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LA 다운타운을 오가다가 그래미 뮤지엄(Grammy Museum) 건물 입구 왼쪽 벽면에서 한글이 들어 있는 벽화를 만났다. 이 벽화는 한국계 미국인 아티스트 지베지(ZiBEZI, 본명 정재훈)가 제작한 것으로, LA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지베지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주인집 아들 다송이가 그린 그림을 실제로 제작했던 작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지베지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본격적인 예술 활동을 펼쳤으며, 2021년에는 E.K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며 독창적인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여러 언론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팬데믹 기간 그래미 뮤지엄 앞을 지나가던 작가가 '나의 그림이 여기에 걸리면 얼마나 멋질까'라고 생각하고는 했는데 그 꿈이 현실이 됐다고 한다. 그래미 뮤지엄은 2024년 5월 한류의 세계적 확산과 케이팝의 위상을 반영해 지베지에게 공식적으로 벽화 제작을 의뢰했다. 이 프로젝트는 과거 코렛 밀러(Colette Miller)의 작품 '날개(Wings)'가 있었던 자리로 늘 많은 관광객과 팬들이 사진을 찍는 명소다.
< 다운타운 그래미 뮤지엄(Grammy Museum)의 현판 - 출처: 통신원 촬영 >
지배지는 보안을 이유로 그래미 뮤지엄 벽화의 작업을 디지털 방식으로 진행했다. 아이패드로 완성된 최종 작품은 가로 212인치, 세로 117인치라는 대형 사이즈로 출력돼 그래미 뮤지엄의 정면 벽면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이 벽화는 공식적으로 지난 2024년 8월 2일에 발표됐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관람객들과 케이팝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그래미 뮤지엄이 케이팝 콘서트가 가주 열리는 크립토닷컴 아레나(Crypto.com Arena)와 피콕 극장(Peacock Theater)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지나가다가 케이팝을 테마로 한 벽화를 발견하고서 환호성을 지르며 기념 촬영을 하는 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 지베지가 작업한 그래미 뮤지엄(Grammy Museum) 벽화 - 출처: 통신원 촬영 >
지베지가 작업한 그래미 뮤지엄 벽화는 단순한 그림 이상의 세계를 품고 있다. 그의 대표 캐릭터인 AB(Angry Boy, 화가 난 소년), 지베, 더스트, 벨 등이 벽화 곳곳에 등장한다. 각 캐릭터는 자유롭고 감정적인 선과 함께 생동감 넘치는 색채로 표현돼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상상하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벽화는 보라색을 메인 톤으로 삼고 있다. 중심에는 자유로운 선과 곡선을 활용해 형상화한 눈에 확 띄는 흰색의 남성과 여성 캐릭터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어 생동감과 역동성을 극대화한다. 이는 LA 특유의 밝고 자유로운 기운과 케이팝 특유의 화려함을 동시에 품어낸다. 벽화 전체는 팝 아트를 연상시킨다. 지베지는 색소폰, 기타, 키보드, 마이크, 스피커, 음표 등 음악적 상징물을 자유롭게 배치해 팝 음악의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풀어냈다. 또한 LA를 대표하는 푸른 하늘과 야자수도 배경에 그려 넣어 이곳이 바로 'LA의 중심'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지베지는 '사랑, 패턴, 자화상, 캐릭터, 추상'이라는 다섯 가지 요소를 작품에 담고자 했음을 밝혔고 이 같은 그의 의도는 벽화 전체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 한글 단어의 영어 해석이 적힌 벽화 하단 - 출처: 통신원 촬영 >
특히 주목할 점은 벽화 곳곳에 적힌 한글 단어다. '케이팝(K-pop)', '아이돌(idol)', '사랑해요(love you)', '음악(music)', '그래미(Grammy)' 등의 단어가 천연색의 독특한 글씨체로 그려져 있어 한글 자체가 하나의 예술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Korean Phrases included in Mural'이라는 문구 아래 이 단어들과 그 영어 해석이 나란히 표기돼 있어 한국어를 모르는 이들에게도 그 의미가 친절하게 다가간다. 벽화 하단의 한글과 영문 해석은 한국문화와 언어가 전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에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벽화에는 한글 외에도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컬처(Culture)', '그래미 뮤지엄(Grammy Museum)', '다운타운 LA(DTLA)', '위 러브 케이팝(We Love Kpop)' 등의 영어 문구가 화려한 색깔로 빛나고 있다. 그래미 뮤지엄 벽화는 하나의 미술 작품을 넘어 한국계 아티스트가 세계 음악의 중심에서 대중과 소통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LA 한복판, 그래미 뮤지엄이라는 세계적인 문화 공간에 걸린 이 대형 벽화에 한국어가 등장하고, 한국인 작가의 손길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은 한국인으로서 무한한 감격을 자아낸다. 2025년 봄은 케이팝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글로벌 흥행을 기록한 로제의,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을 사로잡은 제니의 에 이어 군 복무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할 BTS까지 케이팝은 이제 또 하나의 새로운 영역으로 전진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베지의 그래미 뮤지엄 벽화는 단순히 아름다운 그림을 넘어 한국문화의 힘과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하나의 상징적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약력 : 『나의 수행일지』 저자, 마인드풀 요가 명상 센터 대표