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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 <라자>를 통해 보는 우리 영화계의 주의할 점은

2020-07-10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동말레이시아 사라왁 최초의 백인 통치자를 소재로 담은 영화 〈라자(Rajah)〉가 개봉을 앞두고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라자〉는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3월 18일부터 말레이시아 정부가 이동제한령(MCO)을 실시하면서 공개가 지연됐다. 이 작품은 할리우드가 말레이시아를 배경으로 제작한 최초의 서사 영화물로 영화의 90% 이상을 사라왁에서 촬영하면서, 제작 초기부터 사라왁 관광청과 말레이시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영화의 배경인 사라왁은 본래 브루나이 영토였지만, 말레이시아 지역 가운데에서는 유일하게 서양인이 왕(라자)이 됐던 지역이기도 하다. 사라왁 최초의 서양인 왕(라자)인 제임스 브룩은 브루나이 술탄을 도와 인근 저항세력을 소탕하면서, 사라왁을 받으면서 라자가 됐다. 제임스 브룩은 1841년부터 1868년 사망하기까지 사라왁을 통치했고, 조카인 찰스 브룩이 1868년부터 1917년, 그리고 그의 아들인 찰스 바이널 브룩이 1917년부터 1941년까지 사라왁을 다스렸다. 이후 2차 세계대전으로 일본이 사라왁을 점령하면서, 브룩 일가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후 영국 보호령이었던 사라왁은 1963년 독립해 같은해 말레이시아 연방에 가입했다.

<할리우드의 말레이시아 첫 서사 영화물 '라자'의 한 장면 – 출처 : '더 보르네오 포스트'>

말레이시아 영화 관계자들은 전반적으로 제임스 브룩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라자〉의 제작을 환영하는 분위기이지만, 한편으로는 할리우드가 갖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이 영화에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하고 있다. 〈라자〉를 통해 세계인을 대상으로 자국 이미지 홍보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동시에 할리우드의 미국 중심적 시각 더 나아가 서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왜곡된 말레이시아 이미지가 영화에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 말레이시아를 배경으로 제작된 할리우드 영화들도 말레이시아를 은연중에 열등하게 묘사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미국의 액션 코미디 영화 〈쥬랜더(Zoolander), 2001〉는 말레이시아에서 국가 지도자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발생했던 것으로 묘사해 말레이시아에서 상영이 금지됐다.

또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한 영화 〈리턴 투 파라다이스(Return to Paradise)〉는 말레이시아 교도소를 실제보다 낙후되게 묘사해 말레이시아인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에 실제하지 않는 공개처형, 죄수를 고문하는 장면 등을 영화에 삽입해 말레이시아가 법치주의 국가가 아닌 것처럼 그렸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영화 〈엔트랩먼트(Entrapment, 1999)〉는 도심에 위치한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빈민가 사이에 있는 것처럼 합성해 당시 총리였던 모하맛 마하티르 총리에게 공개적인 비난을 받았다. 빈민가로 표현된 트윈타워 주변은 실제 쿠알라룸푸르에서 150km 가량 떨어진 도시 믈라카에서 촬영한 주택가이기에 말레이시아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왜곡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영화 '엔트랩먼트'의 한 장면 – 출처 : 'The Valult of Culture'>

말레이시아 뉴스 사이트인 《월드 오브 버즈》는 할리우드가 실제보다 말레이시아를 열등하게 묘사해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지속적인 말레이시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에 대한 이미지는 원시 자연과 오랑우탄,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계는 이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기존의 익숙한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왜곡된 시선은 대중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쳐 또 다른 편견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점에서 말레이시아 언론은 영화 〈라자〉의 제작을 환영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에서 잘못된 사라왁의 이미지가 연출될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이 같은 지적은 앞으로 한국 영화계 더 나아가 한국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도 고민할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세계화라는 단어를 필두로 자본과 상품이 이동하면서 타국과 교류를 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됐다. 한국의 경우 아세안 지역과 영화산업에 관한 심도깊은 논의를 위해 한-아세안영화기구 설립을 추진 중이다. 한국과 아세안 간의 영화 교류가 확장되는 시기인 만큼 상대국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자국에서 제작한 문화상품이 타국에 대해 잘못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에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왜곡되고 잘못된 이미지는 쌍방 교류에 있어 부정적일 수밖에 없고, 한 번 형성된 부정적인 인식은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이처럼 실수로 형성된 왜곡된 인식은 한국 문화산업의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물리적 이동은 어렵더라도 문화적 이동은 온라인망을 통해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온라인이라는 전자 고속도로를 통해 문화는 서로와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 그렇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오해를 막기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할 때이다.
	
※ 참고 자료
《World of Buzz》 (19. 10. 2.) 〈Malaysia Supplies Cheap Labour? 5 Times Hollywood Portrayed Us and Got it All Wrong!〉, https://worldofbuzz.com/malaysia-supplies-cheap-labour-5-times-hollywood-portrayed-us-and-got-it-all-wrong/
《World of Buzz》 (20. 6. 14.) 〈This Penang Drug Film Starring Joaquin Phoenix Was Never Released in Malaysia〉, https://worldofbuzz.com/this-penang-drug-film-starring-joaquin-phoenix-was-never-released-in-malaysia/


통신원 정보

성명 : 홍성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말레이시아/쿠알라룸푸르 통신원]
약력 : 현) Universiti Sains Malaysia 박사과정(Strategic Human Resource Manag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