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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이슈] APEC 연례회의부터 재외동포 간담회까지… 사람과 문화로 연결되는 외교

2025-12-03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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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연례회의가 열렸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가 경제 성장을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다. 1989년 11월 호주 캔버라에서 한국,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세안 6개국(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브루나이)이 참여해 시작됐으며, 1993년 미국 시애틀에서 첫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1991년 중국, 대만, 홍콩, 1993년 멕시코, 파푸아뉴기니, 1994년 칠레 그리고 1998년 러시아, 베트남, 페루가 참여해 현재는 한국을 비롯한 21개국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에서는 연결, 혁신, 번영을 핵심 주제로 아태 지역 협력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디지털 혁신과 AI 협력 촉진, 인구 구조 변화 대응에 대한 공동 목표를 제시하며 회원국 간 구체 협력 방안을 도출했다. 공동선언문에서는 무역·투자 활성화, AI 역량 강화, 고령사회 대응, 식량·에너지 안보 등 글로벌 현안에 대한 협력 의지를 천명했다. 한미 간 관세·투자 협상 타결, 최혜국 대우 확대 및 핵추진 건조 등 괄목할 만한 성과도 기록했다. 민간 부문과의 연계, CEO 서밋 등 다양한 경제인 행사도 성공을 거두며 실용 외교와 글로벌 AI 투자 생태계 조성도 크게 주목받았다.

한국이 주도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은 세 가지 역사적 성과를 이루었다. 첫째, 역사상 최초로 인공지능 협력에 대한 경주선언이 채택됐으며, 미·중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글로벌 AI 협력 협정이 탄생했다. 이는 미·중 기술 경쟁이 심화되는 속에서도 경제 협력이 가능함을 보여준 의미 있는 사건이다. 둘째, 역사상 처음으로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변화 문제에 대한 지도자급 합의가 성사됐다. 이는 인구 감소 문제를 국제적인 의제로 제시한 결과이며 동시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반이 공통으로 직면한 과제임을 공식 인정하게 된 것이다. 셋째, 문화창조산업 역할을 공식 인정한 최초 선언으로 이는 국제 사회가 한류에 대한 경제적·문화적 가치를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연례회의보다 앞선 10월 26일부터 28일까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제47차 아세안(ASEAN) 정상회의가 열렸다. 말레이시아가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개최한 이번 정상회담은 아세안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행사 중 하나였다. 이번 회의에는 아세안 10개 회원국 외에도 한국, 미국, 중국, 일본, 호주, 캐나다, 브라질, 남아프리카 등 30개 국가 및 국제기구에서 3,000명 이상이 함께 했다. 이러한 대규모 참석은 미국과 중국 이익이 충돌하는 동남아시아에서 아세안 각국이 여전히 중요한 협상 대상국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말레이시아 곳곳에 설치된 아세안 정상회의 환영 메시지 말레이시아 곳곳에 설치된 아세안 정상회의 환영 메시지

< 말레이시아 곳곳에 설치된 아세안 정상회의 환영 메시지 - 출처: 통신원 촬영 >

제47차 아세안 정상회의 주제는 '포용성과 지속가능성(Inclusivity and Sustainability)'로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동티모르의 정식 가입이다. 동티모르는 2011년 가입 신청 이래 14년 만에, 그리고 1999년 캄보디아 가입 이후 26년 만에 아세안의 11번째 회원국이 됐다. 동티모르는 1976년부터 1999년까지 인도네시아 점령 하에 약 18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비극적인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99년 주민투표에서 78.5%가 독립을 지지했고, 2002년 마침내 독립했다. 그러나 낮은 경제 발전 수준 등의 이유로 오랫동안 아세안 가입은 지연돼 왔다. 

인도네시아 수기오노 외교부 장관은 "이것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다. 동티모르가 아세안 가입 조건을 이행해야 하고 우리 모두가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일부 아세안 국가들은 낮은 경제 발전 수준인 동티모르 가입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으나 말레이시아는 동티모르 가입을 주도함으로써 중재 외교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단순한 회원국 확대를 넘어 아세안이 추구하는 포용적 성장과 지속가능한 지역 협력의 실현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평가된다.  

두 회담에 앞선 지난 26일 저녁 쿠알라룸푸르에서는 '함께 쓰는 새로운 역사, 진짜 대한민국'이라는 제호 하에 재외동포 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에는 한글학교 교사, 교수, 한인 화가 등 문화예술인, 난민 아동을 위한 비영리 학교, 식품 유통 업체, 한인 수출 지원 기업 등을 운영하는 재외동포 200여 명이 참석했다. 말레이시아에서 공부하는 한인 청소년으로 구성된 KSMY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아리랑>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연주했고, 말레이시아 오디션 프로그램(Big Stage, 2019) 우승자이자 말레이시아 배경의 드라마 <오빠는 강사님(Lecturerku, Oppa!, 2023)> 주연배우 장한별이 을 열창했다. 또한 만찬 음식으로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 할랄(Halal) 스테이크가 제공됐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연례회의, 아세안 정상회의, 재외동포 간담회 이 세 가지 행사에서는 사람과 문화가 국가 간 외교를 어떻게 매개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첫 번째로 APEC 연례회의에서 한국문화 외교 전략이 가장 눈에 띄는 방식으로 작동한 사례는 환영 만찬 공연이었다. 지드래곤은 아시아·태평양지역 지도자들 앞에서 한국문화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줬다. 이는 단순히 여흥을 돋우는 공연이 아니라 한국이 표명한 문화창조산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문화적 영향력을 정치·외교적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전했다.
 

말레이시아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는 지드래곤 공연 영상을 촬영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게시했다. 이는 문화가 국민과 지도자 간 공감대를 형성하고 둘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총리는 31일 "말레이시아 내 많은 케이팝 팬들이 나에게 지드래곤 공연 영상을 공유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공연 영상을 공유한다."라는 글을 남겼다. 총리가 남긴 영상과 댓글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지드래곤의 APEC 연례회의 공연 영상을 게재한 말레이시아 총리에 대한 현지 언론 보도

< 지드래곤의 APEC 연례회의 공연 영상을 게재한 말레이시아 총리에 대한 현지 언론 보도 - 출처: 'Sinar Harian' >

말레이시아 케이팝 팬들은 "정말 맞는 계정인지 확인했나요?", "틀린 계정을 눌렀나요?", "이거 정말 총리님 계정인가요?" 등의 댓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정부 기관이 아닌 총리 개인 계정에 케이팝 공연 영상이 공유되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위 여부가 판명되자 말레이시아 팬들은 열광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댓글은 전부 대문자로 비명을 지르는 감정적 표현들로 채워졌다. "감사합니다, 총리님(PMX)"이라는 표현도 있었고, 농담조로 "총리님이 (지드래곤) 팬클럽을 운영하는 건가요."와 같은 댓글도 있었다. 빅뱅 콘서트를 말레이시아에서 개최해 달라는 요청부터, "총리님, 별도로 지드래곤에게 귀엣말로 말씀해 달라."는 친근하고 장난스러운 부탁, 그리고 "콘서트 표를 사기 위해 더 높은 소득이 필요해요."와 같은 댓글까지 쏟아졌다.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는 지드래곤 공연 영상을 직접 소셜미디어에 공유함으로써 한국의 대중문화가 말레이시아에서 중요한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청년 유권자와 정치 리더를 연결하는 소통 매개체임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로, 아세안 정상회의는 '포용성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원칙에 따라 오랫동안 경제적 이유 등으로 가입이 어려웠던 동티모르를 정식 회원국으로 승인했다. 인도네시아 수기오노 외교부 장관이 동티모르의 아세안 통합을 모두가 지원해야 한다고 발표한 것은 과거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다음 단계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경제적으로 성장한 아세안 국가가 또 다른 회원국을 이끌어주는 연대의 의미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재외동포 간담회는 재외 한인들을 '진짜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포용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행사장에는 대통령 내외에게 꽃다발을 전달한 화동들, 청소년 오케스트라, 각계 인사 등 한국과 말레이시아라는 국경, 남녀노소라는 세대 간 경계를 넘어 다양한 이들이 함께했다. 세대를 초월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아리랑> 연주, 말레이시아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 출신의 한국인 가수의 축하 공연, 말레이시아 이슬람 율법을 존중한 할랄 스테이크는 한국, 말레이시아, 재외동포만의 기호학적 의미로 점철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재외동포들을 직접 만나 격려해 주는 것은 '이역만리 떨어져 있더라도 한민족'이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메시지를 강화한다. 그렇게 재외동포 간담회는 단순한 공식 행사 이상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공동체를 구성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해외에 남은 이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문화창조산업을 국제 의제로 공식 채택하며 단순한 한류 홍보를 넘어서 문화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재정의했다. 전통적 국제관계에서 외교는 정상회담, 양자 협상, 조약 체결 같은 제도적 틀 안에서만 작동했으며 문화는 주로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한 보조적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 문화는 이 같은 경계를 넘어 정치, 경제, 대중을 잇는 실질적 외교 수단으로 부상했다.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문화가 경계 속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고 전통 외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Sinar Harian》 (2025. 11. 1). Anwar 'curi' hati peminat G-Dragon, kongsipertunjukan bintang besar K-Pop di media social, https://www.sinarharian.com.my/article/754949/berita/nasional/anwar-curi-hati-peminat-g-dragon-kongsi-pertunjukan-bintang-besar-k-pop-di-media-sosial 
- 《Astro Awani》 (2025. 11. 1). Anwar 'curi' hati peminat G-Dragon, kongsipertunjukan bintang besar K-Pop di media sosial, https://www.astroawani.com/berita-malaysia/anwar-curi-hati-peminat-gdragon-kongsi-pertunjukan-bintang-besar-kpop-di-media-sosial-545598 
-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2025. 11. 1). President Lee Calls for Unityand Innovation as APEC Leaders Meet in Gyeongju, https://www.apec.org/press/news-releases/2025/president-lee-calls-for-unity-and-innovation-as-apec-leaders-meet-in-gyeongju 
-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 인스타그램 계정(@anwaribrahim_my), https://www.instagram.com/anwaribrahim_my/
-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 페이스북 계정(@anwaribrahimofficial), https://www.facebook.com/anwaribrahimofficial/

통신원 정보

성명 : 홍성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말레이시아/쿠알라룸푸르 통신원]
약력 : USM(Universiti Sains Malaysia) 전략적 인적자원관리(SHRM)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