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악연(Karma)>이 헝가리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 톱 10에 진입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현지 시간 4월 5일 토요일 7위로 처음 순위권에 등장한 <악연>은 다음 날인 6일 일요일 두 계단 상승한 5위를 기록하며 초반 흥행세를 나타냈다. 이는 앞서 3월 공개된 아이유, 박보검 주연의 대작 <폭싹 속았수다(Ha az élet mandarinnal kínál...)>가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 TV(비영어) 부문 1위에 오르며 세계적인 한국 드라마의 위상을 재확인했음에도 유독 헝가리에서는 상위권 진입에 실패하며 부진했던 결과와는 대조를 이룬다.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고, 가족 중심적 서사와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루는 로맨스 및 드라마 장르가 강세를 보여온 헝가리 시장에서 <폭싹 속았수다>의 저조한 성적은 다소 의외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헝가리의 주요 TV 시리즈 정보 커뮤니티인 《Sorozatjunkie.hu》에서는 해당 드라마의 시청률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이디 '햅지(Hepci)'는 "드라마를 보고 이렇게 설렘을 느낀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모든 면에서 탁월한 작품"이라며 "K-드라마 팬이 아닌 동료들에게도 강력히 추천하고 있다."고 호평했으나 아이디 '스캣(Scat)'은 "그렇게 대단한가? 특별할 것 없어 보다가 중단했다."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아이디 '마지팬 키티(Marzipan Kitty)'는 "<폭싹 속았수다>가 톱 10에 들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포스터 디자인을 지적하고 싶다."며 "다른 나라에서는 어떨지 모르나 헝가리에서는 시선 끌기 어려운 비주얼"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스토리는 매우 좋지만 한국 드라마 입문자에게는 추천하기 어렵다. 전개가 느리고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슬프거나 우울하다. 이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한국 정서에 대한 공감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아이디 '데이비드 33(David 33)'은 흥미로운 비교 지점을 제시했다. 그는 "<감자연구소(The Potato Lab)>는 헝가리어 더빙 없이도 톱 10에 진입했지만 <폭싹 속았수다>는 더빙이 제공됐음에도 실패했다."고 지적하며 "<감자연구소>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차이가 있다. 헝가리의 K-드라마 팬들은 사실주의적 시대극보다는 현대극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 한국 드라마 '악연'의 헝가리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 순위 - 출처: 플릭스패트롤 >
위와 같은 현지 반응을 종합해 볼 때 아이유와 박보검이라는 걸출한 스타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폭싹 속았수다>가 헝가리에서 부진했던 요인은 복합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 첫째, 장르 선호도의 차이다. 그동안 헝가리에서 성공한 한국 드라마를 살펴보면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기생수: 더 그레이>, <중증외상센터>, <약한영웅 Class 1> 등 범죄, 스릴러, 액션 장르가 유독 강세를 보인다. 이러한 장르에서는 대사의 중요성도 물론 있지만 촬영 기법, 편집, 조명 등 시각적 연출을 통해 서사의 긴장감과 매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측면이 강하다. 최근 호응을 얻고 있는 <악연> 역시 범죄, 스릴러 장르라는 점에서 이러한 경향성을 뒷받침한다. 둘째, 역사, 문화적 맥락 의존성 및 번역의 한계다. <폭싹 속았수다>는 한국 현대사의 질곡, 특히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제주도를 배경으로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드라마의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당시 한국의 사회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일정 수준 요구된다. 또한 이 드라마의 백미로 꼽히는 문학적이고 시적인 대사, 특히 제주 방언의 매력을 헝가리어 번역으로 온전히 전달하는 데에는 필연적인 어려움이 따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다수의 전문가는 <폭싹 속았수다>의 세계적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제주 방언 특유의 맛과 한국적 정서를 영어 자막으로 효과적으로 구현해 낸 번역의 완성도를 꼽는다. 전 세계 약 15억 명 이상이 사용하는 영어와 비교되는 약 1,300만 명 수준인 헝가리어 사용자 수를 고려할 때 번역 자원의 투입과 결과물의 질적 차이는 불가피했을 수 있다. 셋째, 변화하는 시청 환경의 영향이다. 과거 헝가리에서 해외 영상 콘텐츠 흥행의 필수 요건으로 여겨졌던 헝가리어 더빙의 중요성이 점차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앞서 언급된 <감자연구소>는 헝가리어 더빙 없이 영어 자막만으로도 톱 10 진입에 성공하며 현지 시청자들이 언어 장벽보다 콘텐츠 자체의 매력이나 특정 장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폭싹 속았수다>의 부진이 단순히 번역이나 더빙의 문제를 넘어 콘텐츠 고유의 특성과 현지 시청자 취향 간의 간극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폭싹 속았수다>의 헝가리 내 부진은 탄탄한 팬덤을 보유한 한류 열기 속에서도 한국 드라마 콘텐츠의 성공 방정식이 단일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작품이 내포한 고유의 역사 및 문화적 맥락, 섬세한 언어적 뉘앙스, 그리고 현지 시청자들의 장르 선호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한편 현재 순항 중인 스릴러 장르의 <악연>이 한국 드라마에 대한 헝가리 시청자들의 관심을 다시 한번 고조시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플릭스패트롤, https://flixpatrol.com/top10/netflix/hungary/2025-015/ - 《Sorozatjunkie.hu》 (2025. 3. 10). Ázsia a Netflixen: WhenLife Gives You Tangerines, https://www.sorozatjunkie.hu/2025/03/10/azsia-a-netflixen-when-life-gives-you-tangerines/
성명 : 유희정[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헝가리/부다페스트 통신원] 약력 : 『한국 영화 속 주변부 여성과 미시 권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