 출처: 인스타그램 계정(@Kdrama_fasion) >
라디오 DJ이자 MC인 찌아 와르다나(Cia Wardhana)도 "여성 아이돌이 MC 활동을 위해 입는 의상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한국 드라마 속 다양한 이벤트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헤어스타일에도 주목한다."고 밝혔다. 한편 현지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한국 스타일(Korean style)'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현지 리셀러가 판매하는 한국 스타일 의류 및 액세서리에 대한 다양한 상품 리스트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이는 K-패션의 물결이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증거라 하겠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The Jakarta Post》 (2025. 2. 15). K-fashion wave: How Korean style is taking over Jakarta’s wardrobes, https://weekender.thejakartapost.com/life/2025/02/15/k-fashion-wave-how-korean-style-is-taking-over-jakartas-wardrobes.html - 라부부 인스타그램 계정(@labubuofficial), https://www.instagram.com/labubuofficial/ - 유튜브 계정(@nonfatnowhipgrande), https://www.youtube.com/@nonfatnowhipgrande/videos - 인스타그램 계정(@Kdrama_fasion), https://www.instagram.com/kdrama_fashion/
성명 : 배동선[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인도네시아/자카르타 통신원] 약력 : PT. WALALINDO 이사, 작가,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