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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와 한국의 퓨전 요리 탄생 현장을 가다

2020-12-03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남반구에 위치해 한국과 계절이 정 반대인 칠레 산티아고. 여름이 성큼 다가온 산티아고에는 아침부터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었다. 11월 23일(월) 오전 11시, 산티아고의 로 바르네체아(Lo Barnechea)의 요리학교 꿀리나리(Culinary)에서 퓨전 한식 요리를 주제로 한 한식 경연대회가 열렸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6개월간 자택 의무격리 상태로 모두가 갇혀 있었던 산티아고에 오랜만에 찾아온 오프라인 행사였기에 통신원은 반가운 발걸음으로 경연대회 현장에 방문했다.
한식 경연대회 행사장 전경

< 한식 경연대회 행사장 전경 - 출처 : 통신원 촬영>

경연대회는 요리 경연 온라인 예선에 지원한 사람들 중 20명을 선발하여 진행되었다. 제한시간은 한 시간, 재료들을 꺼내 요리하고 플레이팅까지 완성해야 한다. 대회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 각자 준비한 재료들을 준비대에 올려놓고 시간에 맞추어 분주하게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심사는 맛, 주제와의 연관성, 구성, 창의성, 플레이팅 등을 다섯 명의 요리 전문가들이 채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번 한식 경연을 지켜보면서 통신원이 느낀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일반적으로 요리재료가 주최 측에서 제공되고 그중 참가자들이 재료를 택해서 참여하는 여느 경연과 달리 참가자가 직접 재료를 구매해서 가져왔다는 점이다. 경연에 참가한 사람들의 조리 테이블을 살펴보니 칠레의 현지 식재료와 고추장, 물엿, 참기름 등 한인 마트에서 구매한 한국 식재료들이 테이블 위에 섞여 놓여 있었다. 이 점에 대하여 현장에 참석한 주칠레 대한민국 대사관 장근호 대사와 짧은 인터뷰를 나눌 수 있었다.
경연 참가자들의 요리 테이블

< 경연 참가자들의 요리 테이블. 준비해온 식재료들이 늘어서 있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이번 경연에서 주목해 주었으면 하는 것은 식재료를 일괄적으로 제공하지 않은 점입니다. 대사관에서 비용은 제공하되 경연에 참여하는 모두가 각자 필요한 재료를 직접 사오도록 했어요. 한국 식재료가 필요하면 칠레에 있는 한인 마트에서 장을 보고, 또 필요한 다른 재료들은 칠레 땅에서 자라는 것으로 각자 준비합니다. 이렇게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칠레와 한국 식문화의 교류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각 나라의 역사와 영혼이 깃든 것이 바로 식문화이지요. 이 행사는 단순히 등수를 가리는 요리경연이 아니라, 각 나라의 식재료를 통해 칠레와 한국이 어떻게 교류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만들어진 자리입니다.

칠레 와인이 FTA(자유무역협정) 이후 합리적인 가격으로 한국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 결과 와인이 대중들에게 일반화되어 한국의 다이닝 문화를 완전히 바꿔버린 것처럼, 한 나라의 음식은 단지 재화로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문화를 서서히 변화시킨다는 것이 장근호 대사의 설명이다. 과연 참가자들이 만든 요리는 잡채, 불고기, 김밥 등 한국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요리일 것이라는 통신원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칠레 대표 음식 엠빠나다(Empanada, 만두피에 치즈나 햄 등을 넣어 만든 음식)에 불고기와 양념을 넣어 구운 참가자, 까수엘라(Cazuela, 닭고기의 뼈를 넣고 푹 끓인 냄비음식)에 치즈와 김치를 녹여낸 참가자 등 칠레와 한국이 만나 새로워진 퓨전 메뉴가 가득했다.
참가자들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플레이트들

<참가자들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플레이트들 - 출처 : 통신원 촬영>

다섯 명의 심사위원 앞에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자리한 참가자들은 각자 메뉴를 소개하고 심사위원 시식의 시간을 가졌다. 모두의 심사가 끝난 뒤에는 주칠레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준비한 음식과 와인을 두고 모두 건배를 외치며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 채 와인페어링 행사를 가졌다. 심사가 끝나고 등수가 발표되자 환호와 축하의 박수가 이어졌다. 행사가 끝난 후 1등상을 거머쥔 니콜 미야르(Nicole Millar)와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주칠레 대한민국 대사관 장근호 대사와 1등상 수상자 니콜(좌)

<주칠레 대한민국 대사관 장근호 대사와 1등상 수상자 니콜(좌), 참가자 모두의 단체사진(우)- 출처 : 주칠레 대한민국 대사관 페이스북 페이지(@embajadadecoreaenchile)>

 그녀의 요리명은 닭-소빠이(Dak-sopai)로, 소파이삐야(Sopaipilla, 밀가루와 호박가루로 반죽하여 튀긴 칠레 전통 빵) 안에 닭갈비를 넣어 샌드위치처럼 만든 음식이었다. 평소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아 불고기, 잡채 등 한국음식을 만드는 법을 자신의 SNS에 업로드하는 것을 즐기는 그녀는 한식 경연대회 공고를 보고 '칠레와 한국이 어우러진 나만의 한식'을 만들기 위해 메뉴 연구에 들어갔다고 한다. 칠레의 대표 음식인 소파이삐야 안에 매운 맛을 줄이고 달콤한 맛을 추가한 닭갈비를 넣는다면 매운 맛을 어려워하는 칠레 사람도, 소파이삐야를 모르는 한국 사람도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현장에서는 심사위원만이 시식의 기회를 얻었기에 통신원은 그 맛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녀는 대화 중 통신원의 마음을 읽었는지 흔쾌히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요리를 맛보여줄 것을 약속했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던 산티아고에서 오랜만에 이뤄진 오프라인 행사로, 철저한 방역 지침 아래 진행되었다. 대사관에서는 참가자들이 한국 식문화를 더욱 다양하게 접할 수 있도록 대사관저에 있는 한국 그릇을 전시하고 한국음식과 칠레와인의 페어링 행사를 기획해 더운 날씨에 경연에 참가하느라 지친 참가자들에게 즐거운 자리를 마련해 주어 행사에 멋을 더했다. 칠레에서의 한식이 앞으로도 현지인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 모두 쉽게 접할 수 있는 식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길 바라본다.

전시된 한국 식기들과 와인 페어링 행사

< 전시된 한국 식기들과 와인 페어링 행사 - 출처 : 통신원 촬영>


통신원 정보

성명 : 이희원[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칠레/산티아고 통신원]
약력 : 전) 로엔엔터테인먼트(카카오M) 멜론전략팀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