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4일 주스웨덴 한국문화원 개원 2주년을 맞이해 국립현대무용단이 공연 <정글>을 스톡홀름 오스카극장(Oscarsteatern)에서 선보였다. 이번 공연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이 주관하는 2025 투어링 케이-아츠(Touring K-Arts) 사업 일환으로 개최됐다. 해당 사업은 재외한국문화원(홍보관)과 협력해 한국의 우수 문화예술 프로그램(단체)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를 통해 한국 문화예술의 국제교류를 활성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국립현대무용단과 주스웨덴 한국문화원, 주영 한국문화원, 주스페인 한국문화원이 협력해 운영하는 순회공연으로 스웨덴에서 첫 무대를 올리며 시작을 알렸다. <정글>은 국립현대무용단의 단장 겸 예술감독인 김성용 안무가의 대표작으로 무용수 16명이 참여한 대규모 작품이다. <정글>은 2023년 초연 이후 2024년 서울, 대구, 안동, 부산, 세종 그리고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카자흐스탄, 아랍에미리트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으며 특히 이번 스웨덴 공연은 북유럽 초연이라 더 의미가 깊다.
<정글> 공연은 어두운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이 원을 그리며 걷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 원 안으로 들어가 무용수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동작을 선보였다. 나중에는 전혀 다른 가지각색의 움직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더니, 충돌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위험해 보이면서도 서로의 움직임을 의식하고 리듬을 맞추는 모습이 조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마치 상처 입고, 다치고, 넘어지고, 쉬어가며, 다시 일어나는 일의 연속처럼 보였다.
< '정글' 공연 장면 - 출처: 통신원 촬영 >
다른 동작으로 시작해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한곳을 바라보고 무리를 짓는 모습은 마치 인간 사회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언뜻 보기에 거칠고 혼란스럽지만 그 속의 부드러움과 질서, 조화를 통해 '정글'은 분명 탄생했다. 같은 선율과 박자가 반복되는 음악들이 주를 이뤘는데 대체 무용수들이 어떻게 본인의 움직임과 동선, 음악을 기억하고 움직이는지 경이로웠다. 지금까지 본 공연 중 가장 무용수들의 몸과 움직임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 공연이 끝난 후 인사하는 무용수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로부터 박수가 쏟아졌고 몇몇 관객은 환호하며 휘파람을 불고 기립박수를 치기도 했다. 공연 종료 후 약 30분간 '아티스트 토크'가 진행됐는데 공연 내내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여기서 얻을 수 있었다. <정글>에서는 김성용 단장이 개발한 비정형적 움직임 리서치 방식인 '프로세스 인잇(Process init)'을 통해 무용수 각자의 개성과 그들 간의 상호적 반응을 이용해 움직임을 창조했다고 한다. "무용수 개개인의 신체에 내재한 변화와 확장은 개인의 주체성을 보여주며, 개성을 오롯이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무용수들의 수많은 움직임이 하나의 정글을 표현한 셈이다.
첫 번째 질문은 역시나 <정글>의 안무 창작 방식이었던 '프로세스 인잇'에 대한 것이었다. 김성용 안무가는 "작품에 따로 순서가 있었던 게 아니라 무용수들과 움직임을 리서치하다 보니 '정글'이라는 특정한 장소가 정해졌다. 무용수들이 신체로 그 안에서 반응하고 감각하는 움직임이 생겨날 수 있었고, 예민하고 예측 불가능한 곳인 장소인 정글을 생각해냈다. 그러다 무용수들 각자의 정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무용수들과 함께 새로운 움직임들을 바라보며 함께 정글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을 계속 발견해 나갔다.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이 안에서 살아남고 버틸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노력하며 고비를 넘겨야 하는 '정글'이라는 것이 탄생했다."라고 답했다. 김성용 단장은 더불어 "항상 영감을 무용수들로부터 받는다. 무용수들의 작은 움직임이라도 현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했을 때 그게 영감이 된다. 무용수들이 가진 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고 싶었다. 요리 연구가인 친구가 이탈리아에 여행을 가서 유치원 아이들에게 똑같은 향신료를 먹게 하고 맛을 묘사하게 시켰더니, 다섯 명의 아이 모두 다 단맛이나 쓴맛을 다 다르게 표현했다고 한다. 그 친구는 이게 바로 사람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존중을 가르치는 교육이라고 했다. 무용수들도 다 다르다. 각자의 몸이나 특성에 집중하게 하고 맥락을 만들어 즉흥적인 것을 고정시키며 수정 및 보완했다. 무용수는 프로세서로서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며, 작품이 되는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무용수들에게도 이번 안무 창작 방식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무용수들은 "계속해서 나를 찾아나가는 과정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프로세스 인잇'을 통해 인생의 방향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결과 도출에 익숙했던 상태였고 과정이 중요한 작업을 해본 적 없어 낯설었는데 '프로세스 인잇'을 통해 내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들이 많아지다 보니 어떤 선택을 하든 나를 믿게 됐다. 그래서 그 시간들이 작업에 영향을 준 것보다도 삶에 있어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 어떤 건지를 깨닫게 해줬다."라고 전했다. '작품을 통한 인간 내면의 표현'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더 이어졌다. 김 감독은 "무용수들이 말했듯 안무 창작 과정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가이드를 하기도 하고, 막힌 길로 가면 서로 의논하기도 해야 한다. 그 사이에 많은 결정을 해야 하기에 무용수들이 고민하는 순간이 많다. 어떤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고, 또 어떤 때는 밀어붙이고, 과감하게 수정도 해야 한다. 몸을 움직이는 것에서 작품이 되기까지에는 수많은 과정이 있는데 그걸 연습실에서 계속 해내야 한다. 무용수들에게 스스로를 믿어야 하고,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해 주지 못한단 말을 많이 한다."고 밝혔다. 무용수들은 작업 과정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겠다 혹은 이렇게 보여야겠다고 임한 적은 없었다. 우리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고, 대화도 많이 하니 각자의 역할을 나누기보다는 느끼게 된다. 이 같은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그렇게 보이거나 누군가가 그렇게 보이게 된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유럽 순회공연을 통해 관객들이 어떤 것을 느끼기를 바라냐"는 질문에 김 감독은 "이 작품을 '정글'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우리가 표현한 것은 사회가 될 수도 있고, 관객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떤 것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무대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현상을 바라보며 지금 나와 만나는 곳은 어디인지, 나의 정글은 어떤 정글인지 자신의 내면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답했다. 스웨덴에서 선보인 이번 공연 <정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주관하는 2025 투어링 케이-아츠 사업 일환으로 진행됐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스웨덴을 거쳐 영국, 스페인에서 한국의 현대무용을 알리기 위해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국립현대무용단 홈페이지, https://www.kncdc.kr/ko/performance/detail?boardMasterSeq=1&boardSeq=2105&pgm=info
성명 : 오수빈[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웨덴/스톡홀름 통신원] 약력 : 현) 프리랜서 번역가, 통역사, 공공기관 조사연구원 전) 재스웨덴한국학교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