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영화산업이 최근 비슷한 문화권을 바탕으로 글로벌 협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8월 현지에서 큰 화제를 모은 작품으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갈등을 그려낸 팔레스타인 영화 <당신에게 남은 모든 것(All That’s Left of You, 2025)>이 있다. 지난 7월 19일부터 27일까지 열린 제8회 말레이시아 국제영화제 48개국 65편 출품작 중 이 작품은 최고작품상을 수상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말레이어 매체 《Utusan Malaysia(우투산 말레이시아)》는 지난 3일 이 영화를 "감정을 뒤흔드는 작품"이라 보도하며 "이스라엘 방위군에 의해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가족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는 국교가 이슬람인 국가로 전통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실제로 말레이시아 곳곳에 팔레스타인 국기가 게양돼 있으며 KFC, 스타벅스 등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미국 프랜차이즈를 대상으로 한 불매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작품이 최고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말레이시아 사회의 이슬람 문화권 정체성과 연대 의식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 팔레스타인 작품 '당신에게 남은 모든 것(All That’s Left of You)'을 소개한 현지 언론 - 출처: 'Utusan Malaysia' >
제8회 말레이시아 국제영화제에서는 <당신에게 남은 모든 것> 외에도 말레이시아와 유사한 문화·종교적 배경을 지닌 영화들이 현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올해는 1951년 개봉한 고전 명작 <방랑자(Awaara)>, 청춘·성장 영화 <빌리지 락스타 2(Village Rockstars 2, 2024)>를 포함해 총 7편의 인도 영화가 조명 받았다. 2023년 기준 말레이시아 인구의 약 7%를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이 차지하는 특수한 사회·문화적 배경이 있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인도 영화는 말레이시아에서 대중적 인기를 누려왔다. 말레이시아 최대 영자신문 《The Star(더 스타)》는 6일 "인도 영화가 말레이시아 국제영화제의 대미를 장식했다."고 소개하며 "이를 계기로 양국 영화산업 협력의 토대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보도했다.
< 말레이시아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인도 영화를 주목한 현지 언론 - 출처: 'The Star' >
또한 올해는 말레이시아와 중화권 간의 협력 사례가 특히 주목을 받았다. 2023년 기준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은 전체 인구의 약 23%로 말레이계 다음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중화권과의 영화 협업은 사회문화적인 상징성과 산업적 가치를 동시에 지닌다. 대표적으로 말레이시아와 대만은 올해부터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소설가 리 즈 슈(Li Zi Shu, 黎紫書)의 작품 <고별의 연대(The Age of Goodbyes, 告別的年代)>를 장편 영화로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1960년대 후반 말레이시아 도시 이포(Ipoh)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다문화·다언어 사회를 담아내기 위해 말레이시아, 대만, 홍콩 등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이 출연한다. 대만 영화산업 역사상 최초로 중국계 말레이시아 작가의 소설을 장편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또한 말레이시아 영화제작사 스콥 프로덕션(Skop Productions)은 지난 5월 홍콩의 영화제작사 만다린 모션 픽처스(Mandarin Motion Pictures)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영화 공동 제작을 추진하기로 했다. 말레이시아 영화진흥위원회는 이에 대해 "양국 영화 협력을 위한 발판이자 유대감을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라고 평가한 바 있다.
< 대만 영화계의 첫 중국계 말레이시아 소설 원작 영화 제작 소식 - 출처: 대만 교무위원회(OverseasCommunity Affairs Council) >
말레이시아는 인도계, 중국계 등 자국 내 다양한 문화적 배경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등 유사한 문화적 환경을 지닌 인접 국가들과도 활발히 협력하며 교류의 폭을 넓히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언어적 유사성뿐만 아니라 같은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는 등 깊은 문화적·종교적 공감대를 지니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 교류가 활발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2023년 제76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부문 대상을 수상한 공포·미스터리 영화 <호랑이 소녀(TigerStripes)>가 있다. 이 작품은 말레이시아의 아만다 넬 유(Amanda Nell Eu) 감독이 연출을 맡고, 인도네시아 제작사 카완카완 미디어(KawanKawan Media)가 참여해 완성됐다. 또한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공동 제작 영화 <더 폭스 킹(The Fox King)>은 2024년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TIFF) 프리미어(premiere)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말레이시아의 우밍진(Woo Ming Jin)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그린라이트 픽처스(Greenlight Pictures)와 카완카완 미디어(KawanKawan Media) 등 양국 제작사가 공동 제작에 참여했다.
< 인도네시아와 영화 제작을 논의 중이라고 밝힌 말레이시아 영화진흥위원회 - 출처: 'Malay Mail' >
공동 협업한 작품들이 연이어 세계적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말레이시아에서는 영화 협업 논의가 한층 활발해지고 있다. 말레이시아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5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어 영화 및 합작 애니메이션 제작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으며, 지난 7월에는 '2025 아세안 영화 및 TV 정상 회의(ASEAN Film & TV Summit 2025)'를 개최해 아세안 회원국 간 자금, 인재, 지식재산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영화 공동제작 조약 체결과 공동 배급 플랫폼 구축을 제안했다. 말레이시아가 이처럼 유사한 문화권을 중심으로 영화산업 네트워크를 확장하려는 흐름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미 한국 콘텐츠는 말레이시아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영화 분야에서도 협력 수요가 꾸준히 커지고 있다. 한국 영화산업은 높은 완성도를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협력 가능한 문화권이 제한적이고 내수시장이 작다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말레이시아는 한국 영화가 새로운 도약을 모색할 수 있는 전략적 발판으로의 가치를 갖는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문화권부터 인도, 중화권,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문화적·지리적 허브로 말레이시아가 가진 다문화적 특성과 국제 협력 네트워크는 단일 문화권에 뿌리를 둔 한국 영화의 확산을 가속화할 중요한 동력을 제공한다. 따라서 국내 영화계가 말레이시아 영화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내수 한계를 넘어 아시아 및 세계 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The Star》 (2025. 8. 6). Celebrating Indian cinema and its links with Malaysia, https://www.thestar.com.my/metro/metro-news/2025/08/06/celebrating-indian-cinema-and-its-links-with-malaysia#goog_rewarded - 《Malay Mail》 (2025. 8. 13). Malaysia-Indonesia film ‘TheFox King’, starring Dian Sastrowardoyo, heads toToronto film fest, https://www.malaymail.com/news/showbiz/2025/08/13/malaysia-indonesia-film-the-fox-king-starring-dian-sastrowardoyo-heads-to-toronto-film-fest/187377 - 《Malay Mail》 (2025. 5. 17). Finas: Malaysia and Indonesia explore jointMalay-language film collaboration at Cannes' Marchédu Film market, https://www.malaymail.com/news/malaysia/2025/05/17/malaysia-and-indonesia-explore-joint-malay-language-film-collaboration-at-cannes-marche-du-film-market/177114 - 《Malaysiakini》 (2025. 8. 22). How gangster films romanticise lifestyle for Indian Malaysians, https://www.malaysiakini.com/letters/753119 - 《Malay Mail》 (2025. 7. 27). Palestinian film ‘All That’s Left of You’ wins best film at MalaysiaGolden Global Awards, https://www.malaymail.com/news/showbiz/2025/07/27/palestinian-film-all-thats-left-of-you-wins-best-film-at-malaysia-golden-global-awards/185333 - 《Screen Daily》 (2025. 7. 29). Palestine’s ‘All That’s Left of You’ scoops top prize at Malaysia film festival, https://www.screendaily.com/news/palestines-all-thats-left-of-you-scoops-top-prize-at-malaysia-film-festival/5207373.article - 《Utusan Malaysia》 (2025. 8. 3). All That’s Left of You: palingmenikam, menghenyak perasaan, https://www.utusan.com.my/nasional/2025/08/all-thats-left-of-you-paling-menikam-menghenyak-perasaan/ - 대만 교무위원회(OverseasCommunity Affairs Council) 홈페이지, https://www.ocac.gov.tw/통신원 정보
성명 : 홍성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말레이시아/쿠알라룸푸르 통신원] 약력 : USM(Universiti Sains Malaysia) 전략적 인적자원관리(SHRM)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