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문화정책/이슈] 출연진 모두가 아시안계 배우로 구성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 북미 박스오피스 1위

2018-08-27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지금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인 배우 이병헌. 그는 할리우드에서 <. 아이. : 전쟁의 서막(G.I. Joe: The Rise of Cobra)>, <. 아이. 2(G.I. Joe: Retaliation)>, <레드: 더 레전드(Red 2)>, <터미네이터 제니시스(Terminator Genisys)> ,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아직 그저 비중 있는 조연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코케시언(Caucasian, 많은 이들이 백인이라고 표현하는 미국의 다수 인종. 백인이라고도 쓸 수 있지만 아시아인들은 황인이라 불리길 원치 않고, 아프리칸 계열의 미국인들 역시 흑인이라고 불리기를 꺼린다. 모두 피부 색깔을 염두에 둔 분류이고 표현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왜 백인이라는 표현에는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리포트에서는 백인이라는 표현 대신, 코케시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남자 배우가 아시안 배우와 함께 출연할 경우, 대개 주연은 코케시언 남자 배우가 차지한다.

 

왜 그럴까? 미국 인구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인종이 바로 코케시언이기 때문이다. 2010년의 인구 통계 결과 코케시언의 비율은 전 인구의 63.7%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히스패닉 계 코케시언(8.7%)을 더한다면 72.4%가 코케시언이다. 이에 비해 아시안 인구는 4.8%에 불과하다. LA와 같은 국제 도시에서는 한국 및 중국계 미국인을 흔히 볼 수 있지만, 미국 전체에서의 비율로 따지자면 여전히 소수민족이다미국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코케시언들은 그들과 비슷한 외모를 지니고 비슷한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이 출연하는 영화를 선호한다. 여기에 아주 미묘한 심리적 요소를 더하자면, 적어도 남자 주인공은 코케시언이어야 하고, 여자 주인공은 다른 인종이어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아무도 공개적으로 발언하진 않지만, 뉴스 기사의 행간을 파악해보면, 또 현지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눠보면 21세기 미국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인종 사이에는 분명 역학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코케시언이 아예 나오지 않는, 출연진 전부가 아시안인 영화가 지난주 미국 박스오피스 흥행 성적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화제의 영화는 워너 브라더즈(Warner Bros.)가 배급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Crazy Rich Asians)>. 지난주 개봉된 이 영화의 주말 박스오피스 흥행수익은 무려 2,651만 달러에 달한다. 실제 영화 상영 시작은 수요일이었으니까 주중 박스오피스 수익까지 합한다면 34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집계된다. 영화 제작비가 3000만 달러였으니 개봉 첫 주에 제작비를 뽑고도 남았다는 얘기가 된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스틸 출처 : Warner Bros.>

 

싱가포르 출신 작가 케빈 콴(Kevin Kwan)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텝업 2, 3(Step Up 2 & 3><. 아이. 2(G.I. Joe: Retaliation)>, <나우유씨미 2(Now You See Me 2)>을 연출했던 존 추(Jon M. Chu)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아시아계 배우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영어로 대사를 한다. 이처럼 등장인물이 모두 아시아계 배우들이면서 영어로 제작된 영화는 25년 전인 1993, 개봉됐던 <조이럭클럽(The Joy Luck Club)> 이후 처음이다. 출연진은 콘스탄스 우(Constance Wu , 출연작 Fresh Off the Boat ), 오콰피나(Awkwafina, 출연작 Ocean’s 8), 미셸 여(Michelle Yeoh, 출연작 Star Trek: Discovery), 젬마 챈(Gemma Chan) 등으로 이미 할리웃 영화에 데뷔하고 얼굴이 알려진 이들이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홍콩 영화, <예스마담>에 출연한 바 있는, 미셸 여(Michelle Yeo, 양자경)는 한인들에게도 매우 눈에 익은 배우일 것이다.

 

사실 아시아계 배우들이 나오는 데다가 뻔하고 뻔한 연애, 가족, 결혼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엮어나가면 상당히 고리타분할 수 있는데 영화 비평가들은 이 영화에 대해 93%의 만족도를 표현했다. 7,543명의 네티즌들도 10점 만점에 7.7점을 메겼다. 이 영화가 이렇게 성공한 데는 어마어마한 홍보가 한 몫을 차지한다. 약 한 달 전부터 LA의 길거리와 벽면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광고 포스터가 도배되다시피 했었다. 뿐만아니라 빌보드 광고, 온라인 광고 등, 엄청난 홍보전이 있었다. <스타워즈(Star Wars)> 개봉 전과 비교해봐도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여기저기에 노출이 됐다. 특히 한인타운에서 가까운 LA의 명소인 그로브(The Grove)의 주차장 입구에는 대형 간판을 붙여 놓아 오가는 안젤리노의 시선을 끌었다.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포스터를 보았더니 반복 학습의 결과인지, 처음엔 그렇게도 촌스러워 보이던 영화가, 그래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 영화가, 도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이처럼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나 검색하도록 만들고, ‘그래, 한 번 가보자.’라고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

 

통신원은 LA 한인타운에서 가까운 퍼시픽 그로브 극장(Pacific's The Grove Stadium)에서 영화를 감상했다. 객석은 거의 꽉 차 있었고 아시아계 미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박장대소를 하는가 하면, 한숨을 내쉬기도 했고, 훌쩍거리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영화가 끝난 후, 여자친구와 함께 극장을 찾은 코케시언 관객 한 명에게 영화를 본 느낌에 대해 물었다.

 


명소 그로브 쇼핑몰의 주차장 한쪽 면을 도배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포스터 - 출처: 통신원 촬영>

 


<그로브 쇼핑몰 곳곳에 펄럭이고 있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포스터 출처 : 통신원 촬영>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려 하는데이번 주말에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는 이것밖에 없어서 보러왔어요사실이제껏 아시안들만 출연하는 영화는 제가 보기에는 웃음을 유도하는 부분도 약하고 스토리 전개 속도도 지나치게 느리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아시안 배우가 아시안들의 엑센트에 대해 농담을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그 장면에서 무릎을 내려치며 한참을 웃었답니다그 후에는 영화에 대해 비판적인 마음을 내려놓으면서 스토리 속으로 들어가 영화를 제대로 보게 되었습니다생각보다 훨씬 즐길 만한 영화였어요

  마이클 브렌실버(Michael Brensilver, 스튜디오 시티 거주)

 

하지만 모두가 이처럼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가 그다지 다가오는 게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냥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죠, .”라 표현하는 관객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래의 인터뷰 내용이 보여주듯 중국계 미국인들에게는 확실히 감성에 호소하는 바가 많았던 것 같다.

 

믿지 못할 만큼 재미있고 감동도 있었어요그냥 심플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가 가미된 드라마였다고 생각해요우리의 음악과 음식그리고 저희 방식의 액센트를 할리우드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일단 감격입니다제 생각에 아시아계 미국인이 아니라면 이 영화의 묘미를 완전하게 즐길 수 없을 것 같아요. 

-브랜든 추이(Brandon Chui, LA 거주)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할리우드에서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흥행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아시아계인 우리들에게도 희망을 준다. 지난 몇 년간 할리우드의 개봉작들은 로맨틱 코미디 또는 로맨틱 드라마를 내팽겨치고,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슈퍼 히어로(Super Hero)의 이야기에 지나치게 편중되었던 경향이 있었다. 도박과도 같은 영화 흥행에 있어 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의 성공은 보장할 수가 없지만 현란한 액션과 컴퓨터 그래픽이 가미된 액션 영화는 거의 흥행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할리우드는 점점 더 슈퍼 히어로의 이야기만을 양산해냈던 것이다. 그 결과,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나 드라마는 넷플릭스(Net Netflix)나 홀마크 채널(Hallmark Channel)의 전유물처럼 여겨져왔다. 하지만 극장에서 만난 관객의 발언은 대대적 홍보의 효과를 반증한다. 

 

저는 로맨틱 코미디는 극장에서 보지 않아요극장 상영 다 끝나고 난 뒤집에서 넷플릭스로 봐도 충분하다는 생각 때문이죠그런데 거리거리마다 이 영화의 포스터가 펄럭이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꾸었죠도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이렇게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나확인하고 싶어졌어요.

-네이튼 우델슨(Nathan Udelson)

 

지난 수년간 별 관객을 끌지 못했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가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것은 정말 오래간만의 일이다. 이 영화의 성공은 얼마나 영화 관객들이 이렇게 훈훈한 인류 보편의 이야기를 기다려왔는지를 증명해준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 가운데는 딸과 어머니, 여자친구들끼리 온 이들도 제법 있었다.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동성 친구들끼리도 함께 볼 만한 영화는 주인공들이 코케시언이 아니라 할지라도 인류 보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티켓이 팔리는 것이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높은 박스오피스 성적이 아시안 계 미국인들에게 큰 의미를 주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영화를 통해 아시아계 영화인들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데 있다. 워너 브라더즈와 같은 대형 영화 제작 배급사들은 이제 아시안들만 출연하는 영화도 충분히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앞으로 할리우드 영화도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들을 더 많이 캐스팅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것도 어눌한 영어를 구사하며 답답하고 바보스러운, 전형적인 아시아인의 역할(Typical Asian Roles)이 아닌, 미국이라는 다양한 사회를 이루고 있는 당당한 구성원으로서의 아시아인의 역할이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영화의 성공으로 아시아계 대본가와 프로듀서, 감독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할리웃이 극찬하는 한국인 감독과 시나리오가 만나 영어로 영화를 제작하고 대형 스튜디오의 막대한 홍보전이 결합된다면 미국 박스오피스 흥행 1위도 꿈꾸어볼 만한 일이다.

 


<그로브 쇼핑몰 내 퍼시픽 극장. 간판 위 2층 창문마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포스터가 걸려 있다

워너 브라더즈의 대대적인 홍보전이 박스오피스 흥행 1위의 결과를 낳았다. - 출처: 통신원 촬영>

 

이 영화는 사운드트랙도 성공에 만만치 않은 이유가 되고 있다. 영화 첫 장면의 음악은 할리우드 빅밴드 스타일로 시작돼 중국어로 된 노래가 나온다. 이를 들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는 관객도 있었다. 사운드트랙 앨범의 첫 곡인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Waiting for Your Return)>는 중국 재즈 클래식인데 재스민 첸(Jasmin Chen)의 새로운 리메이크 녹음이 아주 멋지다. 또한 중국인 래퍼 바바(Vava)와 니나 왕(Nina Wang)이 부른 <我的新衣 My New Swag> 역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 팬들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중국 노래뿐만 아니라 미국의 팝송도 많이 삽입했다한국 영화감독과 배우들이 영어 버전으로 영화를 제작할 경우, 이미 탄탄한 지지기반을 가진 K-Pop 사운드트랙은 전 세계 K-Pop 팬들과 한국 영화 팬들을 완전히 사로잡을 것이다.


  • 성명 : 박지윤[미국(LA)/LA]
  • 약력 : 현재) 라디오코리아 ‘저녁으로의 초대’ 진행자.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 수료.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요가 지도자.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미주 한국일보 및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