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타운 한복판을 지나가다가 한국의 1970년대~1980년대를 옮겨놓은 것 같은 간판을 보고 궁금증이 발동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미 6개월 전에 오픈했다는 이곳은 마치 <응답하라 1988> 세트장처럼 노스탤지어가 가득하다. 그 시절 한국인들이 생활하던 삶의 터전의 파편들이 이곳의 벽을 장식하고 있다.
<한인타운에 문을 연 서울분식, 7080 정서가 가득하다 - 출처: 통신원 촬영>
'서울상회'라는 상호 아래에는 당시 편의점에서 취급했던 담배와 복권 사인이 붙어 있고 '가족과 함께 훼미리 아이스크림'이라고 기재된 포스터에는 추억 속의 아이스크림 사진이 줄줄이 보였다.
< 서울분식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현지인 - 출처: 통신원 촬영>
한편 '고려제과'라는 간판 아래 유리창에는 '케이크', '양과자', '크림빵', '단팥빵' 등의 단어가 흰 페인트로 쓰여 있고 그 아래에는 빵 모형들이 장식돼 있다.
< 추억을 일깨우는 간판과 모형 - 출처: 통신원 촬영>
이어 '종로사진관'에는 '백일사진', '증명사진', '가족사진', '결혼기념', '교복사진' 등 당시 사진관에서 취급했던 것들이 적혀 있다. '카메라 대여/수리'라는 글자를 보고서 '맞다. 그때는 카메라를 빌리기도 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휴대폰에 카메라 한 대씩 가지고 다니는 현재와 비교돼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했다. 또 한쪽 옆에는 '회인국수'라는 간판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회인'은 이곳, 서울분식의 대표인 정회인 씨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 추억을 일깨우는 사진관 간판 - 출처: 통신원 촬영>
1979년 개봉 영화인 <수병과 제독>, 1981년 발표됐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외 여러 영화 포스터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벽면을 보면 서울분식이 타깃으로 삼고 있는 시간적 공간이 어디쯤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서울분식에서 취급하고 있는 메뉴로는 부대찌개 라면, 김밥, 우동, 닭강정, 떡볶이, 어묵, 튀김 등이다. 가격은 작은 크기는 5달러로부터 시작해 양이 많은 것도 15달러를 넘지 않는다. 추억을 일깨우는 분위기 속에서 저렴하고, 맛있고, 푸짐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곳에는 한국인 동포는 물론이고 현지인들의 발걸음도 끊이질 않는다.
< 7080 개봉 영화 포스터 - 출처: 통신원 촬영>
식사를 하고 있는 한 현지인은 <응답하라 1988>을 보았다면서 이곳에 오면 시간 여행을 떠나온 느낌이라고 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경복궁 옆 민속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한 ‘추억의 거리’에 가본 적이 있는데, LA에서도 추억의 공간을 보게 되어 기쁘단다. 떡볶이를 후후 불어가며 먹는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이곳을 찾을 만큼 단골손님이라고 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는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기다. '7080'이라는 표현이 불러오는 정서적 울림은 단순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넘어 그 시절이 품고 있던 공동체 문화와 인간적 교류의 가치를 상징한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 한국 사회는 고속 경제 성장과 양극화, 유신 체제와 민주화 운동, 현대적 소비문화의 태동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공동체 문화가 남아 있던 때였다.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옆집과 반찬을 나누어 먹던 시절이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 사람들은 직접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을 나누었다. '정(情)'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생활 방식이자 문화적 특성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적 삶의 방식은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한류를 통해 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한류의 인기는 단순히 케이팝과 K-드라마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특유의 '함께하는 문화', '협력하는 문화'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한국인의 '정(情)'과 '협력 정신'을 가장 인상적인 경험으로 꼽는다. 이러한 공동체 정신을 더욱 확산할 수 있는 문화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의 차전놀이, 줄다리기, 강강술래처럼 팀워크와 협력을 강조하는 놀이 문화는 한류 콘텐츠로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를 관광 상품화하거나 한류 페스티벌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한다면 공동체 문화를 체험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리얼리티형 공동체 체험, 예를 들어 <1박 2일>, <삼시세끼>, <무한도전> 속 협동 미션 같은 포맷을 해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기획해 보면 어떨까. 케이팝, K-드라마, K-영화 등의 대중문화 속에서 한국의 공동체적 가치가 반영된 스토리텔링을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기술 발전과 개인주의가 심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심리적 안정, 신체적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으로 '함께하는 삶'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안하고 있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댄 뷰트너(Dan Buettner)의 『The Blue Zones Kitchen(더 블루존스 키친)』, 수전 핑커(Susan Pinker)의 『The Village Effect(빌리지 이펙트)』 등이 그 예다. 한류가 단순한 콘텐츠 소비를 넘어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협력할 수 있는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을 제안해 본다. 공동체적 가치와 협력하는 삶이야말로 인간의 삶에 가장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점을 인식하고 한류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세계인의 삶에 따뜻한 연결을 만들어가는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문화적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약력 : 『나의 수행일지』 저자, 마인드풀 요가 명상 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