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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공연문화의 대부, 이광진 씨

2020-09-22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LA 한인들을 하나로 엮어줄 <내 사랑 코리아타운>, 일명 <나성가>의 작사가이자 프로듀서인 이광진 에이콤 대표의 삶은 LA 동포사회의 공연 문화 역사와 일치한다. LA에서 살아온 날들이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날보다 훨씬 길어진 그는 올해로 이민 40년을 훌쩍 넘긴 한인타운 토박이이다. 그는 문화공연기획사 에이콤을 통해 지난 30여 년간 120편 이상의 각종 명품 무대 공연을 문화가 척박한 LA 한인사회에 선보여왔다. 1989년에 문을 연 에이콤의 이광진 대표는 “지난 31년간 해왔던 무대 공연을 죽 세어보니 120여 건이더라고요.”라며 새삼 감회에 찬 표정으로 말한다.

에이콤에서 처음으로 기획하고 공연했던 작품은 연극, <우리 읍내>였다. 손톤 와일더(Thornton Wilder)가 썼던 <아웃 오브 타운(Out Of Town)>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미국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올 만큼 ‘가장 미국적인 연극’이라 평가된다. 이광진 대표는 이를 <우리 읍내>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1989년 당시 극단 활동하는 연극인들과 함께 윌셔 이벨 극장 무대에 올렸다. 이 공연은 당시 18세였던 1.5세대 청소년, 백광흠 군을 돕고자 기획되었다. 1989년의 백광흠 군은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한인 청소년이었는데 갱단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다가 권총을 잘못 쏘아 살인혐의를 뒤집어 쓰고 형무소에 수감됐다. 현장에서 다른 갱단원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백군은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의리를 지키고자 남아 있다가 구속됐다. 구속 수감되는 과정에 그의 부모는 어떻게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광진 씨는 백군의 변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프렌즈 오브 케이 백(Friends of K Baek)’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결성해 백광흠 구명 운동을 펼쳤다.

당시 <우리 읍내>를 공연했던 윌셔 이벨 극장은 총 1,200석 규모인데 3일 동안 3천 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총 1만 달러가 넘는 공연 수익을 올렸다. 이 대표는 1만 달러를 고스란히 백광흠 군의 변호사 기금으로 기부했다. 30년 전의 1만 달러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우리 읍내> 공연 이후, 에이콤은 지난 30년 동안 대한민국의 우수극단들을 미주 지역에 초청하는 공연 유치에 집중했다. 당시 문화공보부에서는 연극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극단에게 미주 지역에서 공연할 수 있는 특혜를 주었다. 덕분에 미주 지역 동포들은 1년에 한 번씩 가만히 앉아서 한국 최고 수준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일반 연예인들에게는 미국 비자가 잘 나오지 않았었는데 문공부에서 보증해주는 극단 단원은 예외였다. 에이콤의 이광진 대표는 미주동포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연극 작품을 비행기 타지 않고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물꼬를 튼 장본인이다. 대한민국 우수극단 미주 초청 공연을 계기로 《MBC》 마당놀이극과 《SBS》 악극의 미주 공연도 유치했다.

이처럼 에이콤 초창기 때에는 대한민국 우수극단을 소개하는 업무를 주로 했었는데 그렇다고 로컬 연극활동을 게을리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당시 활동을 하고 있던 3~4개의 극단을 중심으로 제1회 LA 연극제를 기획했다. 한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연극 전용 극장이 없던 시절이라 아프리칸 아메리칸 커뮤니티에 위치한 에보니 쇼케이스(Ebony Showcase)라는 흑인 전용 극장을 임대해 LA 연극제를 치렀다.


 에보니 쇼케이스가 위치한 곳은 워싱턴 블러버드(Washington Blvd.)와 라브레아 길(La Brea Ave) 인근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 동네 간다고 하면 모두들 살벌한 곳이라며 말리던 지역이었어요. 그런 극장에서 4개 극단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한 달 동안 공연을 했어요. 한인들은 이민 초창기였던지라 노동집약적인 일을 하며 먹고 사느라 바빴지만 시간을 내어 연극을 보러 와줬습니다. 이처럼 에이콤은 타운 내에 로컬 연극을 활성화시키며 연극 붐을 일으키는 데에 일조를 했었습니다.


로컬 연극 활성화 이후 에이콤이 도전한 것은 70 80 콘서트의 유치다.


 제가 좀 나이가 있다 보니 7080 음악을 아주 좋아하고 또 7080 뮤지션들과 개인적인 친분관계도 있어서 7080 뮤지션 초청 공연을 아주 활발하게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한인타운에서 공연 문화가 활성화됐죠. 요즘은 방탄소년단이 국제적인 팬덤을 확보하면서 아이돌 그룹 중심으로 케이팝 문화가 재편성됐는데요. 저는 같은 케이팝이지만 아이돌 그룹의 음악은 감각이 떨어져서 잘 못하겠더라고요. 하지만 타운 내의 7080 콘서트는 거의 다 에이콤에서 진행했었습니다. 이처럼 연극, 콘서트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문화 기획 일을 열심히 했었습니다.


120회 이상의 공연을 기획하면서 어떤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그는 “백광흠 돕기 공연”이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공연 처녀작이기도 했거니와 LA에서 문화 공연 전문 기획사로서 처음 일 다운 일을 벌인 것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단다. 또 한 편의 잊혀지지 않는 연극 공연이 있다. 당시 백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조용한 도시 어바인에서 한인 쌍둥이 자매 살인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언론들은 세계적으로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생각해보세요. 조용한 백인 중심 도시인 어바인에 아시안 여성이 살해사건에 연루된 것입니다. 쌍둥이 동생이 쌍둥이 언니를 살해하고 언니 신분으로 새롭게 태어나려고 했었다는 것이 사건의 개요였습니다. 범인으로 기소된 동생은 살인미수로 법률적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수감돼 종신형을 받았습니다. 백인 남자친구 등 동조자와 함께 일을 저지르려고 했고 복면 노끈이 있었다는 것이 증거로 채택됐었죠. 나중에 동생 얘기를 들어보니 진짜 살인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라 언니를 겁주기 위한 것이었는데 정황상 이게 증거가 된 것이죠.


LA의 한인 신문사 기자가 1달 동안 그녀를 면회 가서 심층취재를 한 후 이광진 대표를 만나 취재 노트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광진 대표. 내가 취재해본 결과 이 사람은 진짜 억울해요. 우리가 구명운동을 해줍시다. 연극의 책임이 세상의 실제 사건을 밝히는 게 아닌가요? 한인 여성이 남의 나라에서 살인 누명을 쓰고 수감 중이에요.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네요. 우리 이 사건을 연극으로 한 번 기획해 봅시다.


그래서 이광진 씨는 연극 <지나>를 기획했다. 당시 수감 중이던 쌍둥이 동생의 이름이 ‘지나 한’ 씨여서 붙인 제목이다. 지금은 사라진 250석 규모의 한국일보 문화센터에서 3주 총 21일간 공연을 마련했다. 연기자는 13명 정도 공개 오디션을 통해 모집했고 주인공 역은 한국에서 영화 <유관순>에도 출연했던 방송인 문지현 씨가 맡았다. 문지현 씨는 TV 드라마 <강남일번지>에도 출연한 바 있었지만 연극 무대는 처음이었다. LA에서 연출자를 찾아 연습했고 공연 10일 전에는 한국에서 초청한 대한민국 최고의 연극배우인 이호재 선생까지 합류했다. 이호재 선생은 쾌히 조건 없이 한국에서부터 날아와 공연에 참여해주었다.

연극 첫날, 기적이 일어났다. 극장 앞에 미 주류사회 미디어들이 모두 중계차를 대동하고 찾아온 것이다. 미국 주류 언론들이 생방송으로 방송을 하며 한인사회에서 이 사건을 연극으로 만든 것을 화제로 삼았던 작품이라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북한에서 탈출해 FBI의 보호를 받으며 미국에서 거주하던 최은희 여사와 무대 인생 50주년 기념 연극 공연을 기획했던 일이다. 최은희 여사가 미국에서 살기 시작한 지 1년째 되던 해가 데뷔 후 무대 인생 50주년을 맞는 해였다. 이광진 씨는 LA에 살고 계신 극작가 장소현 씨에게 <오마미>라는 작품을 의뢰했다. 당시 연출은 <신부일기>, <청춘의 덫> 등 여러 드라마와 극단 연출도 여러 편 했던 이효영 선생에게 부탁했다. 최은희 여사도 흔쾌히 출연해줬다.

윌셔 이벨 극장에서 3일간 공연을 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공연 중 혹시라도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최은희 여사가 연극 인생 50주년 기념 공연을 LA에서 한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화제였다. 그런데 그때만 하더라도 최은희 여사가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던 때였다. 그래서 안전요원을 여럿 배치하며 안전에 박차를 가했었다. 훗날 서울에 나갔을 때 TV 방송을 우연히 봤는데 최은희 여사가 LA 있으면서 자신과 <오마미>를 공연했다는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고 새삼 감회에 젖었었다.

요즘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라 아무런 일도 없다. 사실 얼마 전까지 《KBS》 라디오에서 제작하는 해외동포용 방송 프로그램에서 1년에 한 차례씩 하는 해외 공개방송을 LA에서 하기로 하고 추진 중이었는데, 언제 재개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삶에 활력을 주는 공연들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거리 두기를 지키면서 공연을 하고 있는데 LA에서는 아직 요원하다. 하루빨리 그런 시간이 오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는 31년간 해왔던 에이콤 일을 이어받아 함께 할 수 있는 기획자가 LA에서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동안 공연 일에 있어 후배를 키우지 못했던 것이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그런 뜻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자신의 경험을 전수시키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 LA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광진 씨 – 출처 : 통신원 촬영 >

<이광진 씨의 저서 – 출처 : 이광진 씨 제공>

<‘이광진 씨가 기획한 공연 – 출처 : 이광진 씨 제공>

통신원 정보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약력 : 현) 라디오코리아 ‘저녁으로의 초대’ 진행자.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요가 지도자. 전) 미주 한국일보 및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