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디지털 코믹스와 스마트 시장
오필정(해외수입만화 로컬라이징 편집디자이너)
웹툰의 전성시대로 불리는 요즘, 미국에서도 디지털 코믹스의 진보가 눈에 띈다. 물론 종이서적의 향수가 아직 남아있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오프라인 대형 서점이 하나둘씩 폐점을 해 왔으니 미국의 서적시장은 이미 디지털 e-book으로 대중화 된지 오래다. 이 변화는 코믹스 업계도 다르지 않다. 토이스토어나 코믹스스토어에서 새로운 볼륨을 찾아서 구매하는 독자보다는 스마트 디바이스로 신작을 접하고, 애장판이 나오면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매하는 순환구조가 대중화 된지 오래다.
미국 코믹스 업계의 변화는 2010년을 전후로 시작되었다. 이들이 스마트 만화 전쟁에 뛰어들었던 초기에는 다양한 회사의 작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유통전문채널 어플리케이션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마블과 DC의 독자적 어플리케이션이 많은 수요를 감당하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전 세계에 서비스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 코믹스 어플리케이션인 [Marvel Comics]를 주요 예시로 하여 미국 디지털 코믹스 시장의 경향과 스타일을 국내와 비교하여 소개해 본다.
*코믹솔로지는 2014년 아마존에 인수된 이후, 아마존 연동의 신간복합유통 채널 성격을 강하게 보여 예시 선정에서 제외하였음.
스마트 코믹스의 진화는 어디까지?
필자가 미국의 디지털 코믹스를 스마트 코믹스라고 지칭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코믹스가 인터넷 기반의 매체로 변신을 하면서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고퀄리티의 코믹스를 볼 수 있다.’라는 모토를 업계관계자들이 내세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코믹스 관계자들은 패드류나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 어디에서 히어로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여 한국의 웹툰 기반으로 성장한 만화와 출발 방향성이 조금 다르다고 보았기에 스마트 코믹스라고 이름을 붙였다.
여하간 현재 스마트 코믹스의 유통 트렌드는 양대 산맥 DC와 마블의 독자운영 채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시행 초기에는 우리나라처럼 여러 회사의 작품을 한곳에 모아놓은 통합 유통 앱서비스(예. 코믹솔로지)로 시작했었고, 지금도 다양한 회사의 앱이 통합유통을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만 존재하는 독특한 산업구조 때문으로 분석된다. 왜냐하면 여기는 저작권을 회사가 독점하다시피 보유하고 있으며, DC와 마블은 이미 최소 50년 이상, 수십만 편 이상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복합유통채널보단 독자적인 서비스가 수익구조상 이득이기 때문이다. 물론, 독자들은 한 마켓에서 여러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이 편하기에 다소 아쉽다는 반응이 있다. 하지만 마블 코믹스 앱만 보아도 10,000편 이상의 시리즈를 언제든지 볼 수 있기에 독자 편의성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평이다. 아울러 국내 독자들은 예전보다 더 실시간으로 신간을 접할 수 있기에 하나의 뉴스채널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코믹스를 골라보기 좋은 직관적인 UI는 국내 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어플마다 디자인 차이가 있지만, 단순하며 사용자의 이해가 쉽다는 것이 공통적인 평가이다. 특히, 마치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것 같은 콘셉트를 추구하는 것은 미국 서적 어플의 특징으로 보인다. 단지 조금 수고스러운 점이 있다면, 국내 만화에는 없는 시리즈제, 볼륨제의 규칙을 사전에 숙지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마트 코믹스의 가장 큰 장점은 고해상도 퀼리티와 구동성을 꼽을 수 있다. 원본파일 해상도가 2K이상으로 예측되는 놀라운 이미지 소스, 그리고 말풍선과 문자의 벡터 이미지 구성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일반 독자나 업계 관계자들은 어마무시한 해상도가 휴대용 디바이스에서 부드럽게 구동되는 것을 보며 감탄을 할 정도이다. 또한, 독자가 실제 만화책을 자유자제로 보듯 시각적인 자유도를 충분히 반영하였다. 전문가들은 이 부분을 국내에서도 꼭 주목해야 될 부분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아이폰6+제품으로 시연한 마블의 원고 일부. 왼쪽 한 페이지 전체화면과 오른쪽 최대 확대한 장면 비교>
또 다른 시각에서는 이런 스마트 코믹스의 해상도 구현이 코믹스 기반 OSMU를 고려한 정책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한 예로, 영상업계 관계자는 마블의 스마트어플 코믹스소스의 일부 컷을 잘라다 바로 광고나 TV영상을 제작해도 충분한 구성과 포맷을 가지고 있다며 감탄하였다.
물론 국내 웹툰 시장도 고화질서비스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시작한지 얼마 안 된데다가, 고화질이 나온 배경도 모니터 해상도를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편이기 때문에 스마트 코믹스와 비교하긴 무리가 있다. 그러나 국내 웹툰도 다양한 분야에서 수익창출을 하고 해외수출이 되고 있는데 지금의 환경이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 수 있을까? 이미 제작된 작품데이터들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제작될 작품의 포맷과 서비스 퀼리티 규격이 어떻게 기획되어 야 될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마블의 한 달 구독권 정책 페이지. 간혹 이벤트성으로 한 달 이용권을 0.99달러에 판매하기도 함>
또 다른 강점은 스마트 코믹스의 무지막지한 가격정책이다. 모든 판매채널의 가격정책을 비교하긴 다소 무리가 있어 단적으로 마블코믹스의 가격정책을 보겠다. 일단 1회당 구매 가격은 2천원 내외로 국내 유료웹툰에 비하면 꽤 비싼 편이다. 하지만 정기 구독권으로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마블의 1달 구독권 가격은 월 9.99달러(약 15,000원 이하)의 가격으로 6개월 이내의 최신작을 제외하곤 모든 코믹스를 볼 수 있다.(출시 6개월이 지나면 자동으로 구독권 이용자가 볼 수 있게 옵션이 변경됨) 더욱 놀라운 것은 일 년짜리 구독권인데 연간 69달러(약 75,000원)로 모든 책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밖에도 99달러 프리미엄 연간회원권은 신간, 특별판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특별한 혜택까지 주어진다. 결론적으로 1권을 개별로 결제할 때는 가격적 메리트가 떨어지지만, 구독권으로 가면 해외이용자들도 혹할만한 조건인 것이다. 이런 메리트 때문인지 국내 독자들 사이에선 원서를 읽을 수 있다면 차라리 정기 구독권을 결제하라는 조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시적이었던 글로벌 서비스. 하지만,
사실 마블은 글로벌서비스를 지원하지 않은지 2년이 넘었다. 그러나 한시적인 기간에 애플스토어 한정이었지만 다양한 언어를 지원했던 스마트코믹스는 전 세계 코믹스팬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마블은 ‘마블 글로벌 코믹스’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앱을 운영했다. 메뉴언어지원은 물론 내부 대사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서비스였다고 당시 이용자들은 입을 모은다.(번역 수준은 100 매끄럽지 않지만 읽는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 물론 마블의 메인앱 보다 신간 업데이트가 상대적으로 느리거나 번역이 지원되는 권수의 한계가 있긴 했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코믹스는 대부분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서비스가 가능했던 것은 위에서 언급했듯 벡터기반의 원고 구성이 실시간 글로벌 서비스를 가능케 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2014년 마블 글로벌 코믹스 한국어 장면, 책 구매 메뉴와 소개 예시>
<한중일, 유럽, 중동지역 등 굉장히 포괄적인 언어가 지원되었음을 알 수 있음>
<엑스맨 한국어버전 원고 장면 일부. 대사는 물론 효과음에도 번역이 붙어 있음>
하지만 현재 마블은 마블코믹스 통합 앱과 언리미티드 앱 두 종류만 운영하고 있다. 2014년 중반기 이후로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글로벌 서비스는 아직도 왜 중지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들이 글로벌 서비스가 가능한 저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언제든지 세계 만화시장에 완벽한 현지화 서비스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금은 디지털 코믹스 시장이 영어로만 서비스되고 있다. 그렇기에 국내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글로벌서비스 저력을 갖추고 있는 거대공룡들의 시스템을 충분히 경계하고 대비를 세워야 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국내에만 있는 대여시스템이나 단기수익구조에 치중되어 있는 가격정책은 장기적으로 우리의 약점이 될 수 있기에 이 점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우리 웹툰이 어떻게 하면 국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