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아티스트와 다채로운 예술 프로그램… 그 속에 스며든 케이팝의 열기 매년 8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오부더이 섬(Óbudai-sziget)은 음악과 예술, 그리고 자유를 갈망하는 전 세계 청춘들의 발걸음으로 가득 찬다. 유럽 최대의 복합 문화예술 축제 '시겟 페스티벌(Sziget Festival)'이 열리기 때문이다. 축제 기간 동안 이곳의 방문객들은 방문객(Visitor)이 아닌, 섬(Sziget)의 시민(Citizen)이라는 의미의 합성어인 '시티즌(Szitizen)'으로 불린다. 올해 역시 8월 6일부터 11일까지 6일간 국적과 인종을 넘어 수십만 명에 달하는 '시티즌(Szitizen)'이 이곳을 찾았다.
< '시겟 페스티벌(Sziget Festival) 2025' 공연 모습 - 출처: 시겟 페스티벌 페이스북 계정(@SzigetFestival) >
음악의 경계가 사라지는 곳, 시겟의 무대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에서 북쪽으로 약 8km, 다뉴브강 한가운데 자리한 오부더이 섬은 전체 면적이 108만㎡(약 33만 평)에 달한다. 매년 8월 서울의 여의도공원(약 23만㎡)보다 4배 이상 큰 이 거대한 녹지 공간 전체가 '시겟 페스티벌'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올해 역시 그 명성에 걸맞게 포스트 말론(Post Malone), 션 멘데스(Shawn Mendes), 킹스 오브 리언(Kings of Leon) 등 세계 최정상급 아티스트들이 메인 스테이지를 장식했다. 축제가 열리는 6일 동안 록, 팝, 일렉트로닉, 힙합 등 장르를 넘나드는 화려한 라인업은 60여 개에 달하는 각 무대에서 밤낮없이 관객을 맞이했다. 전 세계에서 온 '시티즌(Szitizen)'들은 거대한 잔디밭에 누워 음악을 감상하고, 무대 앞에서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등 정해진 동선 없이 섬 곳곳을 누비며 축제를 즐겼다. 음악을 넘어선 종합 예술의 장 시겟의 진정한 매력은 음악을 넘어서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에 있었다. '자유의 섬'이라는 별칭처럼 축제장 곳곳에서는 수백 개의 비음악 프로그램이 동시에 진행됐다. 영국에서 온 <노핏 스테이트 서커스(NoFit State Circus)>는 <밤부(BAMBOO)>라는 공연으로 아찔한 곡예를 선보였고, 아트 가든(Art Garden)에서는 헝가리 시각예술학교 키슈켑죄(Kisképző; School of Visual Arts)가 운영하는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Everyone Can Draw)' 워크숍이 매일 열려 '시티즌(Szitizen)'들에게 목탄과 수채물감으로 자화상을 직접 그려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축제의 사회적 메시지를 엿볼 수 있는 그린 시겟 센터(Green Sziget Center)의 활동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는 손상된 옷을 직접 수선하고 꾸며보는 '당신의 하루를 수선하세요(Repair Your Day)' 워크숍이 열리는가 하면 축제 마지막 날인 11일에는 생물학 폐기물 전문가인 라슬로 알렉서(Aleksza László)가 참여하는 '퇴비화 확대' 패널 토론이 열려 지속가능성에 대한 담론을 이끌었다. 이처럼 '시티즌(Szitizen)'들은 낮에는 다뉴브 강변에서 수영을 즐기고, 오후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서커스를 관람하는 등 저마다의 시간표에 따라 섬 전체를 자유롭게 유영했다. 그리고 이 다채로운 문화의 향연 속에서 케이팝은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순서로 관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케이팝, '자유의 섬'을 춤추게 하다 이번 '시겟 페스티벌'에서는 처음으로 케이팝 걸그룹 키스오브라이프(KISS OF LIFE)가 공식 라인업에 합류해 큰 호응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축제 기간 매일 오후 3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케이팝 댄스 워크숍까지 열려 세계적 케이팝 열기를 실감케 했다. 통신원은 그 열기의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난 8월 8일 주크박스 스테이지(Jukebox Stage)를 찾았다.
< 주크박스 스테이지(Jukebox Stage)에서 열린 '케이팝 아카데미 X 시겟' 댄스 워크숍 - 출처: 통신원 촬영 >
찌는 듯한 오후의 햇살 아래, 멀리 다른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웅장한 베이스 소리를 배경으로 워크숍 현장에서는 아주 특별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주헝가리한국문화원이 기획한 '케이팝 아카데미 X 시겟' 댄스 워크숍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다양한 국적의 청년들이 현역 케이팝 안무가 김도희 씨의 구령에 맞춰 진지하게 스텝을 밟고 있었다. 서툴지만 열정 가득한 군무가 펼쳐지자 지나가던 '시티즌(Szitizen)'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흥미롭게 지켜보거나 즉석에서 따라 추기 시작했다. 주헝가리한국문화원 관계자는 "현지 관객들의 호응을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어 감사하다. 축제의 문법 속에서 자연스럽게 한국 대중문화를 나눌 수 있었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시겟 페스티벌'의 성공은 단순히 화려한 음악 라인업에만 있지 않았다. 그 본질은 음악, 미술, 연극, 사회 담론 등 인간의 창의적인 활동 모두를 동등한 가치로 존중하고 이를 한 공간에 녹여내는 종합 예술 플랫폼으로서의 정체성에 있다. 케이팝 댄스 워크숍이 세계적인 록 밴드의 공연이나 현대 미술가의 설치 작품과 동등한 자격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시겟은 관객에게 완성된 결과물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대신 직접 참여하고, 배우고, 토론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를 제공했다. 이처럼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을 문화의 주체로 세우는 시겟의 포용적인 철학이야말로 매년 50만 '시티즌(Szitizen)'이 '자유의 섬'을 다시 찾는 이유일 것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시겟 페스티벌 페이스북 계정(@SzigetFestival), https://www.facebook.com/photo/?fbid=1161507942680967&set=a.639052498259850 - 2025년 시겟 페스티벌 홈페이지, https://szigetfestival.com/en/experience
성명 : 유희정[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헝가리/부다페스트 통신원] 약력 : 『한국 영화 속 주변부 여성과 미시 권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