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같이 사는 지구에는 성탄절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많은 나라들이 있다. 그러한 나라들 가운데에서 필리핀은 매우 독특한 성탄절을 보내고 있는 나라이다. 필리핀 성탄절은 매년 9월에 시작하여, 다음 해 1월 첫째 주현절(Feast day of the Epiphany = Three Kings Day)이 되어야 끝이 난다. 필리핀에서 성탄절은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경제적인 부분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시기이다. 필리핀 성탄절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가 ‘버 먼스(Ber months)’이다. 필리핀에서는 9월에서부터 12월에 이르는 기간을 ‘버 먼스’로 부르고 있다. 이 단어는 9월(September), 10월(October), 11월(November), 그리고 12월(December)이 모두 ‘ber’로 끝나는 데서 유래했다. ‘버 먼스’가 시작되는 9월 1일부터 필리핀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길고 화려한 성탄절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필리핀 성탄절이 유독 긴 이유에 대해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점이 이러한 독특한 문화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보인다. 필리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필리핀이 가운데 78.8%가 가톨릭 신자이다. 또한 2021년 기준 교황청 통계 기록에서도 필리핀은 브라질과 멕시코 다음으로 가톨릭 신자가 많은 국가이기도 하다. 이처럼 강력한 가톨릭 신앙을 배경으로 하는 필리핀에서는 독특하고 다채로운 크리스마스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필리핀의 전통적인 별 모양 크리스마스 장식 ‘파롤(Parol)’, 9일간의 새벽 미사 ‘심방가비(SimbangGabi)’,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저녁 식사의 크리스마스 이브 ‘노체부에나(NocheBuena)’, 12월 31일 새해 전날에 가족들이 모여 새해 기원을 상징하는 음식을 나누는 ‘메디아노체(MediaNoche)’ 그리고 ‘에피파니(Epiphany)’와 같은 전통들은 필리핀인들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전통이기도 하다.

< 중앙에 빛나는 파롤이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 - 출처: 통신원 촬영 >
'파롤’이라 불리는 별 모양 등불은 필리핀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장식물이다. ‘파롤’은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알린 베들레헴(Bethlehem)의 별을 상징한다. 9월의 ‘버 먼스’가 시작되면 필리핀 전역의 가정과 거리에 ‘파롤’이 걸려 온 나라를 환하게 밝힌다. 필리핀어로 저녁 미사(NightMass)를 는 뜻하는 말인 ‘심방가비’도 필리핀 크리스마스 특징을 잘 보여주는 행사 중 하나다. ‘심방가비’는 필리핀식 가톨릭 전통으로, 매년 12월 16일부터 24일까지 9일에 걸쳐 진행된다. ‘심방가비’ 마지막 날은 ‘미사데갈로(MisadeGallo)’라고 하며, 12월 24일에 진행되는 특별한 미사이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성탄절은 단순히 12월 25일에 끝나지 않는다. 12월 31일 자정에 맞이하는 ‘미디아 노체’는 또 다른 성대한 잔치이다. 이어서 동방박사 3인이 예수가 태어난 곳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는 ‘에피파니’, 우리말로 주님 공현 대축일인 1월 6일이 지나야 하며, 그 이후가 필리핀 사람들이 인정하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끝이다. 역사, 문화, 그리고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필리핀 성탄절 기간은 필리핀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필리핀 통계에 따르면 필리핀인들은 성탄절 기간에 사용한 비용 중 45%를 ‘노체 부에나’ 음식 준비에, 그리고 48%를 선물 구매에 사용하고 있으며, 나머지 7%를 크리스마스 관련 장식품에 지출했다. 또한 83%에 달하는 필리핀인들은 가족과 친척에게 주기 위한 성탄절 선물 구매에 지출을 우선시하고 있다.

< 성탄절을 즐기는 필리핀인들 - 출처: 통신원 촬영>
특히 흥미로운 것은 최근 성탄절의 선물을 구매하는 부분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거대한 소비 시장과 같았던 필리핀 성탄절 관련 선물 시장이 최근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인한 한국 상품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요즘 필리핀인들은 성탄절의 선물로 이니스프리(Innisfree), 라네즈(Laneige) 등 한국의 브랜드 화장품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국 화장품은 세련된 포장과 실용성으로 인해 타인에게 선물하기 좋은 상품이 됐으며, 특히 ‘한국 연예인들이 사용하는 화장품’이라는 이미지는 필리핀 소비자들에게 이를 단순한 화장품이 아니라 한국적인 생활 방식 중 하나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성탄절에 한국 음식을 선물하는 것 역시 기간 중 음식을 나누는 필리핀 전통과도 잘 부합된다. 한국 라면, DIY 떡볶이 키트 같은 제품들은 한국 드라마 장면을 직접 재현하고 싶은 필리핀 소비자들 기대에 부합하는 상품이다. 이러한 상품들은 가족과 친구들과 나누기에 재미있으면서도 쉬운 선택지이다. 한국 의류 역시 필리핀 성탄절 시장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아이돌 패션에 영감을 받은 필리핀 소비자들이 이와 유사한 제품을 성탄절 선물로 선택하고 있다. 또한 벤치(BENCH)와 펜숍(PENSHOPPE) 등 필리핀 의류 회사들은 엔하이픈(ENHYPEN), 김수현, 차은우와 라이즈(RIIZE) 등을 자사 모델로 기용하거나, 또는 현재 기용 중에 있다. 필리핀 의류 회사들은 자국에서 인기 많은 한국 아이돌이나 배우 등을 통해 자사 제품을 홍보하고 소비자들의 구매를 촉진하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는 다양한 영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특히 필리핀은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에서 적극적으로 한국 대중문화를 수용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이들이 갖는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은 한국을 찾는 필리핀 관광객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KTO)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을 방문한 필리핀인 수는 2023년 대비 50.7% 증가하여 총 51만 명을 넘어서면서, 아세안 국가 중에서 1위를 기록했다. 올해 2025년 1월부터 10월까지는 이미 50만 명 이상이 한국을 방문했으며, 연말에는 작년보다 더 많은 필리핀인들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파롤’이 베들레헴의 별을 상징하듯이, 한국 스타와 한국 상품들은 이제 필리핀 성탄절을 함께 밝히는 새로운 별이 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 문화적인 현상을 넘어서, 한국 대중문화가 필리핀의 종교, 경제, 가족 문화에 자연스럽게 통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버 먼스'가 계속되는 한, 한국 대중문화는 필리핀 성탄절을 장식하는 문화적이고 경제적인 자산으로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더 스마트 로컬(The Smart Local)》 (2023. 09. 22). 14 Christmas Traditions That Only Filipinos Can Relate To, https://thesmartlocal.ph/filipino-christmas-traditions/ - 《필스타(Philstar)》 (2023. 12. 22). Christmas economics, https://www.philstar.com/business/2023/12/22/2320521/christmas-economics - 《인콰이어러(Inquirer)》 (2024. 12. 17). Pinoys urged to practice responsible spending during Christmas season, https://business.inquirer.net/496955/pinoys-urged-to-practice-responsible-spending-during-christmas-season - 《마케팅-인터렉티브(Marketing-Interactive)》 (2025. 12. 11). Filipino Christmas 2025: How brands are spreading joy, heart, and festive cheer, https://www.marketing-interactive.com/filipino-christmas-2025-how-brands-are-spreading-joy-heart-and-festive-che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