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비 알버트슨(Albi Albertsson), 케이팝 트렌드를 따르는 이들에겐 더 이상 낯선 이름이 아니다. 엑소와 소녀시대, 빅스, 레드벨벳 등 케이팝 그룹을 위해 수많은 히트곡을 써낸 작곡가. 지난해 말에는 성시경의 신곡 '나의 밤 나의 너'의 작곡가로 미디어에 소개되기도 했다. 국내 미디어가 그를 소개할 때 붙이는 수식어는 간단하다. '독일 유명 작곡가 겸 프로듀서', 하지만 그 이상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없다. 많은 이들이 그를 '독일 작곡가'로 소개하지만 그는 독일과 일본의 뿌리를 함께 가지고 있다. 독일에서 태어나서 대부분 독일에서 자랐지만 독일어가 아닌 영어로 말하기를 즐긴다. 독일인, 일본인 그 어느 쪽의 정체성으로도 규정되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자 했다. 음악 작업도 그렇다. 음악은 그 어떤 것으로부터의 영향이나 영감보다는 자신 내면의 무의식에서 나온다. 한국과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 독일에서 수많은 케이팝 곡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저력이기도 하다.
<알비 알버트슨 – 출처 : Albert Gottschewski>
반갑습니다. 알비 알버트슨, 언제부터 음악을 시작했나요? 4살 때부터 음악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10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었고, 14살 때부터 혼자 기타를 배워 연주했어요. 아비투어(대입 시험)가 끝나고 18살, 저 스스로에게 2년을 줬습니다. 내가 음악 분야에서 뭔가를 해 낼 수 있을지 확인하는 시간이요. 그 때부터 작곡을 하기 시작했는데 꽤 빨리해 낼 수 있었죠. 1년 이후에 작곡가로서 일을 시작했어요. 중간에 베를린 국립예술대학(UDK)에서 음향을 전공했는데 6개월 뒤에 그만뒀죠. 학교는 지겨웠어요.
케이팝 곡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독일 베를린에서 BMG라는 음악 퍼블리싱 회사 소속 작곡가로 일하고 있었어요. 2011년인가 2012년쯤이었죠. 그들에 제게 SM 엔터테인먼트를 소개했어요. SM 측에서 베를린에 왔었는데, 케이팝 관련자들을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SM에 송 캠프(Song Camp)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미국이나 유럽권 전 세계 작곡가들을 초청했었고, 저도 그 프로그램에서 함께 했습니다. 제가 만든 음악이 마음에 들었는지 몇 달 후 한국으로 저를 초청했고 처음 SM 가수를 위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처음 만든 케이팝 곡은요? 엑소의 ‘머신’ 입니다.
그 외에 함께 일하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는요? SM, JYP, 젤리피시, CJ, 판타지오 등등 많은 회사와 함께 일했습니다.
한국에서 곡을 요청할 때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한국에서 보통 콘셉트를 줍니다. 어떤 아이디어, 어떤 노래를 원하는지. 그러면 거기에 맞게 음악을 만들어요. 처음에는 영어로 가사를 붙여 완전한 곡을 만들어서 보냅니다. 그들이 곡을 선택하고, 거기에 한국어 가사를 붙입니다.
작사까지 같이해서 보내는 거군요. 한국어로 바뀔 때 의미가 같을 때도 있나요? 완전히 바꿀 때도 있고요, 가끔 그대로 들어가는 부분도 있고 그때그때 달라요.
지금 작업 중인 곡은? 비밀입니다. 나중에 나오면 알게 될 거에요.
직접 만든 케이팝 곡 중에 어떤 노래를 가장 좋아하나요? 제가 만든 모든 노래를 좋아하죠. 음... 특별히 선택해야 한다면... 오, 어렵네요. 먼저 엑소의 ‘머신’, 왜냐하면 처음 만든 곡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빅스의 ‘체인드업’도 좋아해요. 빅스는 저와 많은 작업을 함께 했는데, 빅스를 위해 만든 가장 최근 곡이었죠. 그리고 소녀시대의 ‘파티’도 좋아해요. 왜냐하면 소녀시대니까요(웃음). 아, 티파니가 소녀시대 노래 중 좋아하는 노래가 ‘파티’라고 언급했었어요. 그 이후에는 더욱 좋아하는 노래가 됐죠.
한국 회사와 함께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가끔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예를 들어 독일 사람들은 매우 직접적이죠.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아요. 저는 일본사람들과도 많이 일을 했기 때문에 사실 익숙한 부분이긴 합니다. 일본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죠. 그런데 그 부분을 저는 이해할 수 있어요. 이들이 왜, 어떻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지. 그리고 진짜 의미가 뭔지. 그런데 한국인과의 소통에서는 진짜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어요.
<알비 알버트슨과 빅스. 그는 빅스와 많은 작업을 함께 했다 – 출처 : 알비 알버트슨 제공>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물어봐도 될까요. 독일과 일본 혼혈이라고 들었어요. 독일에서 태어난 건가요? 네. 독일 프라이부르크라는 남쪽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대부분 독일에서 살았고요, 어릴 때 베를린에 이사 와서 계속 여기서 살았어요. 일본에 가끔 가서 짧게 지냈지만 대부분 이곳 베를린에서 살았죠.
독일어를 왜 안 쓰는 거죠? 음.. 글쎄요. 일상에서 독일어를 거의 쓰지 않아요. 일할 때도 늘 영어를 사용하고요. 독일과 일본 두 가지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국민이기보단 저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싶은 거 같아요. 그래서 늘 영어를 사용합니다.
본인의 다문화, 국제적인 배경이 음악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나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2010년 제이팝 분야에서 일하기 전까지 제이팝을 전혀 듣지 않았죠.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노래를 만들었을 때 독일 회사는 노래는 너무 좋은데 적당한 아티스트가 없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일본 음악 회사가 제 음악을 듣고는 제이팝의 미래 같다고 이야기를 했었어요. 놀라웠죠. 전 제이팝을 전혀 들은 적이 없었거든요. 일본 쪽에서 그렇게 들었다는 게 신기했죠. 그리고 일본 레이블에 노래를 보냈고, 일본에서도 반응이 좋았습니다.
신기하네요. 아마도 제가 의식적으로 제이팝을 들은 적은 없지만 살아오면서 간접적으로 접한 문화가 제 속에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게 음악에 표출된 거죠. 무의식의 영역이었다고 생각해요.
일을 시작한 이후에는 따로 제이팝이나 케이팝을 듣나요? 일을 위해서 음악을 듣죠.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안 들어요(웃음). 만약 일을 위해 매일 매일 음악을 듣는다면, 그 외의 시간에는 음악을 듣고 싶지 않을 거에요. 그동안 너무 바빴는데, 요즘은 여유가 생겨서 가끔 듣긴 해요. EDM, 글로벌 팝뮤직을 주로 들어요.
독일, 일본, 한국 음악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이들 사이에 차이점을 느끼나요? 먼저 독일 팝은 한국, 일본과 많이 다르죠. 밴드와 싱어송라이터가 많아요. 음악적으로는 매우 간단하고, 멜로디보단 텍스트(가사)가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 같아요. 케이팝과 제이팝은 비슷한 점이 있어요. 케이팝이 처음에는 제이팝의 영향을 받았으니 자연스러운 결과죠. 지금은 케이팝이 더 트렌디하고 제작의 퀄리티도 훨씬 더 높아요. 제작 수준은 세계적인 클래스라고 생각해요. 이에 반해 제이팝은 좀 보수적이고, 트렌드를 그렇게 따르지는 않는 거 같아요. 대신 제이팝만의 정체성이 매우 강하죠.
음악 작업을 할 때 보통 어디서 영감을 받나요. 제 친구 중 한 명이 언젠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영감은 아마추어를 위한 거라고. 전 그 말이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영감을 받을 필요가 없어요. 음악은 무의식에서 나오는 거라 생각해요. 프로페셔널하게 무언갈 창조하는 직업은 자신의 무의식에 어떻게 다가가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물론 자신의 무의식에 그 어떤 것들이 있어야 하고, 아마 흥미로운 삶을 지니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물론 모든 삶이 다 흥미롭겠지만요. |
알비 알버트슨이 이곳 베를린에서 케이팝 곡을 만들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독일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독일 팝뮤직을 위해 음악 작업을 했지만, 결국 자신의 내면에서 일본 음악과의 접점을 봤다. 그리고 제이팝에서 시작된 그의 작업은, 제이팝 트렌드가 케이팝으로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케이팝으로 확장됐다. 그가 오로지 독일 문화의 정체성만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의 음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그가 오로지 일본 문화의 정체성만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의 음악은 지금 케이팝의 세계적 트렌드와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알비 알버트슨의 내면에 있는 문화의 혼합체가 그를 최고의 케이팝 작곡가 중 하나로 만든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