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5일은 6.25 전쟁 발발 75주년이 되는 날이며 2024년은 한국과 필리핀 수교 75주년이었다. 필리핀은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83호(Resolution 83)'에 근거한 요청을 받고 6.25 전쟁에 파병을 결정했다. 지난 1949년 아세안 국가 중 가장 먼저 한국과 정식 수교를 맺은 필리핀은 필리핀한국원정군(Philippine Expenditionary Force to Korea)을 창설해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전투병을 한국에 보냈다. 1950년 9월 19일에 부산항에 도착한 필리핀한국원정군은 동년 10월 1일 비행장 경비 임무를 시작으로 정전협정 이후인 1955년 5월까지 한국에 주둔했다. 이러한 역사를 기념할 뿐만 아니라 도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난 6월 18일 우리금융미래재단은 6·25 전쟁 75주년을 맞아 필리핀 한국전 참전기념관(PEFTOK Korean War Memorial Hall)에서 필리핀 참전용사 후손 30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해당 장학금 수여식에는 한국전 참전용사와 장학생을 비롯해 이상화 주필리핀 대사, 필리핀 군 관계자 등 약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는 최성현 우리웰스뱅크 법인장이 우리금융그룹을 대표해 장학생 30명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했으며 참전용사와 그 후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 필리핀에서 열린 6.25 전쟁 75주년 기념행사 - 출처: 주필리핀대한민국대사관 홈페이지 >
하루 뒤인 12일 자생의료재단 역시 6·25 전쟁 75주년을 맞아 필리핀 한국전 참전기념관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를 비롯한 가족들과 현지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의의료봉사를 실시했다. 신민식 자생의료재단 사회공헌위원장(잠실자생한방병원장)을 비롯한 자생한방병원 소속 한의사와 간호사 등으로 구성된 인력이 의료봉사에 참여했다. 의료진은 참전용사 3명과 그 가족들, 그리고 지역주민 150여 명에게 침·부항 치료 등 다양한 한의치료를 제공했다. 근골격계 통증을 겪는 환자들에게 건강상담 등도 병행해 필리핀 보건의료 상황 개선에 일조했다. 해당 행사에는 한국전 참전용사 두 명이 장학금 수령자들과 참석했다. 지난 6월 6일 70주년 현충일 추념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기억과 평화에 대한 국가적 약속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전쟁 걱정 없는 평화로운 나라와, 모두를 위한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전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더 큰 존경과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해 그들이 자부심, 존엄, 명예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6.25 전쟁에 목숨과 젊음을 바친 노병들과 그 후손들도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강 작가는 스스로에게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했다고 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이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 유용하다. 퇴각하지 않고 율동 전투에서 자리를 지킨 필리핀 군인들, 그들 희생으로 지킨 한국, 그리고 이제 그들이 남긴 유산을 이어받아 미래를 향해 가는 필리핀 젊은이들. 우리 모두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만들었으며, 죽은 자를 통해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됐다.
< 양국 수교 75주년을 기념하여 발간된 'Dayò: Stories of Migration' - 출처: 'Inquirer.net' >
현재 한국에서는 많은 필리핀인들이 일하며 살아가고 있고, 한국 내 필리핀 공동체 구성원 중 약 20%가 한국인과 결혼한 필리핀인들이다. 이처럼 양국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삶에 깊이 스며들며 새로운 가족과 공동체를 만들어왔다. 2024년 12월 1일 주한필리핀대사관은 한-필 수교 75주년을 기념해 『Dayò: Stories of Migration』을 출간했다. 'Dayò'는 타갈로그어로 '외지인' 또는 '방문자'를 뜻하며 낯선 땅에서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사람들이 겪는 여정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단어다. 이 책은 예술,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IT산업, 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살아가는 이민자의 삶을 40편에 달하는 수필과 인터뷰로 담아내고 있다. 6.25 전쟁 참전용사 관련 이야기 역시 책에 실려 양국 관계에 대한 역사적 의미와 깊이를 보여줬다. 주한필리핀대사 마리아 테레사 디존 데 베가(Maria Theresa Dizon-De Vega)는 이 책을 두고 "양국 우정이 지속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6.25 전쟁이 양국 현대적 동맹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면, 그 이후 이어진 이주와 교류는 두 국가의 관계가 시간이 흐를수록 어떻게 성숙하고 풍부해졌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유된 노력이 드러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죽은 자가 살아있는 자에게 주는 의미, 그리고 공유하는 기억이 만들어내는 감사와 존경은, 무역협정이나 조약보다 더 깊은 양국 사이 우정을 증명한다. 이제 우리는 그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풍요롭고 평화로운 내일을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Inquirer.net》 (2025. 4. 10). ‘Dayo’ is a book about finding home between Philippines and Korea, https://globalnation.inquirer.net/272422/dayo-is-a-book-about-finding-home-between-philippines-and-korea - 《The Manila Times》 (2025. 6. 26). Filipino Korean war veterans gather to celebrate peace, https://www.manilatimes.net/2025/06/26/tmt-newswire/filipino-korean-war-veterans-gather-to-celebrate-peace/2138514 - 주필리핀대한민국대사관 홈페이지, https://overseas.mofa.go.kr/ph-ko/index.do
성명 : 조상우[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필리핀/앙헬레스 통신원] 약력 : 필리핀 중부루손 한인회 부회장/미디어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