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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이슈]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를 보며 탈춤의 세계화를 꿈꾸다

2025-06-17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지난 5월 6일 LA 아만슨 극장(Ahmanson Theatre)에서 개막된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가 다음 달인 6월 1일까지 공연된다. 이 작품은 얀 마텔(Yann Martel)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로리타 차크라바르티(Lolita Chakrabarti)가 각색을 맡았다. 2019년 6월 영국 셰필드 크루서블 극장(Crucible Theatre in Sheffield)에서 초연된 이후 런던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를 거쳐 현재 미국 전국 투어 중이다. LA 공연 이후에는 캘리포니아 코스타 메사(Costa Mesa), 애리조나주 템피(Tempe), 그린빌(Greenville), 필라델피아(Philadelphia), 샬럿(Charlotte), 댈러스(Dallas), 휴스턴(Houston) 등지로 오는 10월 말까지의 순회공연이 예정돼 있다.
LA 아만슨 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시작 전 무대 모습

 < LA 아만슨 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시작 전 무대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번 아만슨 극장 연극은 시각적 연출과 인형극의 혁신적인 결합으로 관객과 평론가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Los Angeles Times(LA 타임스)》의 찰스 맥널티(Charles McNulty)는 이 작품을 "마법 같고 심오한 연극"이라 평가하며 주인공 파이 역을 맡은 타하 만드비왈라(Taha Mandviwala)의 연기에 대해 "흥미진진하고 감정적으로 깊이 있는 연기"로 묘사했다. 《Los Angeles Times》 외에도 다양한 공연 전문 매체들이 본 작품에 대한 리뷰를 내놓았다. 《ArtsBeatLA(아츠비트LA)》의 테리 모건(Terry Morgan)은 "환상적이며 무대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평가했으며 《BroadwayWorld(브로드웨이월드)》는 "아만슨 극장을 바다 위 생존의 세계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Larchmont Buzz(라치몬트 버즈)》는 "스토리텔링과 시각적 상상력이 훌륭하게 결합된 연극"이라며 "지역 관객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평했고 《LA Dance Chronicle(LA 댄스 크로니클)》은 "생생하고 강렬한 몰입감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며 퍼펫 연출과 배우들의 움직임을 높이 평가했다. 
극장 밖에 마련된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네온 사인

 < 극장 밖에 마련된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네온 사인 - 출처: 통신원 촬영 >

무대 연출은 맥스 웹스터(Max Webster)가, 무대 디자인은 팀 해틀리(Tim Hatley), 영상 및 애니메이션 디자인은 안드제이 굴딩(Andrzej Goulding), 조명 디자인은 팀 루트킨(Tim Lutkin)과 팀 데일링(Tim Deiling), 음향 디자인은 캐롤린 다우닝(Carolyn Downing)이 맡았다. 특히 닉 반스(Nick Barnes)와 핀 콜드웰(Finn Caldwell)이 디자인한 동물 인형들은 '리처드 파커'라는 벵골 호랑이를 비롯해 오랑우탄, 얼룩말, 하이에나 등을 생생하게 표현하며 극 전체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 동물들은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 파이의 생존 여정과 내면의 갈등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는 존재들이다.

통신원은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를 관람하며 영화로도 표현하기 어려웠던 장면들이 연극 무대에서 오히려 더 풍부하게 구현된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동물원을 표현하기 위해 철망 벽을 설치했다가 해체하며 다른 공간으로 전환하는 연출은 무대의 물리적 한계를 창의적으로 돌파한 사례다. 육지에서 바다로 전환될 때에는 여러 명의 인형 조작자들이 손잡이에 물고기 형상을 들고 등장해 파도처럼 흔들리는 움직임을 만들며 시적인 시각 효과를 자아냈다. 파이가 타고 있는 배 역시 다양한 오브제를 조합해 구성되며 무대 위 한 공간에서 다채로운 장소 전환을 자연스럽게 이루어냈다.
아만슨 극장 밖에 마련된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포스터

 < 아만슨 극장 밖에 마련된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포스터 - 출처: 통신원 촬영 >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호랑이, 오랑우탄, 얼룩말, 하이에나 등 동물의 움직임을 표현한 방식이다. 마디마디가 끊어진 유연한 구조의 인형 속에 배우들이 직접 들어가 섬세하고도 역동적인 무브먼트를 구사함으로써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게 했다. '리처드 파커'라는 호랑이 캐릭터만으로도 이 작품은 무대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한국의 전통 예술인 탈춤과도 맞닿아 있다. 탈춤에서는 사자나 호랑이의 춤을 통해 동물의 생동감을 전하고, 탈을 쓴 배우들이 거칠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동작으로 관객과 교감한다. 미국 관객들이 <라이프 오브 파이>의 동물 퍼펫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한국의 탈춤도 이와 유사한 무대적 재해석을 통해 충분히 공감받을 수 있는 시점이 왔음을 실감했다.

탈춤을 현대 무대 언어로 재해석하고 글로벌 관객에게 선보이는 작업은 한국 고유의 미학과 상상력을 동시대적 맥락에서 조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전통의 재현을 넘어 문화 간 상호 이해와 예술적 창조성을 넓히는 창의적 실천이자 전략이다.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는 무대 예술이 지닌 확장성과 상징 표현의 가능성을 극대화한 대표적 사례로 한국의 전통 예술 콘텐츠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의 전통도 이처럼 정제된 재구성과 현대적 감각을 통해 세계 관객과 깊이 있는 소통이 가능한 예술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문화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견인하는 창조적 자산이 될 것이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통신원 정보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약력 : 『나의 수행일지』 저자, 마인드풀 요가 명상 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