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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피플 파워 혁명 기념일'

2025-03-25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1965년부터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69년에 재선에 성공했으나 수많은 인권 탄압과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한편 한국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베니그노 아키노는 22살 나이인 1954년 고향 콘셉시온 시장에 당선됐고 1961년 주지사를 거쳐 1965년에는 35세 나이로 필리핀 최연소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1972년, 1972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권력을 강화하면서 둘 사이는 이전과 달라지게 된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명문가 출신 아키노를 정적으로 여기고 정부 전복 혐의와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체포해 투옥했다.
 

해당 사건 전까지 아키노는 마르코스에 대항할 수 있는 유력 정치인으로 꼽혔으나 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현재 위치를 유지하는 데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감 생활 과정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거듭나면서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전면적으로 맞서는 투사로 변모한다. 그 결과 비폭력적인 반독재 투쟁을 역설하던 아키노는 반마르코스 투쟁의 선봉에 선다. 석방 탄원에 결국 마르코스는 1980년 5월에 아키노를 석방하고 미국행에 합의했다. 3년가량 미국에서 머물던 아키노는 독재정권에서 신음하는 국민을 위해 만류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에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아키노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많은 필리핀 국민들이 반겼다. 1983년 8월 21일 중화항공 비행기에서 내린 아키노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환성이 아닌 총알이었다. 아키노가 계단을 통해 비행기에서 내려온 순간 계단 뒤에 있던 괴한이 뒤로 접근해 총격을 가했고 아키노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암살범은 현장에서 사살돼 배후가 누구인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아키노 암살 배후로는 마르코스 대통령을 비롯해 부인인 이멜다 마르코스, CIA, 필리핀 공산당, 에두아르도 코후앙코 등 많은 이들이 지목됐다. 하지만 마르코스 측근이 독단적으로 아키노를 암살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지배적이다. 
 

1980년 8월 31일 200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모여 조용히 아키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필리핀 언론들은 마르코스 정권이 두려워 장례식 중계를 포기했으나 가톨릭 후원을 받는 베리타스 라디오 방송국만이 유일하게 장례식을 생중계했다. 장례식 이후 수도 마닐라를 비롯한 전국에서 반마르코스 시위가 폭발하듯 발생하기 시작했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언론 역시 마르코스 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유명한 이멜다 마르코스의 사치와 부패 등이 해외 언론에 소개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그대로 필리핀에 유입돼 이를 본 시민들이 분노했다.
 

놀란 마르코스는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당겨 1986년에 치르겠다고 발표했고 해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사람 중에는 암살된 베니그노 아키노 부인인 코라손 아키노도 있었다. 1986년 2월 7일 필리핀 선관위는 마르코스가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발표했지만 개표 조작에 대한 증거를 본 필리핀 국민들은 다시금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르코스는 군을 동원해 이를 진압하려 했으나 군부는 마르코스에게 등을 돌렸다. 결국 마르코스와 이멜다는 하와이로 도망쳤고 코라손 아키노가 필리핀 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마르코스 독재정권은 막을 내렸다. 
 

마르코스 독재정권 종식에 기여한 '피플 파워 혁명(People Power Revolution)'은 제11대 대통령 선거 이후인 1986년 2월 22일부터 25일까지 벌어진 사건을 뜻한다. 피플 파워 혁명은 '에드사 혁명(EDSA Revolution)' 또는 '노란 혁명(Yellow Revolution)'으로도 불리는 민주화 운동으로 필리핀 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민주화 운동을 통해 필리핀 국민들은 독재 치하에서 통제되던 언론 자유를 되찾으며 1973년에는 마르코스가 마음대로 고친 헌법을 수정 헌법으로 교체했다. '피플 파워 혁명'은 한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 민주화 운동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세 중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 출처: 'CNN'

<유세 중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 출처: 'CNN'>

미국으로 도피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지난 1989년 9월 28일에 하와이에서 사망했으나 3,000 켤레가 넘는 구두와 각종 사치품으로 1980년대 외신을 장식했던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는 1991년에 사면을 받고 귀국했다. 이어 1995년 아들과 함께 총선에 출마해 아들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는 상원의원에, 이멜다 자신은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1998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큰 딸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일로코스 노르떼 24대 주지사를 역임했으며 2019년에는 상원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한편 상원의원이던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는 2022년 제17대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됐다. 

36년이 흘러 독재자 아들이 최고 권력자로 돌아온 것에 대해 필리핀에서 여러 분석이 쏟아졌다. 유권자 절반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정권을 경험하지 못한 40대 이하 젊은 세대라는 점과 마르코스 주니어가 이를 이용해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버지 집권기가 고도성장과 안정된 시대인 것처럼 윤색 및 선동하는 전략을 사용하여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았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아버지 재임 시절 발생한 인권 문제와 경제적 실정 등에 대해 부정했다. 그는 취임식에서는 "선친은 독립 후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서 큰 성과를 냈다."라고 밝혔으며 이후 "아버지는 집권이 아니라 정부를 지키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다."라는 말도 남겼다. 

한편 필리핀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냥은 올해로 39주년을 맞은 '피플 파워 혁명 기념일'을 특별 근로일(Special Working Day)로 선언했다. 이에 따라 기념식 참석을 비롯해 각종 행사 참석으로 결근하는 급여를 받을 수 없다. 해당 기념일은 1987년 처음 공휴일로 지정된 이후 2024년까지 8번을 제외하고는 늘 공휴일이었다. 2024년에는 '피플 파워 혁명 기념일'인 25일이 일요일이라는 이유로 하루 전인 24일을 기념일로 선포하기도 했다. 당시 말라카냥은 휴일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변경했다고 밝혔으며 올해는 경제적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피플 파워 혁명 기념일'을 특별 근로일로 선포했음을 덧붙였다. 

하지만 마르코스 주니어 정부는 필리핀 민주주의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날을 의도적으로 훼손해 그 중요성을 축소하려고 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많은 사립학교 특히 마닐라 주요 대학들은 기념일에 수업을 중단함으로써 정부 정책에 반대를 표하고 있다.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내세우는 역사적 수정주의에 맞서 필리핀 가톨릭계는 젊은 세대 다수가 이 역사적 사건의 중요성을 모르거나 무관심하다고 지적하면서 젊은 세대에게 왜곡된 지식을 전파하는 세력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민중 혁명이 상징적인 발자취로만 남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39회 '피플 파워 혁명 기념일'을 축하하는 케손시 조이 벨몬테 시장

<39회 '피플 파워 혁명 기념일'을 축하하는 케손시 조이 벨몬테 시장 - 출처: 'ABS-CBN News'>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올해로 39번째로 맞는 '피플 파워 혁명 기념일'을 위해 여러 단체들이 케손시 기념탑 일대에 모였다. 시장 조이 벨몬테와 필리핀 국가역사위원회는 헌화식을 통해 역사적 사건의 중요성과 함께 이를 잊지 않도록 기념식이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6년 당시 독재자는 물러갔지만 필리핀 내 개혁과 사회 정의라는 목표는 달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문서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며 국민 다수는 권력을 등에 업은 무력 앞에 취약한 상태다. 현재 민주주의는 많은 국가에서 후퇴하고 있으며 특히 필리핀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피플 파워 혁명'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여러 국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운동과 시민참여가 계속돼야만 민주주의가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종종 간과하고 있다. 다양한 계층에 속한 시민들이 나섰기에 독재를 물리칠 수 있었지만 자신이 속한 계층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쟁취한 민주적 가치에 대한 불만이나 실망이 생길 수도 있다. 하루아침에 이룬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것처럼 이러한 가치가 계승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39번째 '피플 파워 혁명 기념일'을 통해 민주적 가치를 잃지 않고 이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소통과 참여하는 필리핀을 기대해 본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The Guardian》 (2022. 5. 4). This article is more than 2 years old ‘Authoritarian nostalgia’: Philippines seems set to return Marcoses to power,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2/may/04/authoritarian-nostalgia-philippines-seem-set-return-marcoses-to-power-ferdinand-marcos-jr
- 《CNN》 (2022. 9. 30). They were tortured under Philippine dictator Ferdinand Marcos Snr. Now they fear their stories are being erased, https://edition.cnn.com/2022/09/29/asia/philippines-martial-law-50-years-marcos-intl-hnk/index.html
- 《Philstar》 (2025. 2. 25). EDSA to celebrate faith aspect of people power, https://www.philstar.com/headlines/2025/02/25/2423971/edsa-celebrate-faith-aspect-people-power
- 《Philstar》 (2025. 2. 25). Lessons from EDSA at 39, https://www.philstar.com/the-freeman/opinion/2025/02/25/2424015/lessons-edsa-39
- 《ABS-CBN News》 (2025. 2. 25). Commemoration of 39th EDSA People Power Anniversary transcends generations, https://www.abs-cbn.com/news/nation/2025/2/25/commemoration-of-39th-people-power-anniversary-transcends-generations-1234

통신원 정보

성명 : 조상우[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필리핀/앙헬레스 통신원]
약력 : 필리핀 중부루손 한인회 부회장/미디어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