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라는 참상 속에 우뚝 선 한 여성이 있었다. 1941년 12월, 일본군 침공으로 필리핀이 불길에 휩싸였을 때, 필리핀 레이테(Leyte) 섬 타클로반(Tacloban) 초등학교 교사였던 니에베스 페르난데스(Nieves Fernandez)는 분필 대신 총을 들었다. 그녀는 약 110명에 달하는 유격대를 조직해 200여 명에 달하는 일본군을 사살하면서 '침묵의 암살자(Silent Killer)'라는 전설적인 이명(異名)을 얻었다. 그녀는 태평양 전쟁 동안 필리핀 내 유일한 여성 유격대 지휘관으로 기록되어 있다. 1906년에 태어난 페르난데스는 전쟁 이전 타클로반에서 초등학교 교사이자 자영업자였다. 학생들은 그녀를 '미스 페르난데스(Miss Fernandez)'라 불렀다. 하지만 일본이 필리핀을 점령하면서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일본군 폭정에 타클로반 주민들은 약탈, 강간, 고문이라는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했으며, 학생들을 '위안부'로 끌고 가려는 위협까지 가했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한 페르난데스는 "모든 것을 빼앗겼다. 그들(일본군)은 자신이 원하는 건 모두 앗아갔다(No one could keep anything. They took everything they wanted.)"라고 무력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력감에 빠지는 대신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제자와 이웃이 유린당하는 현실 앞에서 그녀는 더 이상 선생님으로만 남을 수 없었다. 그녀는 지역민들을 모아 무장 저항 조직을 결성하고 스스로 지휘관이 되었다. 사람들은 페르난데스를 '대위(Captain)'로 불렀으며, 당시 가부장적인 필리핀 사회에서 여성이 지휘관이 됐다는 것은 당시 필리핀 사회에서 전례 없는 일이었다. 페르난데스가 이끄는 유격대는 '가스 파이프 갱(Gas Pipe Gang)'으로 불렸다. 이는 그들이 사용한 조악하지만 치명적인 무기 때문이었다. 정규군이 아니었던 그들은 미군 소총 단 세 자루로 시작했지만, 가스관에 화약과 못을 채워 만든 수제 산탄총(Luthang)과 필리핀 전통 단검인 '볼로(Bolo)'로 무장했다. 화력 열세는 탁월한 전술로 극복했다. 타클로반 지리를 완벽히 익힌 페르난데스는 일본군 이동 경로를 예측해 매복 공격을 감행했다. 1942년 12월 첫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후, 2년 반 동안 200명이 넘는 일본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 미군에게 볼로 사용법을 시연 중인 페르난데스 - 출처: '에스콰이어 필리핀(Esquire Philippines)' >
그녀는 단순한 지휘관이 아니었다. 맨발로 소리 없이 정글을 누비며, 검은 옷을 입고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침묵의 암살자'라는 별명답게 일본군에게 은밀히 접근해 볼로 단검으로 순식간에 적을 제압했다. 소리 없는 죽음이 반복되면서 일본군은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게 됐다. 일본군은 그녀를 잡기 위해 당시 돈으로 10,000 페소라는 막대한 현상금을 내걸었지만, 주민들의 절대적인 보호 덕분에 그녀는 끝내 잡히지 않았다. 당시 10,000 페소는 오늘날 수억 원이 넘는 가치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페르난데스 제거가 당시 일본군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음을 시사한다. 1944년 10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에 상륙하면서 미군과 협력 작전을 펼친 페르난데스는 1945년 종전 후 미련 없이 총을 내려놓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시 교사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소박한 인터뷰를 끝으로 그녀는 역사 뒤편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1945년 명예 제대 이후 50년 가까이 공식적인 관심과 기록으로부터 멀어졌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과 온라인 자료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필리핀 학계는 페르난데스를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미군 기록에 따르면 필리핀 남성 유격대는 약 26만 명, 여성은 그 10분의 1인 약 2만 6천 명으로 추산된다. 그 수많은 여성 저항군 중에서도 공개적으로 부대를 지휘하고 실질적인 전과를 올린 지휘관은 페르난데스가 유일하다.


< 1944년 11월 3일 날짜로 미국 신문에 보도된 페르난데스 관련 기사 - 출처: '더 루이스턴 데일리 선(The Lewiston Daily Sun)' >
페르난데스가 보여준 삶은 자연스레 우리 독립운동사를 떠올리게 한다. 제국주의 침략에 무장 투쟁으로 맞섰다는 점에서 '여자 안중근'으로 불리는 남자현 지사나, 광복군에서 정보 수집, 선전 활동, 때로는 직접적인 전투에도 참여했던 수많은 여성 대원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투쟁을 상기시킨다. 이는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 세계적인 저항의 역사에서 여성이 단순히 후방 조력자나 희생자로서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전사(戰士)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증명한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평범한 그녀는 무자비한 일본군 맞서 험준한 정글을 누볐다. 그녀는 단순히 무력을 휘두르는 존재가 아니었다. 유격대 지휘관으로서 그녀는 전략적인 판단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녀는 소중한 가족, 동료 그리고 조국 필리핀의 자유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고, 이 과정에서 평범한 개인이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그녀의 투쟁은 필리핀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으며, 저항 정신을 결집시키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페르난데스처럼 이름 없이 스러져갈 뻔했던 수많은 영웅들이 흘린 피와 땀 위에 세워져 있다. 그녀가 보여준 행동하는 양심과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불굴의 저항 정신을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 인물을 추모하는 것을 넘어선다. 이는 정의롭고 포용적인 역사를 다음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기 위한 현재진행형의 노력이며,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미스 페르난데스'가 보여준 삶은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를 기억하고, 그 역사가 담고 있는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 다시금 깊이 일깨워 주고 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The Lewiston Daily Sun》 (1944. 11. 03). SHOOL-MA'AM LED GUERRILLAS ON LEYTE, https://news.google.com/newspapers?nid=1928&dat=19441103&id=Wp8gAAAAIBAJ&sjid=iWgFAAAAIBAJ&pg=5121,2447312&hl=en - 《Esquire Philippines》 (2020. 09. 15). The Untold Story of 'Miss Fernandez,' the School Teacher Who Killed 200 Japanese in WWII, https://www.esquiremag.ph/long-reads/features/nieves-fernandez-guerilla-wwii-a00293-20200915-lfrm - 《Philippine Daily Mirror》 (2021. 03. 16). Celebrating Women’s Month: 8 Inspiring Filipinas We All Should Know About, https://www.philippinedailymirror.com/celebrating-womens-month-8-inspiring-filipinas-we-all-should-know-about/ - 《Sunstar》 (2024. 10. 22). Heritage advocacy group holds forum on World War II Leyte, https://www.sunstar.com.ph/tacloban/heritage-advocacy-group-holds-forum-on-world-war-ii-leyte - 《POLITIKO》 (2025. 10. 21). Tacloban honors Nieves Fernandez — heroine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https://buly.kr/HSYa7sU - 필리핀 여성위원회(Philippine Commission on Women) 홈페이지, https://buly.kr/DlKfWit
성명 : 조상우[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필리핀/앙헬레스 통신원] 약력 : 필리핀 중부루손 한인회 부회장/미디어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