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여성의 날' 기념 영화 상영회 – 출처 : 통신원 촬영>
스페인 한국문화원에서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영화 <82년생 김지영> 상영회를 개최했다. 코로나19로 좌석을 20석으로 제한했는데, 예매 웹사이트에서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몇 분 후 매진되어 영화를 보고 싶어했던 많은 이들이 예매사이트가 문제가 아닌지 문의하기도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뜨거운 인기에 한국문화원은 8일로만 예정되어 있던 상영을 하루 더 늘려 더 많은 이들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한국을 포함에 일본 등 10여 개 국가에서 번역 출판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 원작 <82년생 김지영>은 2019년 스페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출간 당시 스페인 유력 일간지 《엘 파이스(EL PAíS)》는 “꾸밈없는 직접적인 나레이션이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인생에서 겪었을 법한 이야기들을 하며 수다를 떨고 있는 것 같다”며 “지극히 평범하게 존재하는 ‘폭력적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차별’, ‘세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압박’을 그려내어 공감을 일으킨다”고 평하기도 했다. 스페인은 OECD 국가 중 남녀평등 지수 8위로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여성 장관이 65%로 구성된 페드로 산체스 정권은 우리나라의 여성가족부에 해당하는 평등부를 신설시켰고, 2021년 성폭력에 관한 정의를 개정하고 피해자 지원 및 성범죄 예방을 다각도로 확대하기 위한 제도를 개편했다. 이렇게 젠더의 문제에서 한국보다 더 진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스페인의 관객들은 <82년의 김지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궁금해진다. 한국문화원의 첫 한국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를 처음 접한 뒤 꾸준히 한국 영화를 찾아보는 한국 영화 마니아이자 한국 문화원 행사들을 사랑한다는 에스페란자(53) 씨는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왔지만 그동안 경험으로 미뤄볼 때 한국문화원에서 상영하는 한국 영화는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며 한국 영화와 한국 문화원의 선택에 믿음을 드러냈다. 한국 배우들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에스페란자와 함께 한국 영화를 찾아 본다는 그의 친구 훌리안(52) 씨도 한국 영화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몇몇은 눈물을 닦고 있었다. 에스페란자 씨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몸을 뒤로 돌려 “스페인도 절대 다르지 않다. 몇몇 정도는 자유로울 수는 있지만 스페인 사회에서도 여성들이 흔히 겪는 일”이라며 약간은 흥분한 어조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훌리안 씨도 “좋은 영화”라며 에스페란자의 의견에 동조했다. ‘페미니즘’이란 딱지가 붙어 영화 상영 전부터 논란이 되었던 배경을 설명하자 “스페인 사회에도 지금 정책들이 오히려 남성을 차별한다는 목소리들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트렌스젠더 법 등의 이슈로 페미니즘 안에서도 분열이 생기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보수적이었던 한국에서 지금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라며 “더 나은 사회를 향해 진통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말을 남겼다. 한국 아이돌 그룹 워너스의 팬이라는 21살의 에스더 씨는 이미 원작 소설을 읽어 보았다며, “소설에서는 여성으로 겪는 고충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아 고통스럽게 읽혔는데 영화는 주인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남편과 무뚝뚝하지만 ‘츤데레’같은 모습으로 딸을 위로하는 아버지와 같은 캐릭터들 때문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스페인 마드리드 여성의 날 대규모 집회 - 출처: 통신원 촬영>
영화 관람을 마치고 나온 거리는 여성의 날을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보라색 티셔츠, 마스크, 스카프 등을 한 5만 명이 넘는 이들이 광장에 모여 “모든 날, 모든 이들은 위한 권리”를 외치고 있었다. 이날 집회에는 평등부 및 법무부 장관, 사회노동당(PSOE) 사무처장 및 마드리드 부시장이 참석해 페미니즘 운동에 힘을 실었다. 여당과 정부부처의 중요한 인물들이 집회에 참석하여 “페미니즘의 적은 극우세력과 남성 우월주의자”라며 끝까지 싸우자고 다짐하는 나라, 스페인에서 한국의 <82년생 김지영>의 삶이 낯설지 않다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62년생 엄마’의 삶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길거리로 나선 세계의 여성들에게 <82년생 김지영>의 보편성은 각자 자신이 속한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
성명 : 정누리[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페인/마드리드 통신원] 약력 : 현)마드리드 꼼쁠루텐세 대학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